동아일보 기고문(2023년 5월 15일)
동아일보에 보낸 기고문이 실렸다. 정자교 사고 이후 지자체들이 교량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는데, 사고가 난 캔틸레버 보행로 부분에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정작 본선도 그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는데 말이다. 경각심을 불러 또 다른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 쓴 글인데, 지면 사정 상 일부분이 삭제된 것이 아쉽다. 그래서 브런치에는 원문을 그대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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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교 붕괴 이후 성남시가 탄천 내 16개 교량의 보행로를 철거하고 다시 짓겠다고 한다. 이들 교량은 모두 분당 신도시 조성 때 만들어졌고 보행로가 캔틸레버 구조라는 게 공통점이다. 성수대교 붕괴 이전에 만들어져 노후화로부터 교량을 보호하는 기능이 취약한 것도 같다.
정자교는 30년 동안 눈비 맞으며 서로 딱 붙어 있어야 할 철근과 콘크리트가 그 부착기능을 잃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철근을 이어 쓸 때 그 겹이음 위치를 한곳에 두면 안 되는데, 보도 경계를 따라 쭉 한 곳에 설치한 것도 잘못이다. 갑자기 무너진 원인이다.
이런 면에서 전국 지자체가 비슷한 캔틸레버 부분의 철근 겹이음과 콘크리트 노화 상태를 조사하는 건 의미가 있다. 다만 겉면만 대충 보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정작 문제는 차량이 다니는 차도 부분이다. 여기는 안전할까. 행정당국이나 언론 모두 차도에는 관심이 없다. 정자교의 차도에는 철근콘크리트 말고도 중요한 부재가 또 있다. 완공 후 힘을 받아 늘어날 곳을 미리 눌러 두면 더 큰 힘에 견디게 되는데, 이때 쓰이는 게 강선 다발이다. 강선 다발이 설치된 교량을 포스트텐션드(Post-tensioned)교량이라고 하고, 이 강선 다발을 ‘PT 텐던’이라고 한다.
텐던은 물과 염분에 닿으면 녹이 슬어 끊어진다. 이로 인한 사고가 1967년 영국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1990년대에 유럽, 2000년대에 미국, 2010년대에 일본 등에서 잇따라 일어났다. 이 공법을 많이 쓴 순서대로 무너졌다. 우리도 2016년에 서울 정릉천고가의 텐던 파단, 2021년 청담1교에서 강선 부식 등이 발견되었다.
영국의 기준(CS 465)은 이 형식의 교량은 사전 징후가 없는 취성파괴(brittle failure)로 무너지기 쉽다고 경고한다. 철근콘크리트 속에 묻혀 있는 텐던은 보이지도 않고, 초음파, GPR 등 현존하는 각종 비(非)파괴검사를 통해서도 손상을 탐지할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콘크리트에 구멍을 뚫어 내시경을 넣는 미(微)파괴조사를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텐던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최근에야 이 방법의 적용기준이「시설물 유지관리 세부 지침」에 몇 줄 추가되었는데, 외적으로 상당 규모의 균열이 발견된 때 책임기술자가 적용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였다. 교량별로 조사해야 할 기본 천공 수를 계산할 공식까지 제시된 영국 등의 규정과 상이할 뿐 아니라 불합리하다. 외적 징후가 미리 나타나지 않는 이 형식의 교량에서 균열이 상당히 발생했다면 이미 많은 텐던이 손상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균열조차 보이지 않고 무너질 수도 있다.
최근 서울시설공단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교량및구조공학회 등과 합동으로 해외 문헌조사와 실증모형을 통해 선진국의 조사 방법을 터득하고 실 교량에 적용한 성과를 국내에 공개하고 있어 지침도 곧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다른 교량과 달리 정자교는 텐던이 콘크리트 속에 40~50센티미터나 깊이 묻혀 있어 이 방법조차 적용이 어렵다. 문헌상 손상에 취약하게 만들어진 교량 양 끝의 정착구도 접근이 어렵다. 무너진 보도 인근의 몇 개 정도 겨우 조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성남시는 전술한 기관의 협조를 받아 이를 꼭 조사했으면 한다. 자칫 차도가 주저앉는 사고를 또 겪을 수 있다. 이게 정자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국토교통부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