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인공처럼
오늘 느지막이 12시에 일어났다.
그놈의 운동회 때문에 이래저래 욕을 하는 카톡들이 와있다.
그중 눈에 띄는 카톡은, '무단 되기 싫으면 병원 가라'는 엄마의 카톡이다.
나는 그 말에 어제 가기로 한 정신과를 생각한다.
그래. 오늘은 꼭.
나의 다짐은 행동이 된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이 걸리는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그런데 아뿔싸 병원은 예약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허탕이다. 나로서는 꽤나 진지하고 일생의 결심으로 온 병원이었는데 허탕을 치고 나는 왜인지 모르게 '목포역'을 검색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 도피하는 주인공을 보며 했던 동경의 다짐들이 행동이 된다.
역에서는 분주하지도, 그렇다고 정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열차를 기다린다.
나는 그들 사이로 용산으로 가는 열차가 탑승 대기 중인걸 발견한다.
저거다.
나는 곧바로 '용산'행 기차표를 끊는다.
마치 그곳이 나의 목표지였던 것처럼.
표를 사고, 기차에 타는 나의 옆에서 핸드폰은 조용히 자신을 드러낸다.
'엄마'
그녀는 나에게 화나있다.
그 이유는...
글쎄 어른들의 생각을 알려고 노력한 건 그만둔 지 오래다.
그녀는 나의 핸드폰을 깨웠지만, 나는 그걸 애써 무시한다.
마치 그런 건 보지도, 아니 애초에 오지도 않은 것처럼.
열차는 벌써 광명역이다.
그녀는 역시도 그리고 여전히도 나를 부른다.
'어디야? 어디가? KTX값이 2만 원이 말이 돼? 보여줘 봐'
역시 그녀답다.
이후 그녀는 나에게 숙소를 잡으라며 10만 원을 준다.
미성년자는 숙소를 잡을 수 없는 것을 모르니 말이다.
역시 그녀답다.
'병원은? 안 가면 무단이야.'
그 말에 울컥한다.
내 건강상태를 남에게 알리는 것도,
권리도 안 주는 곳에서 책임만 요하는 것도
나는 그 말을 '자퇴할 거야'라는 말로 일축한다.
자퇴.
내 고등학교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하는 단어.
어느새 전화는 끊어지고, 나는 창문을 바라본다.
63 빌딩이다.
저기서 떨어지면 죽겠지.
내가 다른 사람, 가령 부모와 담임의 허락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63 빌딩 앞에 있는 나에게 그것은 오직 자살뿐이다.
양화대교를 갈까, 63 빌딩을 갈까.
하지만 결국 나는 쫄보이기에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결국 생각은 오늘 어떻게 서울에서 살아남을지로 옮겨간다.
찜질방, 카페, 스터디카페.
선정된 곳은 스터디카페다.
KTX는 벌써 용산에 도착한다.
산뜻한 도착음이 들리고, 승무원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린다.
서울은 단체로 몇 번 왔지만, 이렇게 무계획으로 그리고 단신으로 온건 처음이다.
오후 6시, 사람들이 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다.
나는 그 속에서 동질감을 느끼려 애써 그들의 발검을 에 맞춘다.
스터디카페에 가기 전 나는 국회도서관에 가기로 한다.
전자책 이용증 발급을 핑계로 방대한 자료를 가진 그 도서관에 가고 싶었던 개인적 소망을 풀려고 말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핸드폰을 본 채로 자신의 길을 간다.
문뜩 그들 중 한 노인과 눈이 마주친다.
그와 3초 눈이 마주치고, 나는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린다.
그는 나를 어떻게 봤을까.
가출한 학생? 아니면 그저 한 행인?
알 수 없는 일이다.
국회는 컸다.
과연 계엄군들이 진압하기에 지리상으로 애먹을만했다.
국회도서관은 그 안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나온다.
엄청나게 컸다.
나는 그런 나를 보며, 지난주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
내 세상이 무너지고, 패배자가 된 그 기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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