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방인으로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살게요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이 말을 할 때면 항상 혼난다.
나는 학생이니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여러 번 혼났지만,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
이 사람들, 길어봤자 몇 년짜리 인연 아닌가? 왜 나의 인생을 모두 책임지려는 듯이 말하는 거지?
아.
이 역시, 그들이 들으면 혼낼 말이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어리숙하고 경험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고 했다.
무조건 실패할 거라고. 그렇지 않더라도 큰 피해를 볼 거라고.
맞는 말이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경험 없고, 생각만 많은 머리 무거운 사람이니까.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실패하면 안 되나?
나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가르친 자들은 그들이었다.
인간은 모두가 자유를 가지며, 그건 정당한 권리라고 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아야지 남이 살아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교육을 착실히 체화한 도구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런 나를 무시하는 걸까.
정말이지, 그 누구도.
학교 선생들도.
내 부모도.
나와 궤(軌)가 같다고 생각했던 교수도.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내 생각은 그저 수정할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해했다.
나는 사회에 채무가 있으니까. 복지라는 채권을 누렸으니까.
그걸 갚으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
그렇지만 이 모래성은 패배자로 선언했던 그날 그 글에서, 무너졌다.
나의 채무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초라했던 것이라면,
사회가 나에게 고도로 단련된 세뇌를 가르친 거라면
나의 이해는 결국 복종이었던 것이다.
나는 벗어나고 싶다.
채무라고는 없는 사회에서 철저한 이방인이 되어서 나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