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살하지 않는가

생각에도 단계가 있다

by nas
Il n'y a qu'un problème philosophique vraiment sérieux: c'est le suicide.


시지프 신화의 유명한 첫 문장.


우리나라말로 해석하면,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이 구절을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이었다.


한창 데미안에 빠져서 이것저것 알아보던 시기였는데, 여러 가지를 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기억에 남는 건 그 문장 하나뿐이다.


조금 허망하긴 하다.


분명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과연 이 사람은 천재구나'라는 생각들이 들었는데 남은 건 저 문장뿐이라니.


그럼에도 내 머리에 저 문장만 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자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한 생명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

죽음이라는 생명체 모두가 가진 근원적 공포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과정.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중학교 3년을 이 주제로 씨름했다.


답은 안 나왔다.


죽어야 할 이유도

살아야 할 이유도


모두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는, 이래저래 외부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 이 문제는 뒷전이었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한 지 3년이 흐른 지금은 이렇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왜'를 물을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를 물을 시간이다.


모든 실체적인 것들에는 '왜'의 선행이 필수적이다.


이 행위는 왜 해야 할까.

이 원칙은 왜 제정 됐을까.


반면 삶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삶은 추상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를 통해 실체적인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로 형상화되지 않은 삶에 '왜'를 들이미는 것은,

무수히 많은 형태로 변하는 물을 재단하려는 것이다.


나이에 맞는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건 자신보다 인생경험이 부족한 이들을 제한하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무슨 의도인질 알 것 같다.


지나간 나의 어린 시절에 그 시절만 할 수 있는 보다 희망찬 생각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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