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나는 사회와 거리 두기에 성공해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오히려 나는 그 근본적인 문제에 꼼짝없이 세뇌되어 있었고, 더 최악인 건 그 상태에 자긍심을 가졌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상태는 나와 이 세상을 이루는 전제가 박살 난 상태다.
난 필연적으로 이 전제를 대신할 전제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내 모든 사고는 이를 전제로 했는데?
현타가 왔다.
아니 그보다는 무력감이 맞을 듯하다.
이 전제는 나를 소위 '정도'로 부르는 길로 가게 했다.
고등학교-대학교-취업의 루트 말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다 거짓된 것이었으니, 그동안 내가 버티고 깎이고 그러며 기대한 건 뭐였을까.
그럼에도 난 마지막 기둥이 있었다.
'서울'가면, '대학'가면 날 진지하게 봐주는 사람이 있겠지.
그 기둥은 12월 3일부터 금이 가있었지만.
그래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나의 지독한 꼬리물기식 생각뿐.
그게 없었더라면 금이 간 기둥도 나름 기댈만한 기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국회도서관에 있는 걸까.
나는 그때서야 '자퇴'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검정고시는 볼까. 워킹홀리데이를 가야지. 어느 나라로 가지. 무슨 직업을 가질까. 비자가 끝나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지금 이 생각은 혹시 도피성인가.
지독한 꼬리물기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인생'계획이라는 게 이리도 단시간에 나올 수도 없는 것이며 나와 사회의 관계도 재정립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무슨 일이 됐건 서둘러 나와 사회의 관계를 정립해야 했다.
그때, 나는 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몇 살일까.
모르겠다.
그저 아주아주 어렸던 것만 기억난다.
그때 난
부모님이 이혼한 지도 몰랐고,
엄마와 같이 살아본 적이 없으며,
아빠와 할머니는 매일 바빴고,
항상 TV로 뉴스나 투니버스를 보던 아이였다.
그런 나를 챙겨주던 사람은 고등학생 사촌이 있었는데, 그 사촌은 항상 날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아빠는 항상 그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씻을 수 없는 일을 당해도, 말할 수 없었다.
그게 얼마나 나쁜 건지도 모를 정도로 순수했던 아이 었고
아빠를 실망시키기 싫어했던 순진한 아이였다.
그 일이 밝혀지고 나에게는 스티커 2~3개가 주어졌다.
그리고 아빠방에서 이야기를 하더니,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아빠는 항상 그들에게 감사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빠가 챙기지 않는 우리를 챙겨주었다.
아.
이게 갑자기 왜 떠오를까.
이건 나와 사회의 관계 재설정 문제인데.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