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밖은 해가 져있었다.
그럼에도 밝았는데, 가로등도 있었지만 건물들의 조명도 한 몫했다.
국회에는 제네시스가 많다.
내 앞으로 한 대가 지나간다.
저기에는 어떤 주요한 사람이 타고, 거기서 또 어떤 법이 만들어질까.
한 때 나도 저기 안에 있는 사람이 되길 꿈꿨다.
꿈꾸는 건 자유니까.
사실적시 명예훼손 법을 폐지하고, 상속세 이중과세를 해결하고, 장애인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고, 지방에도 국회도서관 같은 문화시설을 만들고
쓸데없는 '~날'을 만드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나도 결국 인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때는 '채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 느낌만 있던 시기였다.
나의 조급함이 이 과정을 거의 삭제하다시피 해버렸던 그 시기 말이다.
만약 이 과정을 살려두고, 나름의 '동심'을 누리면서 만 18세가 넘을 때 실패할 걸 그랬다.
그럼 스터디카페 대신 찜질방에서 편하게 잘 수 있었을 텐데.
하하-
농담이다.
이거 참, 진지해야 할 때 농담을 하는 게 내 흠이다.
이래서 다들 날 진지하게 안 보나...
여기서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게, 진지하게 본다는 게 내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는 게 아니라 나를 토론대상으로 봐준다는 것이다.
내 생각을 들어주고 이에 대해서 그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드러내는 것 말이다.
꼬르륵-
오늘 먹은 게 단백질바 밖에 없어 배가 고프다.
곧 스터디 카페에 도착하니 라운지에서 음료를 먹어야 할 것 같다.
서울은 물가가 비싸서 선뜻 가게로 들어가기 무섭다.
거기다 난 핸드폰과 지갑만 가지고 왔기에 여러모로 아껴야 한다.
스터디 카페다.
역시 액상과당을 먹으니 바로 살만하다.
돈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일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용돈을 부탁했었는데 그게 할아버지와 마지막 통화였다.
엄마와 아빠는 '할아버지는 오히려 좋아하셨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스터디 카페는 여기나 저기나 똑같은 것 같다.
오히려 땅값이나 임대료가 낮은 시골이 더 고급진 분위기랄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산다는 거다.
나도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고자 애써 공부했던 때가 기억난다.
그런 동질감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참, 모순인 건
올림픽이며 운동회며 야구 직관까지 전체주의를 더 나아가 국가주의를 조장한다며 싫어하는 사람이 동질감에 몸부림치는 것이다.
모순 덩어리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