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체계의 진실

도구화 된 개인, 도구화 되는 개인

by nas

나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해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시간은 지식을 주입받는 데에만 치중되었고, 학생들은 정해진 답을 외우는 기계처럼 행동했다. 고3에 가서야 겨우 토론 수업이 있었지만, 그 주제들은 실효성 없이 가볍거나 정치적으로 갈라치기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학교 내 자판기 설치’ 문제는 시간 낭비에 불과했고, ‘형법 적용 나이를 올려야 한다’는 논의는 청소년 강력범죄가 전체의 4%에 불과한데도 청소년을 악마화하는 전형적인 갈라치기에 불과하다. 이는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소위 ‘세대포위론’과 다를 바 없다.


이 문제의 본질은 교사 개인에게 있지 않다. 교사들은 주입식 교육 시스템의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들이 또다시 비판 능력 없이 순응하는 도구를 양산하는 악순환 속에 놓여 있다. 교육 시스템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인정하는 순간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유하는 학생을 키운다’는 구호만 되풀이할 뿐, 실질적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대입 중심의 교육 구조다. 급속한 경제 발전에 비해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성장기 시절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학 입시는 지식 암기와 반복만을 강조하며, 사유와 비판은 배제된다. 대학은 ‘진리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 사관학교’가 되었고, 이는 교육 본질을 왜곡시켰다. 이런 구조는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변화가 쉽지 않다.


교육이 진정으로 회복하려면, 학생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태도, 즉 산파술적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너무 이상적이기에 현실적으로 최소한이라도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함유하는 것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 어린이는 문학을, 청소년은 문학과 철학을 병행하여 배우며, 독서를 통해 불편함을 마주하고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멘토링은 부차적이다, 진짜 중요한건 스스로 불편한 점을 극대화하며 성장하는 경험이다.


한편, 교육감 선거에 대한 현재 방식에도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교육감 선거는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보통선거 방식을 택하는데, 이는 교육 전문가나 학생 당사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아니, 교육이 정치권의 편가르기에 휘둘린다. 나는 교육감 선거권이 교육계 종사자와 학생들에게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실패와 수정을 통해 진화하는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여러차례의 계엄, 군부독재 그리고 민주화 운동을 거친 것처럼 말이다. 제대로 된 교육 정책 결정은 이해당사자의 직접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며, 현재의 선거 방식은 대중 정치의 이익 논리에 휘둘려 교육의 본질을 희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나는 바칼로리아형 시험처럼 학생들이 스스로 쓰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시험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득권층과 기존 권력 구조에 의해 그 의미가 퇴색 될 것이 뻔하다. 기존의 제도는 필란드형 교육 방식처럼 표면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지만, 결국 기득권의 이익 때문에 껍데기만 바뀐 것처럼 말이다.


결국, 교육 개혁은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과 권력 구조 재편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기란 요원하다.


이 글은 저의 사유를 정리하기 위해 GPT의 도움을 받아 구성하였습니다. 내용은 온전히 제 것이며, 문장의 다듬기와 구조 정리에 AI의 편집적 기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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