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병원

뭐... 해프닝이 있었다랄까

by nas

어제 학교에서, 한 교사는 내게 협박과 패드립에 가까운 언사를 했다. 물론 그 교사는 그것에 대한 나의 항의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그냥 무시했다-, 자신의 화만 이야기 하고 갔지만. 담임교사는 그런 상황을 방관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를 문제의 중심으로 몰아갔다. 이후 이 일에 대해 항의 전화를 한 어머니에게 학교 측은 오히려 ‘가정교육의 문제’라고 되받아쳤다. 그다음 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기도 전에 극심한 편두통과 구토감,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어머니는 대신 학교를 방문하러 가셨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깊은 절망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세상이-원래도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최악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나의 이념과 생각이 무수히 짓밟히고 나는 그런 행태에 반항하였다는 이유로 짓밟히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추락. 이겨냄 보다는 버텨냄으로 작용하는 나의 수동적인 메커니즘들이 극단으로 가지 않게, 나를 지키는 듯하다.


그런데, 이 절망 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줄곧, 내가 사회로부터 빚을 졌다고 여겨 왔다. 장학금, 부모의 헌신, 학교의 기대 같은 것들이 나를 조여왔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잘못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 채무는, 상환의 의무 그러니까 나의 도덕적 규율에 따른 강제성을 가지는 것일까?


나는 문득,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떠올렸다. 그 국채는 국민이 원해서 진 것이 아니었다. 외세의 강압과 권력의 판단 속에서 일방적으로 부과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맞서 스스로의 방식으로 ‘이건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맥락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주권이 없는 인간에게 부여된 채무는, 과연 상환해야 할 의무인가?


내 결론은 ‘아니다’였다.

주체로서 선택할 수 없었던 삶의 조건들, 부여된 기대와 강요된 의무들,
그 모든 것이 “부채”로 부과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모순되었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싶다.


1. 나라에서 받는 복지만 받고 의무는 다 안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

첫 째,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른 동년배들처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초중의 의무교육을 받았고, 현재는 고3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고로 나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의무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나에게 온 복지는 곧 나의 입을 막고 세뇌하기 위해서 사전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나는 그러한 복지들에 감사를 표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감사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평생을 지고 가야 하는 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즉, 나는 이 채무를 내 인생을 바쳐서 갚아야 하는 거대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소극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동한 것이다.


2. 그동안 너는 스스로 책임을 지고 그에 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너는 주체이지 않느냐?

그렇다. 나도 내가 주체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 저항했고.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 조퇴 한 번 하려고 하면 담임교사 허락과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되고, 내가 항의를 해도 무시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거기서 나 스스로를 주체로 생각하는 게 녹록지 않았다. 당장 내 거취도 허락받고 사는 삶을 누가 주체라고 하겠는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 존엄과 자극적 미디어 콘텐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