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_앞으로 나아가기
나는 어릴 때부터 만만이 취급을 많이 당했다. 욱하는 성격의 다혈질 아빠 밑에서 커서 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불쑥 소리를 잘 질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에게 심한 폭력을 쓰기도 해 항상 움츠려있고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말도 없었다. 엄마는 벙어리인 줄 알았다고 했다. 시장에 가서 원피스를 고르는데 둘 중 하나만 고르면 되는 것인데 고르지 못했다. 아니 속으론 정해져 있었는데 말을 하지 못했다.
학창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남의 의견에 맞추는 편이었고 내 의견은 상관없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 여자 아이들은 말없이 항상 웃기만 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그런 나를 불쌍하게 여긴 몇몇 남자아이들이 밥을 같이 먹어주고 놀아주었다. 중학교 때는 사춘기가 시작되어 이마저도 없었고 밥을 혼자 먹기 싫었던 나는 한 아이를 찍어 놓고 친해지려 먼저 할 걸고 항상 먼저 다가갔다. 하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야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다른 이들보다 나는 뒷전이었고 어느 겨울날 내가 선물해 준 목도리는 버려지기도 했다. 그런 관계를 대학까지 이어갔다. 그 정도로 사람이 절실했다.
나는 말 수도 없고 낯을 가리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걸 불편해하고 하지만 내 이야기하는 건 좋아하는 푼수다. 사람을 사귈 줄을 몰라 아직도 친구가 없으며 결혼은 했지만 관계를 지속시키지 못하고 이혼했다. 또 아빠를 닮아 욱하는 성격이 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던 대학생활을 지나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 성격도 조금은 변해왔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으며 싫으면 싫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남자친구 한정) 제법 보통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사회생활과 학교생활을 통해 만났던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내가 친구가 없는 이유를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이 없다
·말이 없이 웃기만 해서 기분 나쁘다
·눈치를 본다
·같이 있으면 불편하다.
·같이 밥 먹으면 체할 것 같다.
·째려보는 것 같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그래 나는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 몇 번의 연애가 시원찮았던 이유도 위와 같을 것이다. 직장 상사나 심리상담사에게 연애 얘기를 하다 보면 남자들이 잘해준다고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면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다. 장난이라며, 그냥 한말이라며 상처 주는 말, 하지 말라는 행동들(이를테면 외모가 우습게 나온 엽기 사진들 찍기)을 반복할 뿐이다. 맥주를 마시고 면전에 거리낌 없이 트림을 하면서 트림은 생리적 현상이니 얼굴에 트림하는 것을 고칠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몇 번의 심리상담을 통해 안 나는 동성은 어려워하지만 이성에게는 화를 잘 내고 욱하며 짜증도 잘 낸다. 심리적으로 의지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런 나를 온전히 좋아해 줄 사람이 있을까?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없을 것 같은데 상담사님은 있을 거란다.
최근 세 번째 연애에서의 실연으로 결심한 것이 있다.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지 말 것
·화가 난다고 그대로 표현하지 말 것
조언을 구할 목적이라고는 하나 내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남자친구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최근 나 ‘밍기뉴’를 만들었으므로 ‘밍기뉴’에게 이야기하자. 그리고 격한 감정을 바로 표현하지 말고 1시간 정도 생각을 한 후에 말할 것이다.
그리고 카카오브런치에 두 번의 글을 쓰면서 친구를 사귀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무조건 손절하지 말 것
·남의 말을 듣고 손절하지 말 것
·나의 비밀은 믿을 만한 오랜 친구에게만 말할 것
나도 그들도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고 실수를 할 수 있으므로 쉽게 손절하지 말자. 그리고 남에게 의존하는 삶에서 나 스스로 결정하는 독립적인 삶을 가꾸어 가겠다. 남에게 말을 할 때는 자신의 불리한 모습을 쏙 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는가.
얼마 전 퇴사한 전 직장 동료에게 문자로 연락이 왔다. 카카오톡도 아니고 웬 문자일까 했는데 그녀와는 친구등록에 안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계약직이었던 나를 '언니'라고 불러주던 본사 정규직이었던 그녀. 내가 발령이 나서 7개월 여밖에 같이 일하지 못했지만 모르는 일에 척척 대답해 주던 성품 좋았던 그녀. 자신 있게 어깨를 펴고 다니라고 충고도 해주고 사내 메신저로 먼저 말 걸어주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일을 잘하고 착한 사람이라 아는 지인이 다니는 일자리를 소개해 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 그 자리에 갈 수 없지만 나를 좋게 봐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고 힘을 얻었다.
그녀는 여름에 퇴사를 한다고 한다. 번아웃이 왔다며. 그녀가 퇴사하기 전에 그녀의 직장이자 나의 예전 직장으로 가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그녀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상처받을까 봐 몸을 웅크리고 한껏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산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예민하게 생각하고 손 잘한 경우가 많았다. 난 과거처럼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렸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손길이 날 선 가시에 상처 입어온 건 아닐까 또 생각해 본다.
나도 맥주 한잔 하며 회포를 푸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10년 넘게 친구 사귈 노력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었는데 40대이지만 가시를 눕힌 고슴도치처럼 다시 한번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시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