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_과거 들여다 보기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친구와의 관계에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란 무엇일까?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차 한잔, 술 한잔 할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 아닐까? 나의 친구의 기준은 이렇게 낮은데 40 넘어 친구가 없다니. 그나마 결혼식에 와 준 대학 선배 한 명, 전직장선매 한 명, 전 직장동료 두 명이 새삼 너무 고맙다.
그 너무 고마은 사람들을 9급 공무원이 벼슬인 마냥 잘난 척한다는 이유로, 전염병 걸린 애를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는 이유로, 연락 한번 없다가 뜬금없이 제주도 땅에 투자를 하라고 말한다는 이유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먼저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이유로 손절을 해버렸다. 전 직장 선배의 결혼식에는 참석했고, 전 직장동료의 결혼식에는 참석을 못했지만 나중에 축의금을 챙겨줬으니 썩 나쁜 인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생 때 따돌림을 당했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 당시에 선생님들은 나를 신경 써주셨고 집에 초대해 김밥도 만들어 먹이시기도 하셨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수업시간에 외모 칭찬도 해주시며 관심 가져주셨다. 그러나 끊임없이 위축되고 사람이 좋았지만 이유 없이 아니 나는 모를 이유로 모두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되자 참을 수 없었고 돈이나 많이 벌자며 2학년 말부터 학교를 안나 가버렸다. 그러나 전교 1등에 대학교 4년 장학생이었던 언니와 본인들은 못 배웠어도 자식들 공부는 시켜야겠다는 부모님의 바람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1년여를 방황하던 어느 날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CCM가수를 해보는 게 어떻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은 길거리 캐스팅이 있었고 자신감, 자존감 바닥에 찐따였던 나는 교회 다니는 큰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으나 언니에 의해 그 기회를 교회 친구에게 넘겨야 했다. 이런저런 현실이 너무 싫고 평소에 관심이 없었으면서 요즘 들어 매일 내 걱정에 우는 엄마 모습이 보기 싫어 편지를 써 놓고 할머니 집으로 떠났고 엄마는 너희 때문에 가출을 했다며 CCM기획사에 전화해 난리를 치는 바람에 혹시 모를 기회조차 바람처럼 날려버려야 했다.
‘공부해라, 전문대라도 들어가면 원하는 것 다하게 해 줄게.’
엄마는 말했고 또 그런 제안은 놓칠 수 없었게 귀찮게 하는 게 싫어서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공부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마음처럼 쉽게 되질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잘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내 모든 생활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전교 1등 언니를 따라 할 수는 없었지만 내 생활을 반대로 바꾸는 건 할 수 있었다. 허구한 날 누워있기만 했는데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 우선 앉아있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습을 하길 너무 싫어했는데 공부를 하고 다음날 복습을 꼭 했다. 얼마 후엔 학원도 다녔다. 그렇게 6개월여간 하자 살도 찌고 뚱뚱한 몸으로 계속 앉아 있으니 다리에 피가 안 통해 학원에서 집에 가는 시간에 걷는 게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학원에서도 찐따의 향기가 나는지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분위기에 학원 생활도 오래 하지 못했다. 나머지 6개월은 아르바이트도 하고 방황을 했으나 간간히 독서실에도 다녔다. 남자친구도 만나면서 공부를 소홀히 했지만 그 해 수능을 잘 봐 그 지역 국립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CCM가수의 꿈은 사라져 버렸지만 부모님도 내 걱정은 그만하게 되었으며 대학생이던 친구들이 부러웠던 나는 1년 늦게나마 그들과 나란히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친구 사귀는 것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