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곱게 자란 딸내미 Dec 20. 2022

스시 오마카세에서 좀 있어 보이는 방법

며칠 전 저녁, 청담에 있는 어느 하이엔드 스시야.

맛있는 초밥을 우물거리고 있었는데, 문득 옆에 온 손님 둘이서 하는 얘기가 들렸다.


"이야, 역시 홋카이도산 우니야."

"아 셰프님, 전 샤리를 조금 줄여주세요."


고개를 돌려 보니, 20대로 보이는 다소 앳된 젊은이 둘이 맥주를 한잔씩 시켜놓고 앉아있었고, 그중 주로 한 명이 열심히 자신의 오마카세 지식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참을 떠들던 그는, 마지막 앵콜 스시를 묻는 셰프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음.. 전 이소베마끼*요."

"청어 이소베마끼요?"

"아, 아니요... 어라... 고등어였는데..."


(*이소베 마끼: 생선 등의 해산물 재료를 김으로 말아낸 요리)


오늘 메뉴에 이소베 마끼는 청어만 있었다. 아마도 그는 다른 메뉴인 고등어 봉초밥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순간 메뉴명을 헷갈린 듯했다. 친절한 셰프님은 고등어로 새롭게 이소베마끼를 만들어 주셨고,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초밥을 받았다. 나는 이 웃지 못할 상황이 좀 재밌고, 귀엽게 느껴졌다.


'저런, 저런... 좀 있어 보이고 싶었구나.'


모처럼 비싼 돈을 들여, 그것도 디너 타임으로 온 스시 오마카세. 허세를 좀 부리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오마카세 초보들은 괜히 어려운 용어를 쓰거나 익숙한 척하다가,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귀여운 허세 남녀들을 위해, 스시 오마카세에서 좀 있어 보이는 몇 가지 꿀팁을 공개한다. 재미 반, 진담 반으로 봐주시길!




1. 혼자 간다.

-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오마카세 고수처럼 보인다.

- 거의 말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말실수를 하거나 지식이 바닥을 보일 확률이 줄어든다.

- 노련한 셰프의 재료를 다루는 모습, 초밥을 쥐는 손 모양, 가게 내부 환경, 음식 맛 자체 등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 오마카세는 셰프와의 대화도 재미 요소 중 하나이다.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요청도 해보자. 원산지가 어디인지, 재료를 쪘다면 몇 시간 쪘는지 등 대화가 가능하다.


2. 주류 페어링을 한다.

- 단, 반드시 추천받은 주류를 시킨다. 고수가 아닌 이상, 메뉴에 어울리는 술을 단박에 고르기는 어렵다.

- '비싼 거 추천해주면 어떡해요?'라는 생각이 드는가? 있어 보이는 데에 공짜는 없다. (죄송!)

- 그래도 부담스럽다면, 콜키지 프리 혹은 콜키지가 가능한 오마카세로 가자. 

- 술을 가져간다면 사케가 무난하다.

- 셰프가 술을 따라주는 경우, 한 두 번은 셰프에게도 술을 권해보자. 서로 웃으며 술을 주고받는 모습이 밖에서 보면 괜히 멋져 보인다.

- 맛있는 술과 스시, 훈훈한 분위기가 주는 마리아쥬(mariage: 술과 음식의 조화)를 느껴보자.


3. 손으로 먹는다.

- 스시는 원래 손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의외로 이렇게 먹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럴 때 손으로 먹으면 왠지 정통파(?)의 느낌이 난다.

- 요즘은 일본어 용어들을 한국어로 대체하는 추세이다. 셰프가 '오도로입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참치 대뱃살입니다'라고 말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손으로 초밥을 먹을 때 손을 닦는 용도로 주는 작은 물수건인 '테부끼'는 딱 들어맞는 한국어가 없기 때문에, '테부끼 교체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하면 괜히 좀 있어 보일 수 있다.      

- 스시는 사실 쥐자마자 바로 먹지 않으면 밥이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손으로 먹으면 편하다.

- 따뜻하거나 소스가 많이 재료가 얹어진 요리 (장어, 튀김류 등)는 굳이 손으로 먹진 말자. 손으로 먹는 건 차가운 스시/마끼 종류만!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가? 정상이다. 스시 오마카세에서만 통하는 용어와 규칙들은 어렵다 못해 다소 폐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고객 친화적이지 않다. 게다가, 30만 원짜리 오마카세 디너나, 6천 원짜리 김치찌개나, 음식은 맛있게 먹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음식의 본질은 맛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왕 비싼 곳에서 식사하는 거, 기분 좀 내고 싶다는 마음 또한 정상이다. 비웃지만 말고, 그 인간적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주자. 그게 남이든, 본인이든 말이다. 그럼 허세 성공을 기원하며 이만!


작가의 이전글 3천 원의 사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