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part 1
지금부터 딱 27년 전, 내과 전문의 시험 준비를 위해 호텔에서 합숙을 하며 공부를 했다. 우리 학교에선 3-4년에 한 명 정도 떨어지는, 대부분이 합격하는 시험. 그래서인지 공부가 더 잘 되지 않았다. 내 인생 마지막 시험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나 Never say never. 미국 골프아카데미에서 골프 경영학을 전공하며 4학기 동안 계속 시험을 봤고. 귀국해서는 2년 반 동안 방통대 대학원을 다니며 영문학 석사를 취득했다.
한동안 뜸했다가 작년부터 다시 시험 시작. 가장 유명한 소믈리에 단체인 CMS, court of master sommelier 1단계 초급 소믈리에 시험을 봤고. 2단계 certified 시험은 조만간 볼 생각이다.
그리고는 르꼬르동 블루. 2주간의 연말 방학을 앞두고 8과목 중간고사를 본다. 시험은 언제나 스트레스다. 특히 내겐 전혀 도움 안 될 것 같은데 졸업을 위해선 통과해야 하는 시험들은.
첫 시험은 와인 투어리즘. 1시간 동안 세 개의 에세이를 쓰라고 한다.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에 맞추어. 본론에는 문제에서 제시한 3가지 개념이 각각 포함되어야 하고. 수업 시간에 나왔겠지만 기억나지 않는 단체에 대한 설명도 들어가야 한단다. 이건 좀 심하다.
토머스가 볼펜을 잡은 오른손을 계속 턴다. 나이도 있고 손목이 아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묻는다. 혹시 누구 여분의 펜이 없는지. 잘 안 나온다고. 시험 후 휴식 시간에 거친 말들이 나온다. 단 이틀 수업에 이런 문제가 말이 되냐고.
둘째 날 첫 과목은 음식과 요리.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많이 배운 과목이다. 프랑스를 비롯해 서양요리 전반에 대한 지식이 제법 늘었다. 다음은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 화이트, 로제, 레드 와인이 한 잔씩 놓여 있다. 한 와인당 15분씩 45분.
그리고는 다들 힘겨워하는 회계 시험. 크게 네 문제가 나왔다. 지난주 마트에서 산 2유로짜리 계산기로 잘 풀었다. 조금 일찍 답안지를 내고 나가는데 맥심이 시험시간 끝나면 다시 교실로 들어오라고 한다. 오후는 다른 사람이 시험 감독이라 자기와는 내년에 봐야 한다고. 다 같이 샴페인 한 잔 하자고.
그런데 다들 샴페인은 앞에 놔두고 시험 불만만 계속 쏟아낸다. 내가 먼저 잔을 들고 "Maybe we don't deserve it now. But we need it."이라고 말했더니 다들 웃으며 잔을 든다. (나폴레옹이 한 말이라고 한다. 승리했으면 샴페인을 마실 자격이 있고, 패배했을 때는 샴페인이 필요하다고.)
조지가 오늘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 답을 알려달라고 하자 맥심이 검은 천으로 가린 와인병 세 개를 가져온다. 화이트를 묻길래 나와 켈리가 샤도네이라 답했는데 생각대로 오크 숙성한 부르고뉴 샤도네이였다. 2023년 빈티지까지 정확히 맞추어서 보너스 점수까지 받을 듯.
로제는 보르도였다. 와인이 좀 탁해서 필터링을 하지 않는 오가닉 와인이라 생각했다. 향은 라즈베리 같은 빨간 과일 위주여서, 오가닉 와이너리도 많고 우리가 필드 트립을 다녀온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역에서 그르나슈 포도로 만든 로제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르나슈치고는 입안에서 조이는 느낌의 탄닌이 약간 느껴져서 메를로인가 잠시 생각했었는데, 결국 그게 정답이었다.
레드는 후추향과 허브향 때문에 카베르네 프랑이라고들 한다. 내 생각엔 바디감이 좀 더 묵직하고 블랙 올리브향이 나서 시라인 듯하다고 하니 맥심이 미소를 짓는다. 코트뒤론, 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