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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에 떠나는 파리 유학 2

파리지앵의 첫날밤

by 신경한

파리지앵은 파리에서 태어난 게 아니고 파리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니 나도 이젠 파리지앵이라 할 수 있겠다.

오전 7시 30분 드디어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작년 올림픽 이후 공항 시설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곳곳에 'Paris vous aime(파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속으로 Moi aussi(나도)를 여러 번 중얼거렸다.

숙소에는 11시부터 짐을 맡길 수 있다고 해서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메일을 열어보니 브런치 스토리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보인다. , 기분이 너무 좋다. 그런데 문법과 띄어쓰기도 잘 모르는 내가 작가 자격이 있을까? 글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독자와 교감하는 게 어떤 것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 않은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는 건 아닐까? 순간 부담감이 확 밀려든다. 조금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그래, 그냥 한 번 써 보자. 난 아직 아마추어 작가잖아? 실패를 두려워말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그냥 열심히 하는 거다. 내가 아이들에게 항상 하는 말 아닌가?

숙소에 짐을 맡긴 후 먼저 휴대폰을 개통했다. 한국 유심은 그대로 유지하고 프랑스 번호를 이심으로 하면, 스마트폰 하나로 두 개의 번호를 쓸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 그런데 한 달 120기가 사용이 9.99유로 밖에 안 한다. 유럽 내에선 무료로 로밍이 되고 약정기간도 따로 없는데.

근처 피자집에서 점심을 하고 걸어서 센강을 건너는데 돌기둥에 새겨진 이름이 보인다. 아, 이 다리가 미라보 다리구나.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만 가네'로 시작하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내가 참 좋아한다. 흘러간 세월에, 지나간 사랑에 후회하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비가 세차게 오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바닥이 상당히 미끌거려 두 번이나 넘어질 뻔. 도로 곳곳에 물이 많이 고여있는데 지나가는 파리지엥들을 보니 그냥 일상인 듯. 아예 우산도 없이 가는 사람도 있다.

근처에 있는 카르푸로 간다. 집을 정리할 소품과 식료품 등을 미리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실제로는 와인 코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저녁 식사와 샤워를 마치고 베란다로 나간다. 와인 한 잔과 함께 에펠탑을 즐길 시간. 9시 정각, 멀리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보며 드는 생각은 감사함뿐이다. 키워주신 부모님, 함께 걸어가는 아내, 잘 자라준 아이들, 많은 힘이 되어준 선후배와 지인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그동안 나를 믿고 따라준 환자분들. 주치의가 6개월 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소식에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잘 다녀오시라 인사해 주신 그분들의 미소가 떠오르는 파리지앵의 첫날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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