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나의 할아버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를 할 때 나를 아저씨라 부르는 환자 보호자들이 있었다.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빴었는데 대부분 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더 나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게는 정말 깍듯한데 간호사나 일반 직원은 아주 막 대하는 사람들.
나이가 들면서 아저씨란 단어가 좋아졌다. 따뜻한 정감이 느껴져서. 친구들 아들 딸 들이랑 이야기할 때 나를 경한이 아저씨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 친구 이야기를 할 때도 주로 누구누구 아저씨라고 했고. 삼촌보다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좋았다.
그러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나왔다.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만 듣고 보진 못했었다. 재작년에서야 유튜브로 요약본만 보았고. 나도 아저씨다운 아저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시간 참 빠르다. 벌써 좋은 아저씨가 아니라 좋은 할아버지 쪽이 훨씬 더 가까워졌다.
내겐 좋은 할아버지의 롤 모델이 있다. 'Quiet'라는 책을 쓴 수전 케인의 할아버지. 이 책은 외향적인 사람보다 내향적인 사람이 깊은 사고, 관찰력, 경청 능력 등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향적이지 못한 성격에 조금 스트레스받던 나 역시 책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수전이 어린 시절 자신의 가족, 특히 할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내용. 유태인 랍비였던 수전의 할아버지는 압도하는 카리스마보다는 경청과 사유,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말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누가 어떤 질문을 하든, 특히 어린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차분히 대답해 주셨던 분. 무엇보다 독서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 가족 모임은 할아버지 서재에서 각자 책을 읽는 것이었다고.
나도 나중에 어린 손녀와 책을 읽으며 질문에 대답해 주는 상상을 했다. 어떤 질문에도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하게 대답해 주는 할아버지. 힘들 때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영원한 자기편. 물론 혈육만을 생각한다면 좋은 할아버지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인자한 할아버지다운 할아버지, 많은 사람들의 '나의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내가 쓰려고 하는 책 역시 미래에 있을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할아버지, 그때 파리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 해 주세요."
나중에 누군가 파리를 여행하거나 와인, 책, 그림 등을 보며 내 글을 떠올린다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그럼 난 그때도 '나의 할아버지'로 살아있는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