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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에 떠나는 파리 유학 3

오리엔테이션과 첫 강의

by 신경한

새벽 일찍 잠이 깼지만, 혼자 지내는 게 처음이라 아침 챙겨 먹고 등교 준비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숙소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가로수가 우거진 고풍스러운 도로를 지나 센강을 건너가는 멋진 등굣길이다.

학교에 도착하니 하얀 중절모를 쓴 토머스가 먼저 인사한다. 미국 버지니아 출신, 은퇴한 신장내과 의사다. 한 명 두 명 학생들이 도착하는데 올해는 모두 8명. 작년 15명에 비해 인원이 적어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페루와 칠레에서 온 남자 두 명과 뉴욕, 샌프란시스코, 런던, 홍콩에서 온 여자 네 명.


안내 직원을 따라 우리 교실, 바쿠스 룸으로 이동한다. 모든 테이블에 spittoon이라고, 조그만 스테인리스 싱크대가 있다. 거기에 와인을 뱉고 밑의 레버를 당기면 물이 나와 씻겨 내려가는 원리다. 잠시 후 르꼬르동 블루의 요리와 제과 선생님들이 오셔서 인사를 하고 학교 전반에 대해 안내해 준다. 올해는 르꼬르동 블루 개교 130주년이라 10월에 큰 행사가 있을 거라고 한다.

이제 와인 과정의 책임자인 맥심의 오리엔테이션 시간. 셀러에서 샴페인 두 병을 꺼내와서 모두에게 한 잔씩 따라준다. 때마침 페스트리 셰프가 쿠키를 가져온다. 방금 막 구운 거라 하면서. 환영한다 인사하고 나가면서 사실은 학생들이 구운 거라며 씩 웃는다. 모두 같이 건배를 한번 하고 맥심이 몇 가지 원칙을 당부한다. 뜨거운 음료는 와인향에 방해가 되므로 교실 내로 반입 금지. 향수도 가능한 사용하지 않도록 부탁한다.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멘토를 맡아준, 프랑스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자비에를 만나러 크리용 호텔(Hotel de Crillon)로 이동. 18세기에 지어진, 콩코르드 광장에 바로 붙어 있는 5성급 호텔이다. 자비에가 반갑게 인사하며 안쪽 와인 룸으로 우리를 안내하더니 와인 한 병을 가져온다. 제법 기포가 올라와 샴페인인가 했는데 배로 만든 사이더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이더는 우리가 아는 탄산음료가 아니고, 사과 등 과일로 만든 알코올 농도 낮은 와인) 오, 그런데 향도 맛도 아주 좋다. 웬만한 샴페인보다 좋다는 데 모두가 동의. 좋은 와인, 나쁜 와인 하는 선입견을 갖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많은 경험을 하라고 자비에가 말한다. 그래야 이런 와인을 만들 수도, 발견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다음날, 드디어 첫 강의 시작이다. 맥심이 우릴 보고 묻는다. What is the wine? 조지가 포도로 만든 술이라고 대답한다. 발효라는 말이 나오고 포도가 아닌 다른 과일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믈리에인 애니카가 과일을 발효시킨 알코올음료라고 정리해 준다. 그리고 다음 질문. 알코올은 우리 몸에 무슨 작용을 하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자 맥심이 나를 쳐다본다.


"Doctor?"


잠시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Makes me happy."


다들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맥심은 아주 진지하다. 그게 바로 르꼬르동 블루 와인 프로그램의 지향점이라고 말하며 미소 짓는다. 와인은 결국 발효시킨 포도즙일 뿐이며. 우리가 와인을 마시고 배우는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절대 잊지 말라고.


(난 지금 루브르에 있다. 관광객이 적은 리슐리에관 멋진 조각품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미 뒤 루브르라는 1년 회원권을 구매했으니 앞으로 카공이 아닌 루공을 자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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