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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에 떠나는 파리 유학 4

포도 수확 현장 학습

by 신경한

르꼬르동 블루 와인 프로그램에는 다섯 번의 와이너리 체험 학습(여행?)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주요 와인 산지로 2박 3일 가는 게 기본인데 9월 초에 처음으로 가는 여행은 3박 4일 동안 직접 와인 수확과 생산에 참여하는, 말 그대로 현장 학습이다. 올해는 루와르 계곡의 클로 후슬리 와이너리로 간다.
와이너리 오너인 빈센트가 우릴 반갑게 맞아주고 곳곳을 안내해 준다. 유기농 생산자로 우리나라에도 수출한다고. 요새 유기농, 바이오 다이내믹, 내추럴 와인 등이 유행이긴 한데 빈센트는 나름 확실한 자기 철학이 있었다. 자신의 역할은 와인을 통해 자연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거라고 말한다.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려 노력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변화하는 자연에도, 변화하는 사람들의 취향에도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하는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전 포도 수확을 마치고 점심 식사 후 절반은 잔디밭에 누워있고 나머지는 테이블에 엎드려 있다. 연속 4시간을 쪼그려 앉아 포도 따는 일, 평소에 하지 않던 노동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음식도 시원치 않아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이 와이너리에서는 일 년 중 제일 바쁜 시간. 요리를 담당하는 부인도 계속 도와야 해서 음식은 최대한 손이 안 가는 걸로 할 수밖에 없다.

오후에는 발효와 숙성, 병입 과정을 직접 보고 배운다. 그리고 와인 라벨의 디자인, 와인샵 운영 등 판매와 관련되는 것들도 체험한다. 와인샵에서 정리를 도와주고 있는데 캐나다에서 온 모녀가 시음을 왔다. 와인을 맛본 후 엄마는 숙성을 안 한 화이트 와인이, 딸은 숙성을 한 화이트 와인이 더 좋다고 말한다. 내가 성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자 의아한 표정이다. 엄마는 자기주장이 강할 것 같고 딸은 남에게 잘 맞춰 주는 편일 것 같다고 하자 어떻게 알았느냐고 너무 신기해한다. 숙성 안 한 화이트 와인은 상쾌하고 직선적인데 반해 오크와 효모 숙성을 하면 부드럽고 둥글둥글해진다고 말해주니 너무 재미있어한다.

일과가 끝난 후에는 다들 모여 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3박 4일 동안 서로 많이 친해졌다. 나도 2주가 지나니 조금씩 영어가 트여 대화에 제법 참여하는데 그래도 거의 절반은 못 알아듣는다.

모리와 앤은 세미 비건인데 카를로스와 조지는 채식주의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벌꿀, 치즈 등은 왜 먹으면 안 되냐고.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혹시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국의 한강 작가를 아느냐고 물었다. 소설 채식주의자를 이야기하자 앤만 안다고 한다. 역시 어디든 책 읽는 사람들 그리 많지 않다. (이 글을 읽고 계신 구독자 분들께 감사) 책을 읽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 지보다 모든 폭력에 대한 저항이 채식주의의 바탕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하니 다들 동의하는 눈치다. 유기농 와인과 채식주의는 결국 우리 모두 함께 지구나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주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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