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에서 트렌드를 읽는 건 과거엔 뛰어난 감각과 오랜 경험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패션업계의 성공 공식은 이제 더 이상 감각과 직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트렌드가 SNS를 통해 확산되고, 소비자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요구한다. 동시에 환경 문제와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은 브랜드에 지속 가능한 생산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트렌드의 예측 불가능성, 과잉 생산과 재고 부담, 그리고 지속 가능성(ESG) 압박은 패션 산업의 가장 큰 도전 과제로 부상했다.
ZARA는 이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패션이라는 ‘감각의 산업’에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라는 확고한 논리를 도입했다.
ZARA는 트렌드 분석에 있어 가장 혁신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프랑스의 AI 스타트업 Heuritech과 협력하여, SNS에 업로드되는 수억 건의 이미지와 해시태그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한다.
Heuritech의 머신러닝 모델은 이를 바탕으로 색상, 패턴, 소재, 스타일 변화의 조짐을 정량적으로 포착한다. 트렌드는 더 이상 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데이터로 ‘계산’되는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 전략 덕분에 ZARA는 디자인에서 매장 진열까지 평균 21일이라는 ‘초고속 제품화’를 실현했다. 이는 경쟁 브랜드 대비 최소 3배 빠른 속도라고 할 수 있다.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내는 것만큼, 그에 맞춰 신속하게 생산·유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즉,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지금 당장 사고 싶은 옷’을 매장에 걸어두어야 한다. ZARA는 자체 개발한 AI 수요 예측 시스템을 통해 매장별 판매 데이터, 지역 날씨, 로컬 이벤트 등 수십 가지 변수를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생산량과 물류 경로를 최적화해, 생산 리드타임을 기존 6개월에서 3주 이내로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재고 소진율은 85% 이상을 유지하며, 과잉 재고와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전략적 전환이기도 하다. 과잉 생산 감소는 ESG 경영 관점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ZARA는 판매 전략에서도 AI를 적극 활용한다. Inditex 그룹 차원에서 구축한 AI 기반 개인화 추천 시스템은 고객의 구매 이력, 검색 기록, 위치, 심지어 날씨까지 고려해 맞춤형 상품을 제안한다.
비 오는 날, 앱을 열었을 때 방수 재킷이나 트렌치코트가 첫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비자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AI가 최적의 구매 여정을 설계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ZARA의 이 혁신적인 전략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빠르게 생산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구조 자체가 결국 환경 오염과 자원 낭비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ZARA는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Join Life’ 컬렉션을 확대하고, 친환경 소재 개발과 재활용 공정 도입에 힘쓰고 있다. 탄소 중립 공급망 구축, 수처리 공정 개선, 친환경 포장재 사용 등도 주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패스트패션의 환경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술적 대응을 넘어 소비자의 소비 패턴 변화와 윤리적 소비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해결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가 입는 옷, 고르는 스타일, 그리고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 ZARA의 AI는 이미 우리의 소비 여정을 철저히 설계하고 있다.
과거 패션 트렌드는 스타 디자이너와 런웨이가 주도했지만, 이제 트렌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위에서 설계되고, AI가 창조하는 새로운 패션 경제 시대로 접어들었다.
ZARA는 더 이상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니다. 그것은 패션을 가장 잘 아는 ‘테크 기업’이며, 이미 우리가 입는 미래를 데이터로 디자인하고 있다.
작성자: ITS 28기 이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