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주택분양단지, 세계문화유산이 된 '구엘공원'

가우디, 근대 건축에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사유를 건네다

by 이팝

가우디 건축의 특징인 곡선과 자연의 결합, 건축, 조경, 도시계획을 아우르는 독창적 실험으로 근대 건축에 큰 영향을 준 안토니 가우디의 '구엘 공원'을 가보기로 했다. 이곳은 1984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공원이지만 당일 입장 인원을 제한한다는 정보를 듣고, 미리 구엘공원 홈피로 들어가서 티켓을 예매하고, PDF로 휴대폰에 저장해서 출발했다.


볼트 택시를 탔다. 구엘공원이 보이는 동네쯤 이르자, 오르막길 경사도가 급상승한다. 그나마, 좁고 가파른 골목길마저도 주차된 차들로 더욱 비좁다. 반대편에서 차가 마주 온다면 둘 중 하나는 후진이 필수여야 할 것 같은데, 일방통행을 알리는 그 어떤 표식도 없다. 알아서 잘 가야만 하는 곳이다. 아랍어(?) 노래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와, 덥수룩한 수염과는 달리 젊은 얼굴의 기사는 차분하게 운전하며, 골목길을 아슬아슬 달린다. 말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겠다.


하지만, 이 골목 저 골목 진입을 시도하던 기사는 난감하다는 듯, 오르막길 중간에서 멈추더니 더 이상 진입이 불가하다며, 위로 조금 걸어가란다. 길이 여러 갈래인데, 너무 좁은 골목길로 들어온 것 같단다. 예약 시간이 까딱까딱해서 조마조마한데, 예상치 못한 어정쩡한 장소에 내리니 불안 불안하다.


'아! 이러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것 아냐?' 생각하며, 사람들이 걷는 방향을 따라 6~7분쯤 걸었을까. 작은 교문 후문 같은 곳이 나왔다.

'입구치고는 너무 소박한데...'라고 생각하며, 검표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QR을 찍고 입장했다. 뒤늦게서야 그곳이 메인 입구가 아님을 깨달았다. 구엘공원은 입장할 수 있는 곳이 정문 말고도 몇 군데가 더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중에서 제일 한산한 보조 입구 쪽으로 입장한 듯하다. 그래서 골목길을 그렇게 헤매었나 보다...


들어오기는 했는데, 안내판도 없고, 어디가 어딘지 몰라 방황하다가 그냥 걸어 보기로 했다.

날씨가 흐리고, 좀 추웠지만, 겨울 날씨치고는 온화한 편이다. 하지만, 한 번씩 세차게 바람이 불 때면 바닥에서 일어난 흙먼지가 어느새 사람키를 훌쩍 날아오른다. 때 아닌 황사바람도 아니고, 문득 흙먼지 나는 땅을 오랜만에 밟아 보고 있음을 실감한다. 예전 초등학교 때 운동장 흙먼지 뒤집어쓰는 듯한 느낌이다. 마스크를 쓰고 올 걸 그랬나 보다.


버석버석한 흙먼지를 소매로 닦으며 조금 걷자, 키 큰 카나리아 대추야자나무와 '퀘이커앵무'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높은 둥지에 앉아서 오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고 있다. 구엘공원의 화려한 건축물 못지않게, 녹색의 아름다운 '퀘이커앵무'. 야자수 윗부분에 커다란 공동 둥지를 짓고 산단다. 새소리가 아름답다.


구엘공원


이제부터 뭔가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는 것 같다. 마치 잘 정돈된 원시림 속의 황톳길... 어느 곳에서 원시인이나 원주민이 불쑥 튀어나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카나리아 대추야자가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다


구엘공원 고가교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린 돌기둥과 아치형 길은 마치 숲과 건축이 하나가 된 느낌이다.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된, 돌로 만든 고가교와 한 땀 한담 장인이 쌓아 올린 독특한 상아탑이다. 공원 곳곳에 숨어 있는 산책로와 구조물이 마치 그림책 속 원시림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구엘공원 고가교


고가교를 지나 광장에 다다르자, 바르셀로나 시내와 지중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 '세르펜틴' 벤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벤치는 '앉을 수 있는 조각'이자, '사람을 배려한 건축'이다. 앉는 면 아래에 미세한 경사는, 벤치 아래 통로로 흘러 나갈 수 있는 배수 시스템이다.


알록달록한 '트렌카디스 기법(도자기 조각들의 모자이크)'은 카탈루냐어로 '부서진 조각, 깨뜨린 것'이라는 뜻이다.


가우디는 디테일의 끝판왕이다. 자잘하게 부서져 쓸모없어져 버린 것들이 다시 아름다운 작품으로, 그 쓰임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우디의 건축철학이다.


구엘공원의 세계에서 제일 긴 벤치


물결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긴 벤치는, 직선이 거의 없는 살아 있는 듯한 곡선이다. 잠시 앉아 쉬며,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기에 안성맞춤이다.



벤치를 지나서, 가우디 하우스 박물관에 도착했다. 어김없이 발코니가 아름다운 건물이다. 1906년부터 1926년까지 20년간 가우디의 거주지였으므로, 실제로 그의 건축철학과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가우디 하우스 박물관


이곳에는, 가우디가 설계하고 제작을 감독한, 가구와 장식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가구 또한, 자연을 관찰하는 데서 영감을 받아, 인체공학적이고 독창적이게 만들었다. 가우디의 검박한 생활공간, 여기저기 보이는 가우디의 곡선들, 독창적인 의자들을 보며 가우디라는 인물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한다.


가우디 하우스 박물관 내부



가우디 하우스 박물관 - 가우디 초상화


산책에서 막 돌아온 가우디가 모자와 외투를 벗어 걸어 놓은 듯하다. 화려한 공원 속 소박한 가우디 하우스 박물관에는 검소했던 그의 삶과 만날 수 있는 애용했던 소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공원 산책 중 조용히 추천하는 공간이다.


가우디 하우스 박물관


가우디 하우스 박물관을 나와서, 세 개의 십자가 언덕으로 향했다. 이곳은 오르막 경사도 심하지만, 바위나 돌도 많았다. 여기서 난 돌들을 활용해, 길의 난간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무 하나, 벤치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가우디식 돌로 만든 발코니, 정말 발코니에 진심인 나라!

구엘공원 - 세 개의 십자가 언덕


오르는 구간 구간마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들이 있어, 여행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멋진 연주가 배경이 되어 바라보는 세 개의 십자가 언덕, 완벽한 순간이었다.



내려다 보이는 도시를 멀리까지 줌인해 보니,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도 보인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지중해와 바르셀로나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자연과 도시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비록, 구엘 공원이 1900년대 사업가 유세비 구엘의 대규모 주거 개발 프로젝트로 출발해, 입지와 구매부족으로 분양에는 실패했으나, 가우디의 신앙과 철학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졌기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위대한 건축물로 남게 된 거 같다.


구엘공원 정문 입구쪽


거대한 기둥이 인상적인 하이포스타일 홀의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구엘공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도마뱀 분수(엘 드락)가 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으로 장식된 행운의 도마뱀은 사진 명소로, 사람들이 붐비지만 기다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나도 나의 차례를 기다려, 행운의 기도를 드려 본다.


구엘공원 - 엘 드락


이제 가우디의 멋진 구엘공원 동화책을 덮어야 할 시간.

뒤돌아 바라본 구엘공원은, 마치 어린 시절 읽었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처럼 아직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것 같기만 하다. 잘 있어~


구엘공원


구엘공원


얼마나 걸었던지... 당이 부족해. 과자의 집을 먹을 수는 없지만...

그 사이 우리 집 MZ가 검색한 주변 젤라토 맛집에서, 세 사람은 조용히 다음 여행지의 셀렘을 재충전한다.


역시, 민트 초코칩 최고!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지...







주객전도, 사람 구경하는 나무 위의 앵무새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구엘공원의 아티스트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