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문의 안목이 일군 예술의 화원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길에, 카노바스 델 카스티요 광장의 중심에 넵튠 분수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1784년, 카를로스 3세의 지시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완공된 이 대리석 분수는 거친 파도를 가르며 해마가 끄는 전차 위에 우뚝 선 '바다의 신', '넵튠'의 모습이 역동적이었다. 금방이라도 차가운 대리석을 뚫고 나올 듯한 조각의 몸짓은 신화 속 한 페이지를 연상시킨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들이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이곳으로 모여들어 이 분수대가 때로는 열정적인 함성으로 가득 차는 축구의 성지가 된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레알 마드리드가 승리할 때는 멀지 않은 시벨레스 분수대에서 승리의 함성이 물결친다고 한다.
차분한 예술의 거리와 스포츠의 뜨거운 에너지가 공존하는 곳 마드리드, 그리고, 가까운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 마주친 이 분수대는, 거장의 작품을 만나기 전 건네받은 근사한 예고편 같았다.
드디어 도착한 프라도 거리에 위치한 '티센 보르네미사 국립 미술관(이하 티센 미술관)'은 인근의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과 함께 마드리드의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을 이룬다.
왕실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프라도 미술관이나 현대 미술에 특화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과는 달리, 이곳은 하인리히 티센 보르네미사 남작과 그의 아들 한스 하인리히로 이어지는 가문의 사적 수집품에서 출발했다.
철강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티센 가문은 20세기 격동기 속에서 유럽 전역의 귀중한 예술품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했다. 이후 스페인 정부가 이 컬렉션을 인수하면서 1992년 국립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왕실의 권위보다는 개인의 탁월한 안목과 취향이 집대성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독창적인 정체성을 지닌다.
내부로 들어서면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소피아 왕비의 전신 초상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계단을 오르기 전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따뜻하고 거대한 '벨렌(탄생 조형물)'디오라마가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성스러운 사건을 당시 활기찬 일상 속에 녹여낸 작품이다. 성 가족뿐만 아니라 천사, 시장상인, 악사 등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도 있다. 실제 비단과 보석, 정교한 표정 등 인형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어 있는 수공예의 극치이다. 장인의 디테일에 구석구석 눈길이 가고 정감 있게 느껴지는 디오라마다.
티센 미술관의 컬렉션은 13세기 이탈리아 원시 회화부터 20세기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거의 모든 시대를 아우른다. 시대적 단절 없이 미술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중세 제단화, 르네상스의 초상화, 바로크의 명암법을 거쳐 인상주의와 아방가르드 개척자들의 작품까지 폭넓게 전시되어 있다. 특히, 19세기 미국 풍경화 섹션도 별도로 비중 있게 다루고 있어, 유럽과 미국 회화의 흐름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우선 3층(우리나라로는 2층)부터 올라가 그림을 쭉 보면서 내려오기로 했다. 그림이 너무 많아서 한 층을 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중에서 발걸음이 오래 머문 그림들을 추려봤다.
브라만티노의 '부활한 그리스도(약 1490년경)'작이다. 세밀하고 사실적인 표현의 예수의 얼굴, 눈물이 맺혀 있는 듯한 눈매가 슬프면서도 자비롭다.
이 그림 앞에 서는 순간 왠지 모를 울컥함이 올라왔다. 마르고 파리하게까지 느껴지는 예수의 얼굴, 그리고 충혈된 눈에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맺혀 떨어질 듯 슬펐다. '지금까지 살아오느라 고생했다. 너의 고통과 아픔을 다 안다'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 심금이 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 이게 뭘까...' 마치 마음을 들킨 듯, 그림 앞에 더 오래 서있다가는 울 것만 같아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전시관을 다 돌고도 이 그림을 다시 한번 더 보기 위해 또 갔다. 역시나 처음 봤던 감동 그대로다. 왠지 다른 사람들도 이 그림 앞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 것만 같다. 마음을 움직인 특별한 한 그림이었다.
발걸음을 옮겨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 앞에 섰다.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춤추는 순간이 아니라, 무대 뒤편에서 연습 중인 발레리나들의 찰나의 움직임과 긴장감을 포착한 드가 특유의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인상주의 화가답게 빛과 색채가 잘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화풍의 마르크샤갈의 작품 '수탉'이다. 샤갈의 따뜻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폴 세잔의 '앉아 있는 남자(1905~1906년)' 항상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를 찾으려는 세잔의 고민과 노력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유화로 그렸지만 항상 담백한 수채화 느낌이 있는 세잔의 그림이 좋다.
미국화가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밀리센트 서덜랜드 공작부인(1904년)'이다. 단순히 귀족 부인에 머물지 않고, 작가, 사회 개혁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에서 야전 병원을 운영하며 진취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드레스의 흐르는 듯 유연한 붓터치와, 배경과 주인공의 색채가 대비되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넘어 강한 개성과 자존감을 돋보이게 하는 작품이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프시케(1876년)' 외출 전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 찰나를 그린 그림과, 에두아르 마네의 '승마복을 입은 여인(1882년)'은 검은색 옷과 푸른 배경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살아생전 평생 불행했던, 네덜란드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의 석판화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이다. 가난한 농부 가족이 일과를 마치고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자신들이 수확한 감자로 저녁 식사를 하는 소박한 일상 장면을 담고 있다.
'오베르의 들판(1890년)'은 고흐 생애 마지막 시기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그린 작품으로 들판의 밝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아를의 하역부들(1888년)' 아를의 론강에서 하역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석양과 함께 담았다. 강렬한 노란색이 인상적이다. 티센 미술관에는 위의 작가들처럼 밝고 따뜻한 인상주의 작품들도 많다. 우리 부부의 발걸음도 이곳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콘서트 가서 아는 노래 나오면 떼창 하듯, 친숙한 인상주의 그림들을 보니 긴장감이 스르륵 사라지는 것 같다.
추상화의 거장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들이다. 검은색, 노랑, 빨강, 파랑의 유채색의 도형과 선들의 작품이다. 심플 바로 그 자체가 아닐까.
왼쪽은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말을 남긴, 파울클레의 '남쪽을 여행하는 R부인'이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순수하고 상징적인 재미있는 그림같다.
오른쪽은 피카소의 전형적인 입체주의(Cubism) 기법이 잘 드러난 '노란 셔츠를 입은 여인'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피카소의 연인이자 사진작가였던 도라 마르이다. 얼굴의 앞모습과 옆모습이 동시에 그려짐으로써 심리적 복잡함을 담아내려 했다.
피카소가 1967년에 그린 '기사(머스킷병)와 누드'이다. 이 시기 피카소는 렘브란트나 벨라스케스 같은 거장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머스킷병(총사)'라는 소재에 매료되어, 거칠고 속도감 있는 붓질과 대담한 생략이 돋보인다. 이곳에도 대략 1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피카소는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화법을 바꾼 것으로 유명한데, 단정한 입체주의 초상화와 말년의 폭발적인 드로잉 느낌을 주는 작품을 함께 보니 그의 예술적 여정이 한눈에 느껴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근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귀스트 로댕의 대리석 조각들이다. 매끈하고 섬세한 표현에 생동감이 느껴진다.
티센 미술관은 거대한 규모의 국립 박물관들이 주는 특유의 위압감이 없다. 관람객이 마치 취향이 좋은 수집가의 저택이나 서재에 초대받은 듯한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전시실 벽면의 따뜻한 살구빛 톤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자연 채광은 작품들과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밝고 환하다. 이러한 따뜻한 느낌 덕분일까 여유로운 마음으로 유럽과 미국 미술의 방대한 연대기를 산책하듯 감상할 수 있었다.
세기를 이어온 신화와 종교, 일상의 다양한 그림들 속에서 티센미술관은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단순히 그림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관찰하는 아름다운 시선을 선물하는 것 같다. 그 동동 뜨는 부푼 마음을 안고 미술관을 나선다. 이런 느낌이야말로 우리가 여행 중에 미술관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