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자부심 '프라도 미술관'

왕들이 사랑한 그림들

by 이팝

두근 거리는 마음을 안고 프라도 미술관을 향해 가는 길, 마드리드에서 주요 도시로 향하는 방향 안내 표시판이 보행자도로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발렌시아, 코르도바, 톨레도...



가는 길 내내 풍경도 예쁘고 볼거리도 많다. 마드리드 시내를 순환하는 이층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다. 알록달록 관광 광고가 여행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드디어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했는데, 정문이 아닌 듯하다. 북쪽 입구 근처로 들어온 모양이다. 긴가민가하는 우리를 '안토니오 라파엘 멩스(1728~1779)'의 전시 안내판이 반겨 준다. 18세기 유럽 최고의 화가로 칭송받았으며, 카를로스 3세의 전폭적인 지지로 왕궁의 천장화와 수많은 왕실 초상화를 남긴 화가이다. 젊은 시절의 '프란시스코 고야'를 알아보고, 왕실 태피스트리 초안작가로 발탁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야의 초기 화풍에도 멩스의 신고전주의적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미술관 입구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철제 구조물 위에서 즐겁게 웃는 사람들의 조각이 마음을 즐겁게 한다.



프라도 미술관 입구 왼쪽 언덕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산 헤로니모 엘 레알(San Jerónimo el Real) 성당'이다. 16세기초에 건립되어 스페인 왕실의 왕위 계승식이나 결혼식등을 거행했던 곳이라고 한다. 너무 섬세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다. 발길은 미술관 입구를 향해 가고 있는데, 눈길은 언덕 위 성당에 오래 멈춰 있다.



미술관 입구 앞에서 검표를 하고 보안검색을 마친 후 입장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1785년 카를로스 3세 때 건설되기 시작했다. 자연과학 박물관으로 계획되었다가 1808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침략해 오면서, 한때는 나폴레옹 군대의 마구간으로 쓰이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 1819년, 페르난도 7세 때 왕실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하며 개관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미술이나 예술품들은 왕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기에 일반 대중에게 널리 공개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프라도의 방대한 컬렉션은 스페인 왕실이 세대에 걸쳐 공들여 모은 심미안의 결정체이다. 왕가의 권력과 취향, 그리고 그 시대의 미학이 고스란히 축적 보존되어 대중에게 공개된 예술공간이다.



왕실의 소장품이 3000천 점이 넘는 데다, 그 작품의 사이즈가 또한 한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것까지 방대하다. 게다가, 전시공간이 넓고 방이 많아서,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대략난감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무작정 되는대로 이곳저곳을 쭉 따라가면서 보기 시작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여느 미술관과 다르게 엄격하게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내부 사진이나 작품들을 못 찍었다. 이는 많은 관람객들의 쾌적한 관람 환경 조성과 작품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사진을 안 찍다 보니, 오히려 작품감상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 추억을 함께 남길 수 없는 아쉬움도 있었다.


특히, 관람객의 발길이 많고 오랫동안 머무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방이 그렇다. '시녀들(Las Meninas)' 앞에 서면 관람객은 액자 밖의 관람객이 아니라, 17세기 펠리페 4세의 궁정 한복판으로 초대받은 손님이 된 듯하다. 거울 속에 비친 국왕 부부와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화가가 한 공간에 머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이 몰래 자기 휴대폰을 꺼내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여기저기서 보안요원들의 제지의 목소리가 높다.


'프라도 가이드' 책자 중에서


'프라도 가이드' 책자 중에서


발길을 옮겨 마주하게 되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방도 매혹적이다. 화려한 옷을 입은 '옷 벗은 마야'와'옷 입은 마야'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알바 공작부인'의 초상화에서 시작된 여정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1808년 5월 3일'을 지나 인간 내면의 심연을 드러낸 '검은 그림' 연작에서 절정에 달했다. 노년에 청력을 잃고 자신의 집 벽면에 직접 그렸던 '사투르누스'의 괴기함은 한 예술가가 겪은 영광과 몰락,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처절한 성찰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프라도 가이드' 책자 중에서


한 세 시간을 넘게 봤는데도, 아직 못 본 그림이며 조각들의 방이 많다. 목도 뻐근하고 다리도 아파서 내부 카페테리아에서 음료와 케이크로 당을 보충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또 그림들을 보러 갔다. 보고 또 봐도 엄청난 작가들의 초대형 화폭과 스케일에 압도당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으리으리했던 제국의 화려했던 역사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위대한 작품들 근처에서 이젤과 팔레트를 들고 서서 그림을 모사하는 화가들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미술관의 허가를 받은 '공식모사화가'들로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그리는데,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같은 거장들도 초기에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작품을 모사하며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이들이 그림 그리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많은 관람객 중 특히나 눈에 띄었던 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단체로 도슨트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그림 앞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그림의 역사를 듣는 장면들이었다. 청소년들의 관람도 꽤 많은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좋은 예술공부를 하는구나 싶어 보기 좋았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굿즈샵에 들렀다. 이 많은 작품들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몇몇 점은 기억한다 쳐도, 나머지 작품들은 돌아서면 잊힐 게 뻔하다. 굿즈샵에 프라도 가이드라는 책자를 판매한다. 운 좋게도 한국어 번역본이 있다. MZ가 입장권 예매 때 가이드북이 포함된 걸로 끊어 줘서 데스크에 요청해서 받았다. 돌아와서 보니, 상세한 내용 설명까지 곁들여 있어서 오래도록 추억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맙다.



가이드북은 프라도 전체 소장품의 요약본으로 400여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벨라스케스, 고야, 엘 그레코, 티치아노, 보스, 루벤스까지 프라도 미술관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프라도에 간다면 기념품으로 이 가이드북을 구매해 보는 것도 좋은 아이템인 것 같다.


우리가 미술관을 나올 즈음은 어둑어둑 퇴근시간 무렵이었는데, 내부까지 긴 행렬을 볼 수 있었다. 평일 오후 6시에서 8시까지 무료관람시간이 있어서 퇴근 후 미술관을 찾는 직장인들도 많다. 힘들고 지친 하루를 마감하며, 그들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다시 나오면서 바라다본 '산 헤로니모 엘 레알 성당'은 어둠의 고요와 조명빛이 더해져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동상이다. 하단 부분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옷을 벗은 마하'를 연상시키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뒷 배경의 조명이 어우러져 운치가 있다.



미술관 정문 앞에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였으며, 대표작 '시녀들(Las Meninas)'들을 그린 스페인 바로크 회화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기리는 동상이 있다.



정말 오늘처럼 그림을 많이 본 날이 인생에 처음이다. 너무 많이 봐서 어질어질하다. 한 번으로 다 볼 수 있는 그림들이 아니다. 퇴근하고 무료로 미술관을 관람하는 마드리드 시민들이 부럽다. 그렇게 자주 조금씩 천천히 자세히 오래 봐야 하는데 말이다.


거리로 나오니 숨이 좀 트이는 듯하다. 밤이 되니 마드리드의 거리는 더욱 아름답다.



특히나, 보행자 중심이어서, 양쪽 도로 가운데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보행 구간이 있다. 오래된 플라타너스 등 녹지공간이 잘 조성되어 있어 이곳을 거닐며 도시의 미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스페인 오기 전에, 사진 예쁘게 찍으려고 휴대폰도 바꾸고 갔는데, 흐릿하니 영 그렇다. 왜 이렇게 못 찍는 건지...



바르셀로나에서도 그렇고 마드리드도 그렇고 똑같이 느낀 점은, AI다, 자동화다 이런 산업혁명의 면모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네 조그만 카페를 가도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하고, 프랜차이즈 식당에서는 서빙로봇이 심심찮게 돌아다니는 게 일상인데, 이곳은 아날로그 세계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


시장의 조그만 식당에서도 투명한 와인잔과 묵직한 예쁜 도자기 접시에 메뉴를 담아주고, 서빙로봇대신 노련한 직원들이 눈치껏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준다. 물티슈대신 단정하게 접어진 천으로 된 냅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물병조차도 플라스틱 생수병이 아니라 색과 모양이 다양한 유리병이다. 생수값이 비싸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병을 바라보자면 그 생각을 접게 된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주변 사람들과 활달하게 웃고 먹고 마시고 떠드는 그들의 활기찬 문화가 느껴진다. 언젠가는 문명의 이기가 이곳에도 밀려와 AI나 자동화의 물결에 순응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아직까지는 이 오래된 아날로그 감성 충만한 도시가 주는 정겨움과, 마음 편안함은 어쩔 수 없다. 아! 소매치기에 대한 불안감 하나는 빼고 말이다.


그 와중에 만난 이런 건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마드리드의 주요 광장이나 시장의 공영 주차장의 실시간 빈주차 공간 'PLAZAS LIBRES'(잔여석)을 안내하는 표지판이다. '347 PZ MAYOR 마요르 광장- 347대 가능' 마드리드 중심가는 주차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이 전광판을 보고 어디로 갈 건지를 미리 결정할 수가 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아토차역 근처에 있는 '스페인 농업수산식품부(Palacio de Fomento)'건물 옥상에 있는 멋진 조각상을 바라본다. '아구스틴 케롤'의 작품으로, 두 마리의 페가수스와 승리의 여신이 있는 '영광(La Gloria)'이라는 조각상이다. 해 질 녘 마드리드 풍경의 화룡점정이 되고 있다.



왕실 컬렉션의 스케일이 압도적이었던 프라도 미술관,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훌륭한 미술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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