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하셨나요?

by 이팝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눈앞에 손님 한 명 없는 한가한 미용실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가 꽤 길기도 해서,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차였다. 마침 잘 됐다 싶어 문을 쓱 밀고 들어갔다. 직원의 조용한 빗자루질이 멈추고, 예약유무를 묻는다. 안 했다고 했더니, 다른 예약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머쓱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왔다.


그렇게 또 몇 주가 흘렀다. 오가는 길에 눈에 띄는 그 미용실은 늘 손님이 한 명뿐이던지 없었다.

'저렇게 한적한데, 조금 기다렸다 해주면 될 듯한데... '

들어가서 조금 기다려도 되니까 그냥 해달라고 떼를 써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이 답답한 머리를 견딜 수 없어, 맘 잡고 처음으로 동네 미용실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누군가 전화를 받았고, 날짜와 시간을 예약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이 별것 아닌 전화 한 통이 왜 그리 하기 싫고.. 내키지 않은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어떤 날인가 지금의 머리를 하기 위해 상쾌한 마음으로 동네를 나섰었다. 미용실 몇 군데를 돌았는데, 공통적으로 손님은 안 보이는데, 다 예약이 되어 있어서 곤란하다는 말이었다. 그 몇 군데의 거절은 나로 하여금 머리를 해야겠다는 의지는 사라지고, 상쾌한 마음은 이내 주눅이 들어버렸다. 마지막 들른 네 번째 미용실에서 다행히 예약 손님이 없어, 겨우 머리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당연히 예약을 해야하는데... 그게 참 하기 싫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날로그 세대라서 그런가 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의 가속화에 따른 기술 발전은 어느덧, 동네 안 작은 미용실조차 온라인 예약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른바, 예약의 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예전에는 미용실 가서 머리 롯뜨를 감고 앉아 있다 보면, 동네 아는 사람 한 두 명씩은 꼭 만나게 되어 있었다. 이런 저런 안부를 묻고 가볍게 차를 마시며, 소문이나 정보를 듣던 북적북적 나름 사랑방 같았다. 파마를 하는 두 세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그런 풍경은 보기 힘들다.


미용실 원장님의 얘기로는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보니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예약된 시간에 오다 보니 점주 입장에서도 손해일 때가 많다고 한다. 예약과 예약사이 어중간한 짬시간이 그러하단다. 손님을 받기에는 너무 짧고, 버리기 아까운 시간이 중간중간 많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그 시간에 다른 손님들의 컷이나 손질도 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객장 공간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디자이너 몇 명만 왔다 갔다 할 뿐, 프라이빗해진 만큼의 쓸쓸한 공기로 가득하다. 머리 하는 3시간 동안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오느라 목이 뻣뻣하다.


너무 북적이고 많이 기다리는 것도 싫긴 하지만, 예전의 사람냄새나는 사랑방 공간 같던 미용실이 그리운 날이다. 미용실이 한가해 보인다고, 그냥 가지 마시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수면위를 미끄러지는 백조의 부지런한 발놀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예약이 줄서 대기하고 있으니...예약부터 하시라~


이미 다 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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