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를 찾아서

0-0 월간 에세이

by 흔한

1.


삶에 걸려 넘어진 자들은 위험이 거세된 무해한 공간을 찾아 나선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그 당시 내가 느꼈을 불안감은 고작해야 용돈이 부족해 안절부절못하는 게 전부였을 텐데 말이다.


유년시절 마음속 안식처는 어항이었다. 잔잔한 파도 하나 없는 평화로운 공간.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지 못했지만, 항상 당연하다는 듯 내가 관리했었다.

"거북이는 100년도 넘게 산대"

동생에게 괜히 자랑스레 말할 때 내가 창조한 작은 세상이 거북이와 함께 영원할 것 같았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시간 아니던가. 물결하나 일지 않는 고요와 완벽의 세계는 항상 내 자랑거리였다. 특히 TV로 동물의 왕국을 볼 때면 더더욱 그랬다. 동물의 왕국에서 악어와 재규어에게 공격당하는 야생 거북을 보면, 플라스틱 수초와 사료로 둘러싸인 우리 거북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반면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야생 거북이는 너무도 이상했다. 거북이는 산란기가 되면 바닷속을 떠나 뭍으로 한참을 나온다고 한다. 알을 낳고, 새끼가 태어나면 아기 거북이들은 바다로 여행을 나선다.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길 위에 있는 악어와 재규어의 이빨이 날카로운 것을 알면서도.

어린 나는 '우리 거북이처럼 어항에 살면 될덴테...'라고 생각했다. '어항이 싫다면 그냥 알을 낳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아냐, 그것도 싫다면 바다에 낳으면 되잖아! 어차피 새끼거북이는 다시 바다로 와야 하는 걸?'


그러던 어느 날, 거북이가 어항 속에서 사라졌다. 내 거북이는 말 한마디, 발소리 한 번 낸 적이 없어서 하루가 반쯤 지난 오후가 돼서야 알았다. 어둡고 습한 곳은 죄다 찾아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어항 속 거북이도 어쩔 수 없는 거북이어서, 때가 되면 물을 벗어나 위험한 세상으로 떠나는 숙명이라도 가지고 태어난 걸까? 거북이의 행방에 대해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자신도 못 봤다며 말했다.


"뭐 저기 해운대 바다로 갔나 보지"



2.


고등학교 시절 안식처는 해운대였다. 그곳은 인생에 걸려 넘어진 자들의 비명을 도려낸 고요한 진공 공간이었다. 화려한 건물, 취객의 웃음소리와 자동차 경적소리로 가득 찬 해운대 길거리를 지나가면 넓은 바다, 흔들리지 않는 수평선이 펼쳐진다.

바다의 고요는 해운대의 소음과 극명한 대비를 이뤄 바다를 바라볼 때만큼은 내가 도시의 혼돈 속에서 탈출했음을, 비로소 정적의 순간을 맞이했음을 상기시킨다.


'언젠간 이곳을 떠나 잔잔한 바다 너머로 떠나야지..'라고 생각했다. 그게 여행이 될지, 유학 혹은 해외 인턴쉽일지... 뭐든 알게 뭐람. 그냥 바다의 고요함이 좋았고, 그 수평선 끝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미래를 생각할 때면 현실 속 복잡한 문제는 말끔히 사라졌다.


바다의 평안함을 느끼다 보면 생각은 갈피를 잃고 미래로 미래로 혹은 아득한 과거로 뻗어갔다. 그러다 언젠가 거북이를 키우던 시절까지 생각이 거슬러갔고, 어느새 거북이를 이해했다.


평안은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문젠 걸. 유리 어항과 여과기로 이루어진 가짜 세상은 안주할만한 현실이겠으나, 자랑할 만한 미래를 보여주진 못했으니까. 복잡한 도시 속에서도 바다 너머의 고요한 세상을 생각하며 위안을 얻은 나처럼, 내가 키우던 거북이 역시 포근한 어항에서 벗어나 위험한 바다로 돌아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위험하지만 미래를 꿈꿀 자유가 있어 평안한 넓은 바닷속으로 말이다.



3.


"한강에서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종 거북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그중 붉은 귀 거북은...."


막 서울로 상경한 나는 뉴스를 보다 '한강에도 거북이가 있나?' 하는 생각에 한강으로 갔다. 거북이를 찾아 한강으로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어디에서도 거북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거북이도 없는데 왜 다들 반포까지 찾아온 걸까? 그들을 따라 맥주 한 캔을 사들고 쓸쓸히 앉아 한강만 바라보았다.


한강은 충분히 넓지만 그 한계가 분명했다. 강의 차안과 피안에 늘어선 건물을 보다 보면, 거대한 어항 같다고나 할까? 단단한 유리 건물로 둘러진 채 물과 흙이 적당히 섞인 환경. 그리고 뭔가 인공적인 느낌의 풀과 나무들이 어항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높은 빌딩 속에서 강을 내려다보면 마치 어항 속 거북이를 구경하는 느낌일 것 같았다. 커다란 어항 속에서 나는 약간 답답해졌다.


맥주를 다 마실 때쯤, '그래 거북이가 없는 이유를 알겠네...' 하고선 집으로 돌아왔다. 바다를 찾으러 떠난 내 거북이가 다시 어항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강 저편에는 지금 이곳과 마찬가지로 도로가 있고, 차들이 있다. 불빛과 소음, 취객의 웃음소리와 자동차 경적소리가 가득한 현실의 세계가 있다. 한강은 "저기가 강 너머, 끝이야. 강 건너편도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아. 미래도 현실도 거기서 거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바다는 수평선 너머 미래를 상상할 자유를 주었지만, 한강은 그렇지 않았다.




4.


누군가는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하는 치기 어린 생각이라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한강에 대해 말할 때 한강뷰 아파트 매매가를 들이미는데 내가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반포 59 타입 아파트가 20억이라고? 그래 자본주의 만세다 만세.


하지만 아직도, 나는 한강에 가면 어항 속 거북이의 답답함을 느낀다. 끝없는 파도와 단단한 수평선이 없어서. 뻥 뚫린 하늘도, 바다 너머 미지의 세계도 없으니까.


여전히 철없는 나에겐 한강은 해롭고 바다는 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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