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0-1 월간 에세이

by 흔한

0.


BEAR는 과거 게르만어로 ‘갈색’이라는 뜻이었다. 곰을 뜻하는 게르만어는 따로 존재했는데, 곰이라는 존재가 너무 두려워 차마 그 이름을 쓰지 못하고 ‘갈색’이라는 뜻의 bear로 곰을 칭했다 전해진다. 그러다 본래 곰을 의미하던 게르만어는 소실되고 bear가 곰이라는 뜻이 되었다고.


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부르기조차 두려운 대상에 대해선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설사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애써 그 이름을 외면한다.




1.


과거 탄광에서는 매년 180여 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의 삶은 위험천만했다. 수직 갱도가 붕괴되어 지하에 고립되고 몇 시간만 지나면 램프 배터리가 바닥난다. 유일한 불빛인 이마 위 헤드라이트는 졸린 듯 눈을 깜빡이다 곧 잠에 든다. 새어든 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선 소리와 냄새에 예민해진다. 갱의 천장을 바치던 동바리에 깔린 동료의 비명소리와 파묻힌 탄에서 나는 은은한 가스냄새가 느껴진다. 그러다 비명소리마저 저물고 비릿한 가스 냄새에 코가 마비될 때쯤, 사고자들은 죽음을 직감한다. 빛도, 소음도, 어떠한 향도 없는 적막한 죽음을. 감옥 같은 지하 수백 미터 검은 벽의 막장엔 죽음의 위협과 캄캄한 어둠뿐이다.


탄광의 끝에서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 유폐되어 죽음을 마주한 이가 매년 180명씩 발생한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붙지 않았다. 단순히 사고사라고 말하기엔 너무 두루뭉술하고, 질식사라고 하기엔 그보다 훨씬 외로웠는데. 이름이 생기기 충분한 사고 빈도였으나 사람들이 탄광에서의 죽음에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그 사고가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었을까? 죽음은 원래 쓸쓸한 것인데, 탄광에서의 죽음은 특히나 더 그렇다. 나이가 들며 죽음과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런 무명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생면부지의 것이다.


위험하지만 돈벌이가 된다. 이 문장 하나에 의지해 광부들은 탄광에 들어섰다. 그들은 석탄을 끊임없이 캐냈다. 석탄은 식물이 수중에 퇴적하여 매몰된 후 가열과 가압작용을 받아 생성된다. 말하자면 죽은 목재의 시체가 압착된 흔적이다. 그러니까 광부의 일은 죽음을 무릅쓰고 탄광에 들어가 죽음의 흔적을 캐내는 일, 죽음으로 생을 이어가는 일이다. 광부의 삶은 탄광과 석탄만큼이나 어둡다.


검은 광부들이 모여 만든 탄광촌은 잿빛 도시였다. 도시를 덮는 탄가루, 삶 속에 파고든 죽음과 그림자, 폐허 같은 가난의 삶 때문이다. 굴을 빠져나와 도시로 돌아와도 죽음은 떨어지지 않는다. 광산이 가장 활발히 운영되던 80년대, 광부들은 이름 모를 합병증에 시달렸다. 많은 광부들이 폐병으로 명을 달리하고 나서야 진폐증이라 명명되었다. 광부는 이렇게 굴 안팎에서 이름 없이 죽었다.


사방이 캄캄한, 탈출구 없는 그들의 죽음을 뭐라 불러야 할까? 의학적으로야 일산화탄소 급성 중독으로 인한 질식사 혹은 진폐증으로 인한 심폐기능 정지 일 테지만, 그 단어 어디에도 그들의 삶이 부재하지 않나. 그건, 세월호 참사에 담긴 이야기들을 선박 사고에 의한 익사라 정의하는 것만큼이나 무책임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신입사원 교육 차 방문한 어느 폐광 앞에는 거대한 위령비가 있었다. 위령비에는 수많은 사망자의 이름 대신 ‘산업전사’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죽음이 직업병이라는 점에서 탄광은 가히 전쟁터라 불릴 만했다. 정부는 전쟁터에 나가는 광부의 사기진작을 위해 그들을 산업전사라 불렀다고 한다. 산업전사라는 단어에는 탄광의 비장함이 석탄자국처럼 검게 묻어 있었다.


다채로운 광부들의 삶을 산업전사라 뭉뚱그린 그 위령비에서, 제각기 다른 수목에서 기원하여 각자의 형태로 깎인 석탄을 산산이 조각내 편의대로 뭉친 연탄의 무심한 폭력성이 엿보였다. 그들의 삶은 산업전사라는 말로 간단히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난 그들의 사고에도, 폐병에도, 위령비에서도 각자의 삶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지나치게 어둡고 딱딱한 이야기가 신입사원 교육에는 부적합하다 여겨서였을까. 교육 담당자는 본인의 이야기를 보탰다. 자신의 부모님은 강원도 광산 자락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그러다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이야기도, 광산 안 쪽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남편이 눈에 선해 떠나지 못하고 음식 장사를 했던 어머니 이야기도 말해주었다. 그제야 광부의 이야기가 총 천연 유채색으로 보였다. 그들의 죽음을 거슬러 올라가면, 질식사 이전에는 갱도 내 사고를 유발한 부주의가 있었고, 그전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갱도로 출근해야 하는 광부들의 가난과 그런 광부들에게 의탁한 남루한 광부 가족의 삶이 있었고,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아련한 사랑을 담아 파는 연탄구이가 있던 것이다.




2.


구공탄의 시대가 저물며 지독한 돈벌이도 막을 내렸다. 도시의 온기는 더 이상 광부의 노고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폐광이 늘어나고, 탄광 사고와 진폐증이 줄어들며 죽음은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광부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죽음을 대가로 삶을 영위하던 그들은, 역설적으로 죽음을 빼앗기고 나니 삶을 이어갈 힘마저 잃었다. 수입이 줄어들고 폐광 근처 빈 집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광산을 떠났다. 제 몸을 불사른 연탄이 무너지듯, 잿빛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그리고 그 터 위에 강원랜드가 세워졌다. 폐광에 따른 지역 회생 방안으로 카지노 사업허가가 났기 때문이다. 폐광이 있던 터에 지어서였을까? 강원랜드 역시 죽음과 친숙했다.


강원랜드에 입사한 지 막 1년이 지났을 때였다. 1년이라는 시간은 모든 선후배를 다 알긴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를만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구분하는 정도는 가능케 했다. 인재육성팀 대리는 따를만한 선배였다. 사담을 나눈 적은 없었으나 신입사원 교육 담당자에 대한 내적 친밀감 정도는 있었다. 1년간 인턴 생활을 지원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하여 강원도 생활을 수년째 버틴 것에 대한 자그만 존경심 역시 함께 품었었다.


그날은 하늘이 유난히 어두웠다. 하늘에 구름 몇 조각 떠올랐을 뿐인데도 그랬다. 먼발치 낡은 목조건물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마도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해 무언가를 태우는 듯했다. 햇빛도 힘을 잃어 그림자마저 희미했다. 그늘에 숨어있는 눈은 발길질에 구르고 굴러 먼지를 잔뜩 품고 그을린 회색빛을 띄었다. 강원도 정선의 흐린 정경은 과거 석탄 가루가 날리던 잿빛 도시를 상기시켰다.


그날 아침 그 선배는 차 안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해외여행을 다녀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사람들은 대리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하소연하듯 쏟아냈다. 그는 당일 새벽 4시에 시계처럼 일어나 곧바로 출근했다고 한다. 사무실에 도착해, 그가 맡은 업무를 전부 끝내 두고 컴퓨터를 껐다. 여행지의 맑은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책상 위 기념품은 가장 친한 동료 직원의 책상에 뒀다. 그리고 유서를 꺼내 단정히 접어 같은 팀 차장님의 서랍에 넣어두었다. 겨울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사무실을 빠져나와 차로 돌아갔다. 정처 없이 그저 회사에서 먼 방향으로 운전했다. 30분이 지났을까. 차를 멈추더니 뒷좌석에 놓여있던 연탄에 불을 지폈다. 그가 내다본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아침이 아직 오지 않았다. 언덕 너머 목조건물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차 안에서도 느껴졌다. 그는 칠흑같이 검은 연탄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어색하다 생각했다. 진창에 구른 내 삶도, 다 끝난 뒤에는 깨끗이 하얘질 수 있을까. 그는 하루가 길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 흩어지는 연기처럼 조용히 허무해졌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이유를 붙이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일찍이 앓고 있던 우울증에 대해 말했다. 누군가는 직업군인 시절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했다. 이혼하기 직전의 결혼 상태에 대해서도, 자녀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의 가정사를 탓하는 이도 있었다.


각자의 의견은 달랐으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장례식장엔 상주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가족 대신, 유서를 받은 차장님이 상주 역할을 도맡았다. 장례에 방문해 차장님께 몇 마디 말을 건넸으나 쉬이 받지 않았다. 그의 태도가 친절하지도 쌀쌀맞지도 않아, 왠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마음이 저몄다. 눈물이 옅게 고여서 그런진 몰라도, 향에서 피어오르는 자그만 연기는 아스라이 흩어졌고 옆에 놓인 흰 국화마저 희미하게 흔들렸다. 수취인 없는 위로를 제문처럼 몇 마디 외던 나는 이내 구석에서 술과 밥으로 허기만 채웠다. 위로의 말을 건넬 대상이 없는 장례식은 고요했다.


나는 그 대리님에 대해 충분히 잘 알지 못했다. 내가 가진 작은 고마움과 존경심으로는 대리님의 고민을 가늠할 수 없었다. 어떤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애도조차 감히 할 수 없었다. 울음도 자격 있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란 사실을 그때야 깨달았다. 나는 눈물마저 삼키고,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바라보았다.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비슷한 겨울이었고, 비슷한 죽음이었다. 실장님은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느낌에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마땅한 의료 시설이 없던 강원도 정선의 내과 전문의는 몇 알의 약만 쥐어준 채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받기를 권했다. 그렇게 귀가한 실장님은 다음날 정오가 다 될 때까지 출근하지 않았다. 직원이 자택에 방문했을 땐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져있었다고 한다.


서울로 유학 간 아내와 자녀는 급히 강원도를 찾아왔고 황망히 장례가 치러졌다. 이번에도 마땅한 사인은 없었다. 다들 그저 평소 앓던 지병에 코로나 백신 부작용이 겹친 결과라 추측할 뿐이었다. 장례식 한 구석에 있으니 소름 끼치는 익숙한 고적함이 밀려왔다. 유가족에게는 처량한 죽음에 동반되는 침잠된 고독이 배어 있었다. 내가 어찌 노력해도 메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고 느꼈다. 숨이 콱 막혀, 괴로웠다. 그래서 열심히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셔 보았지만, 가슴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가늘게만 느껴졌다. 그날도 하루 종일 바닥만 보며 걸었다. 현실이 무서워 고개를 처박은 타조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장기 휴가를 다녀온 뒤, 나는 퇴사했다. 마지막 날 아직 남아있는 짐을 정리하기 위하여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대리님과 실장님이 있던 자리가 눈에 들어왔고, 소름이 끼쳤다. 그들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커서, 낯익어야 할 모든 것이 마치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사무실에 들어올 때 으레 건네던 “안녕하십니까” 란 인사보다 “실례하겠습니다” 라 말하고 조심조심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두 번의 이별과 그들의 빈자리. 그것이 강원도 정선에 남기고 온 겨울의 기억이다.



3.


강원도의 경험이 내 원죄라도 되는지, 죽음은 도망치듯 이직한 직장까지 따라왔다. 지금의 나는 인사담당자로 근무하며 간신히 친하다 말할 정도의 동료가 올린 상가원을 검토하곤 한다. 마음에는 애도하는 심정이 듬뿍 담겨 있으나, 입 밖으로 꺼내는 말은 고작해야 “결재선 수정해서 다시 올려주실 수 있나요?” 가 전부다. 결재선이라는 단어는 우리 관계를 공적인 관계로 규정하는 것 같아 위로의 말을 덧대기 어렵다. 내 서툰 위로가 잠든 우울을 깨울까 두렵기도 했다. 이 나이쯤 되면 서툰 건 나쁜 거다,라고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쁜 것보단 무정한 편이 나을 테니까. 난 오늘도 몇 번이고 애도의 말과 희미한 슬픔을 억지로 삼킨다. 내 마음속엔 나무처럼 쓰러진 죽음이 퇴적되어 매몰된 후, 꾹꾹 눌러 삼킨 슬픔에 가압작용을 받아 생성된 시커먼 석탄이 한가득이다.


검은 하늘을 도화지 삼아 숨이 하얗게 피어나는 겨울이면 흰 연기와, 그만큼 검은 연탄과, 강원도의 뿌연 겨울 하늘이 생각난다. 탄광의 끝에서 사고를 당한 광부와 닫힌 차 안에서 탄광 속 광부처럼 고독했을 대리님의 죽음이 떠오른다. 진폐증으로 삶을 마감한 선탄부와 합병증으로 가슴을 쥐어짠 실장님의 고통이 생각난다. 아무도, 아무것도 위로하지 못한 채 그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몰라 타조처럼 고개 숙여 시야를 가리던 나 자신도.


이젠 이런 내 흐릿한 감정을 슬픔이라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어란 언제나 너무 노골적이라서, 이 감정을 무엇이라 칭하는 순간 흐릿함을 모두 지워버리니, 이번에도 망설이다 명명하길 포기하고 다만 고개 숙여 바랄 뿐이다. 살아가며 더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삶의 회로 속에 이름 없는 것들을 다시 마주할 때는 내가 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길. 어둠 깔고 냉기 덮은 빈 방에 그들을 홀로 두지 않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거북이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