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씨, 포도알, 알사탕

1-3 월간 에세이

by 흔한

강원도 정선엔 300여 개의 전당포가 있다. 부동산, 시계, 차. 담보물은 다양하다. 아프리카의 어느 광산엔 다이아가 돌멩이처럼 굴러다닌다던데. 이곳 거리엔 담보 맡긴 차들로 빼곡하니 전당포의 위용이 그에 비견된다. 사람들은 돈이 궁할 때 전당포를 찾는다. 병원비를 구해야 하거나, 사채를 갚아야 하거나, 야반도주할 자금을 마련하거나. 정선의 수 많은 전당포는 이 곳이 궁박한 자들의 도시임을 증명한다.


실개천이 흐르는 정선 산자락을 따라 고개를 들면, 강원랜드의 청록색 지붕이 보인다. 카지노는 작은 집이란 뜻의 이태리어 Casa에서 유래하였다. 그 의미가 무색하게도 강원랜드 카지노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궁박한 자들을 발 밑에 둔 채 홀로 고고히 산 중턱 한가운데 외딴 성, 높은 첨탑처럼 솟았다. 청록 지붕의 높은 건물을 찾아오면 입구부터 눈을 찌를듯한 불빛이 혼을 빼간다. 종업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넓은 문을 지나 카페, 식당, 명품샵을 거치면 전당포의 심처에 카지노가 당당히 위치해 있다.


오전 10시가 다가오면 카지노 입구는 어딘가 고장 난 사람들로 가득 찬다. 카지노의 불빛이 화려하니, 사람들은 명도를 조절하기 위해 눈빛을 잠시 꺼둔다. 명순응 된 눈동자는 망가진 증거다. 이곳에선 상처가 훈장이기에, 입구의 앞줄은 어김없이 눈빛이 더 어두운 자들의 몫이다. 어떤 이는 너무 오랜 시간 눈빛을 꺼둔 채 살아, 안광을 발하는 법을 잊었다. 그들에게 세상은 심해와 같아서, 이따금 정선을 벗어나는 듯싶다가도 초롱아귀처럼 화려한 빛을 내뿜는 카지노로 돌아오고 만다.


카지노에 들어서면 슬롯머신 돌아가는 소리와 사람들이 작게 내뱉는 숨결이 섞인다. 슬롯머신의 빼곡한 전자음 사이사이 한숨 소리가 박힌다. 돈을 잃으면 한이 쌓이니, 이곳의 숨은 모두 한숨이다. 테이블 위에는 초록색 천이 깔려 있고, 딜러들은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칩은 무표정하게 쌓여 있다. 사람들은 카드에 돈을 건다. 눈빛은 흐릿하고, 가끔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금방 사라진다. 누군가의 행운은 내 불행을 선명케 하므로, 지옥에선 타인의 웃음이 곧 나의 비명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사람들은 밥때가 되어도 허기를 잊고 게임에 몰두한다. 여기선 시간마저 절름발이다.


깊은 좌측 중앙, 카지노의 좌심실 부근엔 환전소가 위치해 있다. 이곳이 딜러 업무를 체험하러 온 내가 한 달간 머무를 곳이다. 주된 업무는 환전. 부 업무는 연습용 테이블에서 게임 룰을 알려주는 것이다. 테이블 딜러 체험하길 희망했으나, 사무직으로 입사한 카지노 풋내기에게 딜링 같은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순 없었나 보다.


몇 주간은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상처 입은 자들을 대하는 일에는 사고(思考)를 요하지 않는다. 칩을 나눠주는 기계적인 움직임. 한 손에 스무 개씩 칩을 양손 가득 쥐고 기다린다. 고객의 요청이 들어오면, 손 안의 칩을 덜어서 나눠준다. 딜러의 눈은 손에 달렸으니 눈으로 확인하여 칩을 배분하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진다. 개수는 손끝의 감각과 무게 변화로 파악한다. 나만의 요령도 생겼다. 칩을 덜어줬을 때, 손이 자두 씨만큼 가벼워지면 한 개. 포도알이면 세 개. 알사탕만큼 손아귀 빈틈이 생겼으면 다섯 개. 불안한 마음에 밤새도록 커팅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숙련된 톱니바퀴 사이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히 움직인다. 자두 씨 하나. 알사탕 두 개. 주문이 들어오면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은 행동을 지연시키고, 움직임이 지연되면 맞물린 톱니바퀴가 전부 멈춘다. 그러니 생각은 잠시 꺼둔다. 생각이 멈추면 마음도 멈춘다. 정지된 마음에 갈 곳 잃은 시선은 허공을 맴돌거나 고객의 턱과 목젖 사이를 더듬는다. 종종, 고객이 말을 걸거나 길을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그들의 조급한 말투와 간절한 눈빛은 못 본 체한다. 어느 순간, 정말로 보이지 않는다.


“이거 머 어찌하는 건데요?” 어느 날, 할머니의 투박한 사투리가 잠든 사고를 일깨웠다. 분초를 다투며 도박에 몰입한 이들은 항상 말이 빠르다. 느릿한 어조는 할머니가 고장 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녀는 벙벙한 검정 파카와 흰 면치마를 입었다. 파카에서 젊은 감각이, 하늘 한 흰 치마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나이를 미루어 짐작컨대 패딩은 손녀의 작품일 테다. 손에는 돈다발을 쥐었다.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꽉 쥐었다. 이 역시 할머니가 아직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출입금지가 파산보다 무서운 카지노에선 아무도 돈을 훔치지 않는다.


할머니의 눈빛이 형형하다. 아직 생기를 품은 그녀는 이곳의 이방인이다. 눈을 반짝이는 이방인의 말을 무시할 현지인은 없다. 특히, 사원증을 걸고 있는 신입사원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환전소 줄이 비교적 한산했다. 눈썹을 움직여 상사에게 허락을 득하곤 연습용 테이블로 가 친절히 룰을 설명했다. “아 이건 블랙잭인데요, 숫자를 21로 만드는 게임이에요.” 신입사원 평가 항목엔 성실성과 친절함이 포함된다. 친절은 내 장기다. “저랑 같이 연습게임 몇 번 해보실까요?” 할머니는 게임을 금방 익혔다. 비슷한 게임을 몇 번 해봤다고, 옅게 말했다.


할머니는 이윽고 나에게서 칩을 바꾼 뒤, 블랙잭 테이블로 가서 본게임을 시작했다. 그녀는 작게 여러 번 배팅했다. 게임은 금세 끝났다. 자주 잃었고, 종종 땄다. 짜리 막한 파카는 잘게 구겨져 초초한 마음을 드러냈다. 게임이 끝나면 나에게 다시 찾아와 칩을 더 받아갔다.


배팅액은 점점 커졌다. 이것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잃고, 바꾸고, 조금 더. 잃고, 바꾸고, 더 많이. 칩이 늘어난 만큼 지폐 다발은 얇아졌다. 초점은 흐려졌고, 말은 점점 빨라졌다. 빨라진 언어를 혀가 따라잡지 못해 할머니는 자꾸만 말을 더듬었다. 흐름이 끊기기 전에 다음 게임을 해야 한다며 환전하는 날 재촉했다. 그녀의 마음이 녹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블랙잭 테이블에서 사라진 할머니를, 퇴근길에 마주했다. 그녀는 카지노 근처에서 목각인형처럼 주저앉아 있었다. “총각, 내 얼마 잃었는지 갈카줄까?”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서론 없이 본론으로 찔러 들어오는 말투는 카지노 고객의 전형이다. 그녀도 어느새 카지노에 적응했나 보다. 사람들은 환경이 가혹할수록 빨리 적응하고, 카지노는 심해어의 혹독한 뱃속이다. 대꾸할 말을 궁리하고 있자니 할머니가 뒷말을 이었다. 그녀는 대화보단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다.


몇 천을 잃었다. 그것도 순식간에. 딸 때도 있었는데,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욕심이 났다고 했다. 아들 볼 면목이 없단다, 힘들게 모은 돈이었단다. 그래도 자기는 양반이란다. 옆에서 같이 게임하던 사람은 몇 년 전까지 수백억 부자였는데, 지금은 빈털터리가 됐다고 한다. 집을 담보 잡힌 사람 이야기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이윽고 내 옆에 서서, 사람을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저씨는 돈이 다 떨어져서 콤프*로 먹고 산다더라. 저기 빨간 잠바는 전당포에 차를 맡겼는데 집에도 못 간다더라, 돈이 다 떨어져서.

(* 콤프 : 카지노 이용객에게 게임 시간과 금액에 따라 지급하는 마일리지. 폐광지역 내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녀의 입에서 돈이 끝없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졌다. 중소기업 사장의 수백억짜리 추락. 서울 부동산 부자의 수십억짜리 추락. 차를 담보 맡긴 직장인의 수천만 원짜리 추락. 추락의 역사를 읊는 그녀 역시 앞서간 사람을 따라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추락은 비상(飛上)의 증거다. 그녀는 추락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지만, 정작 말하고 싶은 건 찬란한 비행의 흔적이다. 나이 들어 받게 된 보험금. 세월을 녹여 만든 적금. 아들이 쥐어주는 용돈. 젊은 시절 고생하며 모은 쌈짓돈. 한 때, 그녀도 성실히 날았다. 그것이 요지였다. 다만 오늘, 추락했을 뿐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더욱 내밀한 개인사로 들어갔다. 안동 출신의 그녀는 고유의 근면성으로 머리가 샐 때까지 일했다. 일가를 이루고 텃밭도 가꿨다. 입동엔 메주를 담그고 김장을 했다. 그럴 때면 아들도 손녀도 모두 모였다. 재산이 넉넉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카지노 와서 놀다 갈 정도는 된다고 그랬다. 그녀는 이러한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을 만큼 정 많은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카지노에 다시는 방문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아직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슬롯머신의 파열음 대신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했다. 찢긴 마음을 자식의 안부인사가 기워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락이 아니라 착륙하길 기도했다. 그녀는 크게 배팅할 때면 휴대폰 배경화면 속 손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손녀의 둥그런 미소를 낙하산 삼아 착륙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정돈 거뜬해 보였다. 내 바람대로, 할머니는 한동안 카지노에 방문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비 내리는 날이었다. 시간은 새벽 4시라 퇴근만 헤아리고 있는데, 할머니가 그림자처럼 느지막이 나타났다. 옷차림은 일주일 전 그대로였다. 그녀는 나에게로 다가와 칩을 환전했다.


칩을 요구하는 할머니의 왼쪽 손목엔,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붉은 상처가 도드라졌다. 잔인한 칼날의 흔적이 뭉툭한 흉터로 남았다.


손목 위 길쭉한 흉터가 비행운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성실히 날던 때가 떠올랐고, 아스팔트 위 심장을 드러내고 헐떡이는 비둘기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실패한 자살을 카지노에서 갈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죽지 못해서, 혹은 죽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다.


자해는 스스로를 해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단지, 영혼의 상처를 몸에 표시하고자 할 뿐이다. 염색과 레게머리로 반항과 자유를 드러내듯 자연스런 행위이다. 다친 영혼과 몸의 공명이자 지독한 동어반복이다. 심부의 고통을 피부에 표상화하는 화가의 작업이다. 그녀는 그렇게 상처 입은 영혼과 몸으로, 내게 손 내밀고 있었다. 반대 손으로는 돈다발을 설게 쥐고서, 다른 손을 내밀어 칩을 요구했다. 상처받은 그 손으로.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서로의 양손을 포개 영혼을 보듬어 줬다면 그녀 몸에 난 상처 따윈 금방 아물 텐데. 난 그녀의 상처받은 손 위로 냉담히 칩을 건네주었다. 답신하듯 나에게 내미는 그녀의 오른손에는 지폐가 한 무더기. 아니. 돈 모으느라 고생한 세월이, 사랑하는 아들이 쥐어준 용돈이, 손녀의 애교를 보러 갈 차비가, 산더미. 산더미.


이곳은 고통과 쾌락이 전치된 곳. 심장이 고장 난 사람들은 자신의 살점을 떼어다 쾌락과 바꾼다. 고통이 클수록 쾌락도 커진다. 더 큰 쾌락을 원하는 자는 부모의 땀, 아들의 눈물과 손녀의 웃음을 바친다. 가슴을 짓이기는 고통을 쾌락이라 착각한다. 결국엔 자신의 목숨과 가족까지 전부 제단에 올린다. 조그만 주사위에, 베일 듯 날이 선 카드에 모든 걸 욱여넣는다. 갈비뼈를 부수고 심장을 조여, 칩 모양으로 작게 압축된 인생을 테이블에 올린다. 몇 차례 실랑이 후, 딜러의 손에 넘긴다. 수집된 칩은 다시 나에게 돌아오고, 난 그것을 또다시 돈과 바꿔준다. 고통을 계량한다. 칩은 한 손에 스무 개씩. 자두 씨, 포도알, 알사탕.


난 손목을 긋는 일에 동조하고 있었다. 침묵하고 있었다. 창공을 달리던 그녀를 추락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견딜 수 없었다. 가슴에 창을 내어 내게도 심장이 있음을 보이고 싶었다. 그녀처럼 손목이라도 잘게 그어, 붉은 피가 흐르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동맥의 줄기가 내게도 남아있어 어쩔 땐 끓는 피로 온몸을 데울 수 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역겨웠다. 그들의 삶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게. 서서히 점멸하는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할머니가, 그녀가, 사람들이 내뱉은 호흡을 나는 마시고 있었다. 그들의 숨을 빼앗고 있었다. 차라리 그들이 바친 것이 구더기나 나방 같은 것이었다면. 고귀한 삶이 아니라 차라리.


친절이 고객을 응대할 때마다 늘어나는 방문객 수와 일 매출. 더 자주 찾아오렴, 인생을 더 망치렴. 이곳엔 친구도 부모도 없단다. 돈이 없으면 빌리려무나. 지인의 삶도 이 구렁텅이에 빠트려. 전염병처럼 번지는 파멸의 즐거움. 출구는 간단해. 소나무에 목을 걸거나 문을 잠그고 번개탄을 피워. 죽음은 편안한 법이니 잘 놀다 가려무나. 난 손목을 그어 약탈하는 자. 새를 쏘아 추락한 심장을 꺼내는 자. 역병을 창궐케 하고,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파먹는 자. 성곽을 부수고, 친지를 살해하고 재산을 빼앗는 자.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젊음과 열망, 사랑하는 손녀까지 전부 가져간 게 나라고. 세상 모든 잔혹한 것을 모아다 돈으로 바꾼 게 나라고. 당신 스스로를 벌하지 말고, 나를 탓하라고. 내 살과 육신은 당신의 삶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젠 네 영혼 대신 나를 파먹으라고. 그러나 그런 생각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벌을 받듯 그곳에 서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힘들었다. 할머니가 지나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환전소를 찾아왔다. 칩을 달라며, 줄지어 내미는 손길. 그 손들을 뿌리쳐야 할까, 욕을 퍼부어 쫓아내야 할까? 걸어가는 걸음걸음, 남아있는 나날들을 내던지고 싶었다. 그들이 내미는 작은 손을 하나하나 꽉 잡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눈물을 참고, 익사하는 마음으로 칩을 내밀었다.


모든 게 가식으로 느껴졌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저질러지는 정동적인 행위들과 지리멸렬한 말들. 임원 지침과 실적 속에서 실현되던 파국적 친절. 손목 긋기로 이어지는 자두 씨, 포도알, 알사탕.


보슬비 떨어지는 밤, 후회로 숭진 그녀의 손목에 찔레꽃 수놓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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