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하루

3-4

by 흔한

늦은 밤까지 휴대폰과 뒹굴다 잠들면 아침엔 어김없이 베개 밑이나 귀 옆에 자리하게 된다. 그런 날 울리는 알람은 폭력적인 구석이 있다. 귀를 찌르는 알람소리로 잠을 거칠게 내쫓는다. 정신은 몽롱한데 이불은 따뜻하고, 공기는 시리다. 멍하니 앉아 있으면 1분 간격으로 맞춰둔 알람이 뒤이어 울린다.


회사가 이끄는 목줄에 질질 끌려 화장실로 향한다. 더 이상 나를 소모하기 싫다는 마음을 외면한 채 문을 연다. 바닥은 차갑고, 화장실 슬리퍼는 한쪽이 비뚤어져 있다. 멍한 와중에도 괜한 심술이 인다. 아침부터 고생하는데 가지런한 슬리퍼 정도는 대접받아야 하지 않나?


침대로 돌아가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꾹 눌러 참는다. 청춘을 낭비하는 건 젊음의 미덕이라고 하던데. 반대로 말하면, 시간을 쓰는 것은 이 나이쯤 먹은 직장인에겐 거하고 사치스런 일이다. 그리고 난 어디서 사치 부릴 만큼 넉넉한 형편이 못되고. 쉽게 말하면, 출근하지 않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단 소리다. 시간이라도 팔아 밥벌이하는 게 어딘가. 푹, 한숨을 내쉬곤 마음을 다잡는다.


납작해진 치약을 꺼낸다. 동난 치약은 잘 나오지 않는다. 바닥에 대고 끝에서부터 꾹꾹 누른다. 가장자리까지 모조리 훑고 나선, 치약 모가지를 비틀어 짠다. 아무리 메마른 치약이라도 한 번 쓸 양은 충분히 나온다. 칫솔을 입에 넣으며, 나도 치약 짜이듯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언젠가 소진될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하루하루, 간신히.


생각해 보면 항상 그게 문제였다. 밤을 쓰는 것도, 아침을 시작하는 일도 전부 내 것이 아니라는 거. 대학땐 밤에 술을 마시면 아침에는 수업을 쨌다. 그렇게 멋대로 허비하면 삶이 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소유한다는 건, 그것을 마음껏 망칠 수 있는 권리를 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나이가 들며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잔재 위에서 살아간다는 자각이 점점 강해진다. 겨우 출근 준비 가지고 유난이람. 하지만 유난 떨지 않으면 너무 별거 없는 인생이 아닐까 애써 위로한다.


눈을 반쯤 감은 채 화장실에 붙은 거울을 본다. 새해가 되니 조금 더 늙은 것 같다. 옆머리를 쓸면 밤새 자란 새치가 보였다. 흰머리가 거슬리지만 뽑기엔 너무 많은 양이다. 다크서클도 부쩍 깊어졌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나이가 들수록 거울을 보는 일은 당혹감을 마주하는 일이 된다.


늙은 내가 낯설어 거울 속의 얼굴을 서른 세 해로 나누어 보았다. 세 살 혹은 열세 살쯤의 모습을 떠올리면 멋쩍을 정도로 낯설다. 나랑 닮긴 했는데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 다른 세계선에서 결혼했을 양성재 씨의 자녀를 보는 느낌이랄까. 시간을 감아 스물셋에 도착하면 그제야 익숙한 내가 보인다. 모든 걸 망치기 일쑤고, 부족하고, 어설픈. 하지만 그런 모습도 용인받을 수 있는 20대의 전형. 조금 더 지나가면 오늘에 도착하고, 내 나이는 서른셋. 스물셋 정도가 기억 속 얼굴인데 벌써 서른셋이라니. 새치 필만큼 나이 먹긴 했네. 괜히 웃음을 지었다. 웃음을 따라 눈꼬리는 처지고 광대는 치솟아 주름잡으며 부딪쳤다. 어설프게 얼굴 구긴 내 모습에 보는 이 없이 민망했다.


출근 준비를 끝내곤 273번 버스를 탔다. 맨 앞자리에 얼른 앉았다. 버스 입구 옆자리는 풍경이 잘 보이는 넓은 창도 있고, 승객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도 있어 좋았다. 좋았다-라는 감상이 지나치게 단순해 보였지만, 출근길 아침에 그 이상을 떠올리는 건 무리였다. 겨울바람에 볼이 빨갛게 상기된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다. 옷깃을 동그랗게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버스에 타는 이들. 성실히 단장하고, 목에는 목도리를 둘렀다. 모두들 나름의 고된 아침을 견디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소박한 우애가 느껴졌다.


회사에선 피곤했다. 10분만 더 자다 나올걸 그랬나? 회의실 테이블엔 오늘 입사하는 신입사원 다섯이 앉아 있었다. 뻣뻣한 자세에서 긴장이 느껴졌다. 입사 절차를 설명하고 계악서를 썼다. 낯선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휴가와 급여 항목을 읊을 땐 이목이 집중됐다. 설렘으로 볼을 팽팽히 당긴 채 계약서를 살피는 모습이 아기 새 같아 귀여웠다. 저들은 내가 자기를 귀여워한다는 사실을 알까. 그들의 정장 차림이 내 눈엔 성실로 보이니, 피로에 찌든 나는 그들 눈에 선배 같아 보일까. 습관적으로 욱여넣은 이클립스의 화한 향이 번졌다.


계약서를 설명하며 그런 생각들을 했다. 어떤 업무를 3년째 담당한다는 것은, 업무에 잡념을 섞을 수 있는 경지를 뜻하는 듯 했다. 닳고 닳은 직장인이 되어 버린 것 같았지만 썩 나쁘진 않았다. 근로라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고 계약이라는 것은 회사에 사람을 매어두는 매정한 작업이겠으나, 달리 생각하면 근로계약서를 쓴다는 건 누군가의 시작을 기록하는 일 아니겠는가. 첫 만남은 어떤 상황이건 다소간의 설렘을 내포하고 있으니, 인사팀에서 일하는 건 어쩌면 축복받은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긍정도 얼마 못 가겠지만.


오후엔 면접을 진행했다. 연말정산 작업 자료도 기한에 맞춰 만들었다. 5시 반이 되어서는 시계처럼 퇴근했다. 출근이 습관이라면 퇴근은 노력이다. 필사적으로 쟁취하고 때로는 강탈해야 하는 전리품 같은 것. 오늘도 정시 퇴근을 얻어 냈다는 사실에 만족감이 들었다. 구내식당으로 향할까 하다가 메뉴를 보고선 포기했다. 가자미 튀김은 선을 넘어도 한참은 넘었다.


가방을 동여 메고 길상사 근처 카레집으로 향했다. 메뉴는 카레 단일 품목. 매장 명도 카레. 인스타 계정 명은 UNCURRY. 아주 무성의해 괘씸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풀어지는 신기한 가게였다. 매달 다른 메뉴를 파는데, 이 달의 메뉴는 싱가폴 새우 카레였다. 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고소한 새우 냄새와 이국의 향신채 향기. 문을 열면 카레가 뭉근하게 끓는 소리가 들렸다. 건네받은 차를 따르면 손이 따뜻해지는데, 너무 뜨겁지 않게 적당했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엔 돌봄 혹은 사랑 같은 말들이 오히려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곤 하는데, 이곳에선 작고 따스한 무언갈 얻어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물수건에 손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소근대며 식사하고 있었다.


집까진 걸어갔다. 8시가 넘은 시간. 칼바람 부는 영하의 날씨에,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마, 그냥 그러고 싶을 때 그냥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소한 것에 억지 쓰며 애정을 확인하는 연인처럼 오늘 하루에 투정을 부렸다. 겨울 밤하늘은 높고 선명했다. 걸음을 걸으면 햐안 달이 따라왔다.


거리는 보잘것없었다. 10년을 넘게 걸어왔던 길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따라 가로등이 좀 어둡네, 같은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깡총 걸음으로 뛰어오는 두 남매를 마주했다. 여덟 살 쯤으로 보이는 오빠는 검정 롱패딩을 입고 개구진 표정을 했다. 다섯 살쯤 된 여동생은 하얀 숏패딩 위로 깜장 모자에 빨간 목도리를 둘렀다. 그들은 골목 구석의 칼국수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저긴 장사가 잘 안 되는 가게인데, 늦은 시간에 애들끼리만? 신기한 마음에 유리문 안을 봤다.


가게는 마감했는지 온통 컴컴했다. 연극 주인공을 비추는 핀조명처럼, 부엌과 카운터 앞에만 새하얀 전등이 켜져 있었다. 아, 사장님 애기들이구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카운터에서 포스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이와 부모의 눈이 마주치기 직전, 가게를 스쳐 지나갔다. 집으로 향하는 어두운 오르막을 걸으며 상상했다. 국숫집 아빠가 하루 종일 견뎠을 멸치육수 비린내와 뜨거운 수증기. 이고 지고 나르느라 퉁퉁 부어버린 엄마의 다리. 그들의 하루 끝에서 아이들이 문을 열 때 딸랑이는 종소리.


집으로 돌아가선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읽었다. 자전적인 책이라 에세이 쓰기에 도움이 될까 했더니.. 아이 씨, 뭐야. 왜 이렇게 잘 써. 글 속엔 작가 어머니의 일생이 있었다. 어머니와 똑 닮은 삶을 꾸려나갈 작가 자신의 모습도 곁들였다. 가정사를 사실대로 담은, 지극히 사적인 글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여성에 대한 무한한 찬사로 읽혔다.


그녀의 문장보다도, 그 자세가 부러웠다. 어머니의 삶에 천착하며 글을 써 내려가지만, 기어코 보통 여성의 살갗에 닿고 마는. 한 사람을 서술하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을 어루만지는 넓은 품. 작가란 과연 태어나는 것이구나. 글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곧은 태도까지 가진 채. 나도 노력하면 언젠간 저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자문해 봐도 막막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았다. 평범을 다루지만 삶의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는 글. 전장 속 탄환이 철모 위 깃털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적군의 심장을 노리듯, 단박에 핵심을 꿰뚫고 마는. 내 글은 언제나 빈약해 철모 위 깃털에 현혹되어 섣불리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던가. 화려해 보이지만 속내 없던 이전 문장들이 부끄러웠다. 내 글이 형편없는 것이 필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 같아서 더 그랬다. 누군가를 마음 저미도록 따스히 생각했던 적 있었나? 살아지는게 아니라 내 발로 치열하게 생을 살아간 적은? 답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난, 글이 아니라 사는데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노력해야지. 노력해야지. 노력이 재능의 반대말처럼 느껴져 겁이 났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어린 시절, 작가를 꿈꾸던 내가 떠올랐다. 그땐 작가가 뭔지도 몰랐지. 무엇이 좋은 글인지, 기록할만한 삶인지도 모르고, 그냥 책을 좋아했는데. 그래도 유년의 미래엔 희망이 있었다. 비록 한 여름 해안가의 좌판에서 파는 싸구려 알록달록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미래를 떠올려도 막막하고 초조하기만 했다. 서른셋의 미래감이란 유통기한 같은 것인가, 생각했다. 지저분한 통조림에 갇힌 기분이었다.


고개를 털고 눈을 감았다. 전기장판의 온도를 43도로 맞추니 몸도, 생각도 나른해졌다. 작가가 못되면 국숫집 사장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이게 결심인지 포기인지 헷갈렸지만 아무튼. 푹신한 베개 위에서 하루가 아른거렸다. 썩 대단할 것 없는 오늘이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이런 고민을 베고 자면 아무런 결심 없이도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그만, 기척도 없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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