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

2-3 월간 에세이

by 흔한

N은 어릴 적부터 반골 기질이 다분했다. 명령이나 권위, 사회적 통념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세우곤 했는데, 수많은 반골들이 그러하듯 대체로 혁명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공부에 소질을 보이기에 과학고 준비반을 보냈더니 어느 날 문뜩 가수 준비를 하더란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애당초 하지를 않았다. 설득은 소인배의 방식이요, 증명이야말로 대장부가 걸어가야 할 길이니, 그는 당당히 대장부의 길을 택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가수가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판검사보다 돈을 많이 법니다.”라는 선언적 한마디만 남긴 뒤, 펜을 놓고 마이크를 잡았다. 세상 제일가는 가수라니. 실패는 고사하고 어중간한 성공 정도는 셈하지 않는 모습이 과연 대인의 풍모였다. 복장 터지는 부모님의 마음은 대범하게 넘겼다. 대망(大望)을 논하는데 어찌 가정의 대소사를 따지겠는가.


하지만 잔인한 세상은 항상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N은 가수도, 판검사도 되지 못한 채 그저 노래방을 좋아하는 무역학도로 성장해 적당한 대학에 진학했더란다. 그럼에도 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처럼 사고를 극한까지 몰고 갔다. 어떠한 무모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마치 미숙한 동기부여 강사가 머릿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가수 다음은 스티브 잡스였다. N과 같은 90년 대생들은 대학에 들어서며 스마트폰을 처음 접했다. 대학이 술과 자유로운 분위기로 초중고 학창 시절을 유치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스마트폰 역시 전위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것은 신기술을 넘어선 혁신이자 시대정신 혹은 미래 그 자체였고, N는 그 누구보다 세상이 뒤집어지길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그가 스티브 잡스를 동경하며 창업에 열을 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N이 특히 좋아했던 것은 스티븐 잡스의 ‘맥북에어 PT’였다. 잡스는 신제품 발표 현장에 갈색 서류봉투 하나만 가지고 나왔다. 그러고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서 짜잔.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 ‘맥북에어’가 나왔다. 종이를 넣는 봉투에 노트북이 들어가다니! 슬그머니 미소 짓던 잡스의 한마디. “Unbelievable.” 관객들의 나지막한 탄성. 우레와 같은 박수.


N은 잡스처럼 세상을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들겠다며 수차례 창업을 시도했다. 창업 아이디어를 적은 노트를 매 수업시간 들고 다니며 친우들에게 피드백받더니, 급기야 서울시 창업지원센터의 지원에 힘입어 실제 회사를 차리기까지 했다. 처음엔 그의 과감한 도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조그만 빚만 남긴 채 실패하고 말았다. 창업 아이디어는 그럴듯했지만 고객을 모으고 매출을 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창업자금을 빌려준 Y는 N만 만나면 이죽거렸다. Y에겐 그것이 일종의 대출 이자인 셈이었다. Y가 N의 무모함에 놀리듯 딴지 걸면 N은 아이폰으로 응수했다.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아이폰은 출시 발표 당일까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잡스는 미완인 아이폰을 들고 발표를 시작했으며, 아이폰의 모든 기능이 아무런 에러 없이 완벽하게 구동된 것은 발표 당일이 처음이었다고 하니, 자칫 잘못하면 발표는커녕 비웃음만 살 수 있었다고. Y는, 잡스를 등에 업고 ‘완성이란 없으며, 미완인 채로 끝없이 시도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 주장하는 N을 반박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놀라운 사실은, 청춘사업에 있어서도 그의 막무가내 도전정신이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시작은 미미했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이라 불릴만한 계절이었다. N은 마음에 품고 있던 여사친에게 편지로 고백하겠다고 Y의 자취방을 찾아왔다. “Y야, 넌 책 좀 읽었으니 내 편지 한번 봐주라.”


Y는 N의 편지를 읽다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근데 걘 너가 좋아하는 거 알아?” 대답은 당당한 “아니”였고, Y는 역정을 냈다. 고백은 일기예보 같은 것이라, 핵심은 예측가능성에 있다고. N은, 고백은 숨겨둔 마음을 전하는 것인데 그걸 걔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모순 아니냐 따졌다. Y는 “그런 유령 같은 고백은 상대방을 화들짝 놀라게 할 순 있겠으나,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고 말렸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랑은 눈뿐만 아니라 귀까지 멀게 하니까.


은행과 단풍이 만개한 대학교 축제날. Y가 자취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무렵, N은 평화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 건물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고딕체 성당을 닮아 높고 뾰족한 평화의 전당은 언덕 위에 있어, 축제가 한창인 학교의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회백색 평화의 전당이 외로이 서 있고, 달은 건물 꼭대기에 걸려 있었다. 나뭇잎은 붉고, 바람은 선선히 불었다.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저 아래 대학 본관엔 축제 주점 불빛이 반짝였고, 어지러이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취기 섞인 소리와 알딸딸한 걸음. 붉그레한 단풍과 노란 주점 불빛들. 유난히 하얗고 커다란 달. 평화의 전당에서 조감하고 있자니, 풍경이 아스라이 뒤섞이는 모습이 N의 마음속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는 곧장 언덕을 내려가, 동아리 주점에서 한창 축제 준비 중이던 그녀를 불러내 편지를 건넸다.


Y의 예상대로 고백은 실패했고, N은 넋이 나간 망령이 되어 술집을 전전했다. 얼큰하게 만취한 N은 그녀가 주점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하느라 고생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고 한다. 늦은 밤, Y는 그녀가 있던 동아리 주점 부엌에서 N이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N은 그녀의 고무장갑을 빼앗아 대신 설거지를 하려 했고, 그런 N을 자취방으로 끌고 오느라 Y는 꽤나 애먹었다.


몇 년 뒤, 군대를 전역하고 만난 N은 한층 더 발전해 있었다. N은 어느 날 갑자기 Y에게 ‘초면인 썸녀에게 밥을 얻어먹기 가장 좋은 곳’을 물었다. 너무 비싸도 곤란하지만 너무 싼 곳도 안 된다고 했다.


초면인 썸녀? 황당해하는 Y에게 N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전역도 했겠다, 간만에 다른 학교 축제에 놀러 가고 싶어진 N은 축제 시즌에 한예종을 찾아갔다. 축제를 즐기던 도중, 우연히 가야금 공연을 봤고 그 가야금 연주자에게 반했다고 한다. 페북을 수색해 한예종 국악과 신입생이라는 것을 알아낸 N은, 며칠 고민하더니, 부푼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짜고짜 페메를 보내고선 한예종 국악과 과방으로 에어팟을 선물했다고. 그렇게 선물을 보냈더니...


아니, 잠깐잠깐. 전개의 지나친 비약에 혼란스러웠던 Y는 왜 에어팟을 줬냐는 진부한 의문을 제기했다. N은 비범하게 답했다. “내가 쫌 금사빠잖아.” 황당했던 Y는 “빠지려면 머리까지 혹은 적어도 턱까지는 잠겨야 하는데, 한 번 보고 어떻게 사랑에 빠지냐? 물이 이제야 발목쯤 왔겠다.” 고 핀잔줬으나 이번에도 N은 받지 않았다. Y는 얕은 물을 깊다고 착각해 익사한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으나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Y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N의 이야기는 얕은 물에서 익사한 사람의 이야기보다 재미있었던 것이다.


N은 말을 이었다. 과방으로 선물을 보냈더니 한예종 국악과가 난리 났더란다. 그녀의 선배와 동기들은 미지의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했다. 나이 많은 아저씨일 것이라는 둥, 부잣집 도련님일 것이라는 둥, 스폰서 비슷한 것이라는 둥 가설이 난무했다. 가설이 전부 그럴듯해 그 모든 게 정설로 인정되었다. N의 정체는 나이 많은 부잣집 도련님 스폰서로 결정되었다. 그녀 주변 사람들은 절대 그 선물을 받아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그녀 역시 그 조언대로 에어팟을 돌려주고자 하였다. 실은 이러저러한 소문이 돌아 부담스럽다는 설명과 함께. N은 선물을 돌려주는 대신 식사 한 번 대접해 달라고 답했다. 그녀는 오래 고민했지만, 대화 결과 그리 나쁜 사람 같지 않아 보인다는 직감에 승낙했다고 한다. (말주변 부족한 N이 그녀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Y에겐 아직 미스터리이다.) 그리고 나서야 N은 승전보 울리듯 당당한 목소리로 Y에게 말했다. “야 식당 추천 좀”


N은 Y와 통화하며 억울함을 하소연하였다. 자신에게는 스폰서와 같은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고. 그 소문은 N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겠으나 Y의 생각에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았다. N의 실체가 어떤 형태이건, 초면에 대뜸 에어팟을 등기로 보내는 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백이라는 결론은 동일했을 테니까.


또, N은 식당을 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설명하기도 했다. 너무 비싼 곳은 대학생에게 부담스러우니 탈락. 하지만 너무 싼 곳은 에어팟을 선물 받은 부담을 덜 수 없으니 그것도 기각이라는 것이다. 그는 무작정 에어팟을 보낼 정도로 막무가내면서도 동시에 이상한 곳에서 사려 깊었다. Y는 “대학생에게 적당히 비싸면서, 썸남 지망생이 한 끼 얻어먹기 좋은 건 초밥이지.”라고 답했고, 몇 주 뒤 그들은 혜화의 은행골이라는 초밥집에서 만났다.


Y가 목격한 N의 기행은 여기까지이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 그건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 않나. 어쩌면 초밥을 추천했던 Y도, 설레는 마음에 혜화를 찾아갔을 N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지부진한 만남이었고, 두 번은 없었다. Y는 낭만적인 고백엔 낭만적인 결과가 따르는 법이라 위로했다. 20대 남성의 무모하고 어설픈 고백과, 차인 뒤 술집을 방황하는 걸음엔 풋풋한 청춘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N에겐 썩 위로가 되지 않았다.


N의 대망(大望)은 항상 대망(大亡)으로 끝났다. 장래희망도, 사업도, 연애도 그랬다. 어느새 30대가 훌쩍 넘어버린 N에게 남은 것이라곤 예비 창업자라는 신분과 친우에게 갚아야 할 150만 원의 빚, 그리고 실패한 연애담이 전부였다


Y가 구태여 N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은 도전하고 실패하는 N이야 말로 진정한 청춘의 모습이라 주장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N의 이야기는 인생의 이정표가 될 만한 모범적인 사례가 아니었으니까. 사회적 경로에서 한참은 이탈한 N이야말로 진정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항변하고자 하는 의도도, 사랑 앞에선 아찔할 만큼 무모했던 그를 예찬하기 위함도 전부 아니었다.


단지, 몇 년이 넘도록 갚지 않은 사업자금 150만 원에 더 많은 이자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자를 갈음해 수취한 글감으로 글을 쓰다 보니 이상하게도 N의 무모함이 조금 부러워졌을 뿐이다.


정말로, 정말 이상하게도 그랬다.





※ N의 동의를 득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혹여나 N의 정체를 유추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마음 여린 N과 Y를 위해 비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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