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월간에세이
0.
정위는 본디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딸이었다. 그녀는 길을 가다가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말 타듯 올라타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호되게 꾸짖었다. 그러자 큰 아이는 난 용왕의 아들인데 네가 뭐라고 날 말리느냐 화를 냈고, 정위는 용왕이 뭐 그리 대단하냐 난 염제의 딸이다 라며 맞받아쳤다. 그리고 얼마 후, 용왕의 아들은 동해를* 여행하던 정위를 발견했고 큰 파도를 일으켜 그녀를 익사시켰다고 한다.
정위는 죽은 뒤에도 원통해, 자그만 새로 환생해 다시 그 바다로 갔다. 바다를 한참 바라보던 정위는 서산(西山)에서 돌과 나뭇가지를 물어다 바다에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죽인 바다를 없애고 싶어서. 바다를 메우는 것은 조막만한 새 한 마리가 백 년을 산들 이룰 수 없는 일이었으니 정위는 상고적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하고 있다. 산해경 북산경편에 나오는 정위 이야기다.
1.
어떤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재생된다. 유난히 뾰족한 기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창에 찔린 듯 가슴을 말고 움츠러들게 된다. 9살 혹은 10살쯤으로 기억한다. 즐거운 걸음으로 하교해 현관문을 열려는 찰나, 안쪽에서 두껍고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문을 여니, 부엌 깊숙한 곳에서 화내고 윽박지르는 아빠가 보였다. 두 발치 앞엔 엄마가 주저앉아 흐느끼듯 울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아빠를 말리는 할머니. 6.25 전쟁으로 귀가 멀어버린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안방에서 태연히 티비를 보고 있었다. 예능인지 드라마인지, TV에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났다.
초등학생인 나는 세상 물정 몰랐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다른 소리는 멀어지고, 아빠의 긁어내는 듯한 목소리와 낮게 우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귀에 들러붙었다.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나는 내가 내뱉는 숨소리를 확인하고 싶어서 숨을 크게 쉬었다. 빠르게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제 숨에 제 호흡이 꼬였다. 그렇게 혼자서 헛숨을 헐떡거렸다.
몇 번 소리치던 아빠는 부엌에서 가위를 꺼내 엄마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 서걱대는 가위질 소리. 그 작은 소리가 들릴 리 없건만, 너무도 분명히 들리는 듯했다. 비산하는 머리칼. 아빠는 침묵했고 엄마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 쯤 되니 할아버지도 이제는 사달이 났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끝끝내 굽은 등을 보인 채 TV만 바라봤다. 어딘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 횡격막이 쪼그라들고 딸꾹질이 났다. 입을 여며 숨을 꾹 눌러 참아도 가슴이 자꾸만 들썩거렸다.
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문을 잠가도 소리가 외풍처럼 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 소리 외에 다른 사물들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숨죽인 세상 속에서 폭력의 징조는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난 이불을 뒤집어썼다. 솜이불로 귀를 틀어막자, 물속에 들어간 것 같이 모든 소리가 뭉개져 들렸다. 너무도 어린 터라 엄마와 아빠가 싸우며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눈앞의 저것이 폭력이라는 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어린아이가 넘어지며 통증을 배우듯 난 폭력의 속성을 자연히 배웠다.
아빠의 그런 행태는 정도를 달리하여 반복됐다. 사업을 하는 불안한 삶이 너무도 힘들었던 걸까? 아니면 번번이 사업에 실패하는 스스로를 용납하기 어려웠던 걸까? 아빠는 술을 많이도 마셨다. 사업이 잘 풀리면 기분이 좋아서, 사업이 어려우면 화를 이기지 못해서 술을 마셨다. 술만 마시면 엄마와 아빠의 다툼은 심해졌으니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그렇게 언성이 높아질 때면, 언제고 유년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호박석에 박제된 모기 화석처럼 주황빛 빛바랜 기억에 갇혀 있었다.
2.
그는 뿌리 깊은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아빠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증조할아버지는 자산깨나 모은 부자였다고 한다. 그런 증조할아버지에게 농아인 내 할아버지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말을 걸어도 어버버 대는 게 전부인 우리 할아버지에게 시집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증조할아버지는 어느 가난한 집 여식인 우리 할머니를 소 사듯 돈 주고 데려왔다. 말 못 하는 할아버지와 팔려온 할머니는 그렇게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러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식들은 돈과 땅을 나누어 가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살아갈 집 정도만 간신히 건졌다. 농인이었던 할아버지에겐 합당한 대우였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어찌 보면 집이라도 남겨 준 것을 고마워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할머니 역시 한 마디 따지질 못했으니까. 제 몫을 챙기기엔 눈치 보며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이 할머니를 짓눌렀다. 돈을 받고 팔려온 그녀는 장롱이나 침대 혹은 찻장과 다를 바 없었다. 정해진 쓰임새가 있었고, 묵묵히 제 용도에 맞는 일만 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빠의 마음속에는 울분이 가득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면 친척들은 아빠를 불쌍히 여겼다. 간간히 두둑한 용돈도 주었다. 말 못 하는 느이 아버지를 잘 모셔야 한다는 말도 꼭 덧붙였다. 아빠는 시혜를 베푸는 듯한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값싼 동정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비겁하게도 아빠는 그들 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짜증 내고 신경질 부렸다. 왜 우린 당하고만 사냐고. 많이 원망하고 가출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술과 담배를 배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런 아빠에게 어떤 다정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들은 눈치 보고 뒤로 물러나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아빠를 질책했다. 할아버지는 어린 아빠에게 어버버 어버버 거리며 소리치거나 뺨을 올려붙였다. 할머니는 어른들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하라고 했다. 제 분수에 맞는 일이 있다고 그랬다. 그런 말을 들으며 아빠는 화를 눌러 담는 방법을 배웠다.
아빠는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고, 벌어서 자신을 무시하는 친척들에게 큰소리 뻥뻥 치고 싶어 했다. 다 필요 없다고. 너네들이 가져간 유산 정도는 쉽게 번다고 말하고 싶었다. 적당히 꺼드럭대는 당당한 표정으로 손아랫사람에게 용돈도 쥐어주고 싶었을 테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트럭 한가득 제철 과일을 싣고 부산 곳곳을 돌았다. 그 일은 그의 천성에 꽤나 잘 맞았다. 집안 어디서고 큰 소리 칠 곳 없으니, '과일이 왔어요~' 하고 크게 외칠 땐 어딘가 속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골목 끝까지 뻗어나갔고, 그는 금세 많은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결혼을 하고, 더 큰 트럭을 사고, 집도 장만했다.
돈이 모이자 그는 그럴듯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높은 트럭 말고, 낮고 배기음이 울리는 그런 차를 원했다. 멋들어진 명함도 있었으면 했다. 과일장수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과일장수일뿐이었다. 대기업 회사원, 공무원 혹은 건물주인 친척들에게 으스댈만한 직업이 필요했다. 아빠는 과일 트럭까지 몽땅 팔아버리고 IT 업체를 차렸다. 인터넷 광고 관련된 업을 하는 회사였다. 직원도 열 명쯤 두었는데, 해가 갈수록 풍선 쪼그라들듯 자연스레 줄어들더니 어느새 사람 한 명 남지 않았다. 이제 막 중학생이던 나는 텅 빈 사무실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게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때쯤 아빠는 화가 더욱 늘었다. 하루 종일 외근하고, 돈을 꾸러 다니고. 집에 돌아와선 술을 마시다 사소한 것을 트집 잡아 소리치고 화풀이하는 것 까지가 그의 일과였다. 그의 화를 가장 많이 감당해야 했던 건 엄마였다. 그다음은 나, 할머니, 동생 순이었고 귀가 먼 할아버지는 열외였다. 난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는 것도, 타인에게 쉽게 화내는 것도. 그리하여 우리 가족 모두에게 슬픔이 침윤되어 버린 이 상황까지도. 전부 다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왜 맨날 화나있냐고 엄마한테 하소연할 때면,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며 그것도 사랑이라고 했다. 아빠는 사랑을 배우지 못해 넘치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거라고. 난 그 말을 들으며, 그것이 사랑이라면 참 태양 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태양은 가까운 것들이 타들어가도 자신의 감정을 발산해야 하는 잔인한 별이니.
3.
아빠는 가까이 있을수록 견디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래서 밤마다 지구가 태양을 등지듯, 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아빠를 외면했다. 학창 시절엔 다녀오셨습니까 하는 건조한 인사말만 건네고 내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의 목소리를 덮으려 라디오를 크게 틀었고, 그를 미워하는 대신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아빠와 내 관계는 그렇게 매일 멀어졌다. 스물이 되어서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그 무렵 아빠와의 소원함은 절정에 달했다.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인터넷 광고 사업이 망하고 부동산 경매업자 일을 몇 년간 하던 아빠는, 엄마와 이혼한 뒤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육십이 넘은 나이로 귀농했다. 하동군 악양면 지리산 자락에서 소작일을 시작했다.
그의 거처는 흔한 마을버스조차 닿지 않는 깊은 산속이었다. 그것이 좋은 핑계가 되었다. 아빠를 보러 가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어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때만 내려가길 몇 차례. 이윽고 그것 역시 그만두었다. 아빠는 종종 나에게 전화해서 너무한 것 아니냐고 소리치고 화냈다. 그래도 얼굴은 비추고 안부를 묻는 게 자식 된 도리 아니냐며. 아니면 적어도 전화 정도는 먼저 할 수 있지 않냐고. 수화기 너머에선 항상 달큰한 술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농사를 끝내고 소주 한 병을 비우고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러고도 잠에 들지 못한 밤에는 술 한 병을 더 꺼내놓고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술에 취한 그와 통화할 때면 가끔 짜증 났고, 조금 답답했으며, 놀랍게도 대부분 무심했다. 그가 화내고 소리치는 일은 지난 20년 간 학습된 일이었고, 놀라며 움츠러들기엔 이미 너무 많은 나이를 먹어버렸다. 나는 '아 됐어요'라고 툭 대답하곤 멋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꾸준히 멀어지던 어느 가을날, 아빠가 홍시를 보내왔다. 처음엔 옆집 택배가 잘못 도착한 줄 알았다. 택배 내역을 살펴보니 아빠의 이름이 보였다. “대봉감인데, 옆집 농사 지어 주고받은 거다. 좀 있음 홍시 되니까 홍시 만들어 먹어라. 더 필요하면 말하고.” 간만에 큰맘 먹고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는 짧은 말만 남겼다.
홍시가 세 박스라니. 난 홍시 싫어하는데. 우악스레 집 앞으로 들이친 그의 일방적 호의가 부담스럽고 불쾌했다. 분노를 터트릴 때도, 애정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나에 대한 이해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조심스런 배려도, 차분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는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고, 화날 때 화를 내듯 충동스레 표현했을 뿐이라 생각해 버렸다. 그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자르던 그날로부터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버리긴 아까우니, 한동안 야식은 홍시로 해결했다. 그렇게 겨우 겨우 하나 둘 해치워도 아직 수십 개가 남아 있었다. 남은 홍시를 볼 때면 아빠가 떠올랐고, 그게 싫어서 몽땅 냉동실로 보냈다. 홍시를 익게 한 햇살과 가을바람까지 통째로 얼렸다.
그 해 가을이 가고 혹독한 겨울도 지났다. 여전히 홍시를 싫어했지만, 이따금 냉동실에서 꺼내먹는 경우가 있었다. 고요한 봄날 책을 읽으며 곁들일 주전부리가 필요할 때나, 여름밤 열대야로 잠 못 이룰 때 그랬다. 살짝 녹인 뒤 숟가락으로 긁어내면 셔벗처럼 아삭하게 부서졌다. 얼음 결정에 혀가 아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끝에 남는 단맛은 퍽이나 선명했다.
얼린 홍시를 먹으며 봄과 여름을 보내고 나니, 코끝에 서늘한 바람이 닿는 가을이 다시 돌아왔다. 어느 늦은 저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현관문 앞에 익숙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작년과 똑같은 대봉감 세 박스. 보낸 사람의 이름에는 어김없이 아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지난번 한 번으로 끝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매년 가을, 자신이 거둔 것 중 가장 실한 놈들을 골라 소식이 뜸한 아들에게 보냈다.
4.
어젯밤 냉동실을 열어보니, 어느새 작년 가을에 받은 홍시를 다 먹었다. 그것으로 여름이 저물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몇 주 뒤면, 집 앞 현관엔 감 세 박스가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아빠는 어제도 오늘도 타인의 감나무 밭을 소작하며 뙤약볕을 견디고 있겠다고 짐작했다.
농사는 편지와 같아서,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조그만 공간도 채우기 힘들다. 마음을 표하는 단어를 차분히 골라 한 글자씩 채워나가는 편지처럼, 하루하루 날을 다해서 밭으로 나가 주어진 일을 행하여야 한다. 내가 받아온 홍시에는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 온 아빠의 일 년치 노고가 담겨 있었을 것이고, 우리 집에는 나를 향한 아빠의 진심이 적어도 홍시 세 박스 분량만큼 쌓여 있었던 것이며, 또다시 돌아올 가을이 되면 그런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홍시를 기다리며, 그가 전하고픈 말이 궁금해졌다. 매년 보내오는 그 편지는 그간의 세월을 담은 반성문일까, 아들에게 간곡히 전하는 애서일까. 혹은 불운한 부모에게 전승받은 분노와 슬픔까지 아들에게 몽땅 대물림해 버린 아빠가 써 내려간 비가일지도. 수북이 쌓인 감을 보면서 유난히 마음이 물러진 날에는 아빠를 불쌍히 여긴 적도 있었다. 부동산업을 하던 이가 손바닥만 한 제 땅 하나 갖지 못한 채, 소작농 신세로 묵묵히 더위를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 처량해 보였다. 과일 장사로 시작해 과일 농사로 돌아오고 말았으니 어찌 보면 참 기구한 팔자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정심이 지나가면, 바다처럼 깊은 원망의 골이 또렷이 보였다. 겨우 이 정도로 값을 치를 수 없다고. 아빠를 용서하기엔 우린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오는 가을에 감을 받고 나서도 똑같이 그러할 것이다. 억지로 홍시를 삼키면서도, 단단히 얼린 홍시를 숟가락으로 긁어내면서도 나는 여전히 무심할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 간신히 전화하면 다행일 테고, 그의 집에 찾아가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가망 없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다.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남은 세 계절을 보낸다. 겨울엔 서리로 얼어붙은 밭을 뒤집고 가지를 친다. 다소 한가로운 겨울 농한기의 밤은 술로 재운다. 나른한 봄엔 새벽같이 밭으로 나가 퇴비를 뿌린다. 감꽃에서 핀 새싹을 일일이 솎아낸다. 여름엔 농약을 뿌린다. 뙤약볕 내리는 가운데 전신을 비닐로 감싼 채, 농약통을 이고 몇 시간 동안 산을 오르내린다. 가을이 되면 수확한 일 년치 마음을 상자에 담는다. 택배 주소를 쓰며, 아들 얼굴을 본 지 오 년이 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이 든 몸이 이전처럼 성하지 않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지만, 가을이 지나면 똑같은 일 년을 반복한다.
그런 그를 마주할 때면 지금도 먼바다 어딘가에서 바다를 메우고 있을 정위가 떠오른다. 정위의 환생인 작은 새는 발톱으로 조약돌을 움켜쥐고 수 천리 날아간다. 동해바다에 도착하면 겨우 손바닥만 한 돌멩이 하나 바다 위로 떨어트린다. 그 일이 삶의 전부인 양 온몸을 다한다. 발톱이 빠지면 부리로, 부리가 전부 닳고 나선 가벼운 나뭇가지라도 물어 옮긴다.
무언가를 오래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린 화석설화(化石說話)에서 그들을 돌로 만드는 것은 간절한 마음이다. 어쩌면 당신을 향한 굳어버린 내 마음은 당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간절한 내 심정을 반증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 단단한 돌덩이라면, 당신은 정말로 정위였으면 좋겠다. 지난 세월로 차마 당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다만 작은 새가 들고 갈 수 있도록 굳은 마음을 천천히 조각내겠다. 그리하면 당신은 조그만 돌멩이라도 그러모아 거칠고 막막한 원망의 바다로 향하길.
계속해서 그러다 보면 어설프게나마 바다가 메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깎고 허물어 돌을 고르면. 발톱이 부러지도록 조막돌을 옮기면. 밭을 매고 수확한 감을 보내다 보면. 지금은 아니라도 언젠간.
(* 산해경의 동해는 중국 동쪽의 바다, 즉 황해를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