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3-1 월간 에세이

by 흔한

시간은 늦은 8시. 창덕궁 묵빛 기와에는 시커먼 어둠이 내려앉았다. 반면 카페 안쪽은 표백된 이불마냥 하얬다. 무릎까지 오는 흰 테이블이며 깨끗한 대리석 바닥, 맞은편 그녀의 새하얀 원피스까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차분한 분위기가 필요했건만, 금요일 저녁답게 카페는 다소 소란스러워 진동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진동벨을 집어 들고 유난히 시끄럽던 테이블을 흘겨본 뒤 커피를 가지고 왔다. 허리를 깊게 숙여 잔을 살며시 놓았다. 온통 하얀 것들 투성이었기에 어디든 검정이 튀면 반드시 얼룩으로 남을 터였다.


자리에 앉으니 이윽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이 힘들진 않냐는 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저녁 먹고 있는데, 갑자기 코드 블루 방송이 나오는 거예요.”


병원에선 환자의 동요를 막기 위해 응급 상황별 색을 정해 방송한다. 레드는 화재, 그린은 긴급 대피다. 코드 블루는 환자가 심정지 상태라는 의미이다.


“밥 먹다 말고 냅다 뛰어갔죠. 그날은 제가 대장이었거든요. 평직원 중 제일 선임자.”


카페에서 소개팅을 하고 있는 그녀는 눈이 컸고 콧대가 오똑했다. 턱은 날렵했고, 시선에선 강단이 느껴졌다. 어떤 중요한 결심을 마친 사람의 단단한 눈빛 같았다.


그런 눈빛은 아무래도 그녀의 직업과 관련 있을지 몰랐다. 그녀는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다. 중환자라는 말에는 단어가 담지 못하는 커다란 무게감이 있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사람, 숨이 간당간당한 사람, 이제 막 숨이 떨어진 사람. 그들에게선 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난다. 그녀는 의식 없는 환자들과 8년을 보냈다. 상태가 악화되면 생사의 분초에서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그녀의 굳건한 시선엔 병원에서 일한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방송을 듣자마자 급하게 중환자실로 갔는데 환자 입술이 창백한 거예요. 불안했어요. 얼마 전에 저희 병원에서 수술도 했었고, 나이가 많으셨거든요.”


사람이 죽어갈 때 몸은 파래진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시퍼런 입술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중환자실에서의 숱한 경험이 말해주는 벼락같은 예감이었다.


그 환자는 꽤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했었으나, 폐 절제 수술 후 병세에 차도가 보여 퇴원했었다. 그렇다고 상태가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장기간 누워 지내 온몸의 근육이 다 빠졌다. 할아버지는 근육을 되찾기 위한 힘겨운 재활을 견뎌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선 항상 알약을 삼켰다. 알약만으로도 배가 부를 만큼 많은 양이었다.


모든 게 버거웠지만 할아버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여생을 갇힌 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적출된 폐와 쪼그라든 근육 탓에 고작 세 걸음만에 숨이 가빴다. 소일거리로 매일같이 행했던 폐지 줍기는커녕, 베란다의 작은 정원에서 난초를 돌보는 것도 어려웠다. 귀가 침침해 알람소리와 딸의 전화도 구분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에게는 치명적인 후유증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집안 곳곳에 징검다리처럼 의자를 놓았다. 할아버지가 방에서 일어나 세 걸음 힘겹게 걸으면 의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곤 의자 위로 쓰러지듯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후 세 걸음 더 걷고, 다음 의자에 앉아 한참 쉬었다. 수차례 그러고 나서야 겨우 베란다에 도착해 화분에 물을 주었다. 할아버지가 지나가면 의자들의 간격이 조금씩 틀어져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의자를 세 걸음 거리로 다시 맞추는 건 할머니의 몫이었다.


“수술 후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안 좋아져서 다시 입원한 환자였어요. 그러니 더 불안했죠. 일단 급하게 조치를 했어요."


세 발짝 생활을 이어가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병이 재발하여 중환자실로 실려왔다. 그러다 별안간 심정지가 왔다. 저녁을 먹던 그녀는 코드 블루 방송을 듣고 반사적으로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힐끗 보더니 계단으로 향했다. 두 계단 씩 성큼 뛰어올라 순식간에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약물을 주입할 정맥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꽤나 능숙한 솜씨였다. 하나 둘 의료진이 몰려들었다. 어느샌가 메트로놈이 똑딱였고 한 인턴이 그 소리에 맞춰 가슴을 압박했다. 두둑. 인턴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을 느꼈지만 멈출 겨를이 없었다. 몇 분간 압박 후 그 인턴은 지쳐 나가떨어지고 다른 인턴이 다시 CPR을 계속했다


할아버지의 목 안으로 긴 관이 들어갔다. 무른 속살이 뭉개졌다. 기도삽관을 한 뒤 온갖 장치를 덕지덕지 붙였다. 누군가는 모든 경과를 기록했고, 어떤 이는 보호자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수십 개의 처방이 이뤄졌다. 그녀는 환자의 옷을 벗기고 주삿바늘을 쑤셔 박았다. 하얀 거즈는 순식간에 검붉어졌다. 때론 동시에 때론 순차적으로 조치가 취해졌다. 간호사의 액팅이 처방에 선행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바삐 움직였으나, 심장만은 여전히 뛸 생각이 없었다.


일련의 조치가 끝났음에도 임종이 뚜렷이 다가오자 가족들이 찾아왔다. 보호자는 큰 딸이었는데 한참 전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람의 말이라기 보단 나귀의 울음소리 같았다. 가족들 모두 슬퍼했지만, 가장 서러웠던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펑펑 울면서 의식 없는 할아버지한테 하소연했어요. 집에서 나오는데 의자가 보이더라고. 그렇게 덩그러이 의자만 두고 가면 어떡하냐고. 그런 건 치우지도 못하는데 그걸 보면 자꾸 당신이 생각날 거라고.”


그 집 거실 한가운데에는 아직까지도 의자가 놓여 있을 것 같았다. 소개팅 상대를 마주한 채, 기억도 망각도 모두 고통이 되어버린 삶을 생각했다. 할머니는 종종 그곳에서 창 밖을 바라볼 테다. 의자에 쪼그려 앉아 무릎을 두 손으로 묶고, 고개를 파묻어 스스로를 가둔 할머니의 곱사등이 눈에 선했다.


목이 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으로 씁쓸한 향이 감돌았다. 새하얀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는 이제 막 9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소란스럽던 주변도 어느새 고요해졌다.


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지껏 고저 없는 평범한 어조로 말했다. 시종일관 편안한 말투는 차분한 카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눈빛은 담담했다. 그런 점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일상성을 부여했다. 마치 '어제 러닝을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러닝만큼이나 일반적인 일이었다. 불행이 너무나 많이 모여든 탓에 되려 평범해진 공간이 중환자실임을 알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괴로운 이들을 위하고 위로하다 일상이 되어버린 그녀의 삶을 엿보았다.


“그날 밤에 CPR 하던 인턴쌤이랑 이야기했는데, 그 쌤이 그랬어요. 가슴압박 하는데 메트로놈 소리가 무서웠대요. 재촉하는 똑딱 소리도 무섭고, 저 소리가 끊기면 이 사람은 죽는 건가 싶어서 또 무섭고. 그래도 무시하고 CPR을 하는데 차도는 없고. 어느 순간 손바닥 아래에 심박 없는 심장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대요. 자기 탓인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임상 결과에 따르면, 중환자실 급성 심정지의 경우 생존율이 50%를 밑돈다. 그가 뉘우쳐야 할 의학적 과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온갖 이론과 실습으로 중무장된 인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을 테다.


그의 조치는 적합했다. 맥박을 확인했고, 가슴을 정확한 강도와 깊이로 눌렀다. 갈비뼈가 부러졌지만 교본에 따르면 그건 오히려 그가 할 일을 충실히 해냈다는 반증이었다. 하지만 죄의식이 스스로를 겨눌 때, 현대 과학의 총아와 같은 각종 이론과 임상 결과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환자는 죽었고, 아직 죽음이 낯선 인턴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질타하는 것뿐이었다.


인턴의 고민을 들어주던 그녀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모두 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하지만 위로가 통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점까지도. 그녀 역시 그럴 때가 있었다고 했다. 병원에서 일한 지 2년쯤 되었나. 중환자실 간호사는 혼자서 두 병상을 담당하는데, 공교롭게도 그녀 담당 환자 두 명이 같은 날 죽었다.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환자가 사망하면 의사는 사망선고 하고, 전 사후처치를 해요. 심전도 그래프를 뽑아서 심장이 멈춘 증거를 남기고, 사망진단서 상 기재사항을 검토하는 거에요. 환자 몸에 붙은 호스와 관을 제거하면서 몸도 닦아주고요."


두 명의 환자가 명을 달리했던 그날은 조금 달랐다. 한 환자가 죽기 직전 엄청난 양의 피를 토했기 때문이다. 그날도 의료진이 달려왔지만 내장 깊은 곳에서 시작된 출혈은 멈출 줄 몰랐다. 새하얀 병실에 커피 자국처럼 검붉은 얼룩이 튀었다. 토해낸 피는 침대를 타고 바닥까지 흘렀다.


사망선고의 순간이 다가왔으나, 너무 잔혹해 차마 가족에게 임종을 지키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병실로 들어가려는 가족들을 붙잡고 있었다. 쓰러질 듯 주저앉는 이를 부축해야 할지 토닥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주변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서야 가족들은 싸늘히 누워있는 주검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 날엔 죽은 듯 자고 싶어요. 꿈 없이 잠만 자는 거 있잖아요. 꿈에 그 상황이 나올까 봐 무섭거든요. “


퇴근 후 침대에 누운 그녀는 유가족이 무얼 하고 있을지 떠올리길 멈추고 싶었다. 울고 있을까, 자고 있을까. 망인이 그들의 꿈에나 나올까? 전화하고 있을까, 숨 죽이고 있을까. 혹시 날 탓하고 있지는 않을까? 엉엉 울고 나면 마음이 씻겨나갈 것 같았지만, 울음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맡에서 임종을 지키지 못해 슬퍼하던 이들이 계속해서 재생됐다. 슬픔은 사랑이 부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그들의 슬픔을 통해 서로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밤샌 CPR과 전기충격에도 기어코 죽고 마는 환자가 자꾸만 생각났다. 무슨 수를 써도 죽는 사람. 무슨 수를 써도 끝나는 사랑.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스스로가 너무도 무기력하고 초라해 보였다. 손아귀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몸을 덮고 있는 이불마저 모래처럼 느껴졌다. 그녀에게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죽음을 망각하는 방법,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태도 같은 것*들이 필요했다. 혹은 꿈 없는 잠을 선사할 수면제나 잡념을 마비시킬 항우울제가.


“힘들어서 정신과 진료를 보기도 했는데, 우울한 게 당연하다고 그러는 거예요. 슬픈 일에 슬퍼하는 건 문제가 아니라서요. 오히려 슬프지 않았다면 그게 문제래요.”


그녀는 자신의 우울을 가벼이 여기는 것 같은 의사의 말에 조금은 억울했다. 슬픔도 그 정도면 질병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머리를 열어 불안을 담당하는 뇌 부분을 들어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그녀는 정신과 대신 신경외과를 찾아가야 했을까?


"그래도 중환자실에서 일하면 보람도 있고 배우는 것도 많아서 좋아요. 오래 있어서 외래로 이동할 수도 있는데, 좀 더 있으려구요."


슬픔을 늘어놓은 뒤에 보람을 이야기 하는 것이 꽤나 갑작스런 전환이었으나, 소개팅을 위한 변명처럼 들리진 않았다. 말하는 내내 그녀는 조금 미소 지었고, 거기엔 어떠한 이해나 지긋한 응시만 있을 뿐 다소간의 회한이나 후회도 없었다. 아픔을 담담히 늘어놓았기에 외려 당당해 보였으며,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도 느껴졌다. 작은 기적 같았다. 그녀의 어려움과 지금의 자긍심 사이에 놓인 커다란 간극을 기어코 건넜다는 사실이.


커피를 가지러 간 소개팅 상대방의 빈 의자를 보며, 할머니의 구겨진 얼굴을 떠올리는 것. 차게 식은 심장을 꾹꾹 누르던 인턴의 심정을 충분히 상상한 뒤, 나도 그랬다며 자신을 툭 터놓는 것. 피범벅이 된 축축한 몸뚱아리를 닦아내고, 슬픔과 상실이 뒤섞인 유가족의 마음을 전인적으로 껴안는 것.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되지 않았으나, 그런 게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보여준 업에 대한 열정과 환자에 대한 애정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사랑이 끝나는 지점에 슬픔이 있다면, 슬픔이 마른자리엔 일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다시 싹트는 걸까?


생각이 이어지는 동안 그녀는 말이 없었고, 우리 사이엔 침묵이 깃들었다. 차가운 적막이 나를 상념에서 일깨웠다. 그제야 내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하는 낮은 탄식을 뱉으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자 말을 이으려 하였으나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아있는 커피를 마시는 척했다. 커피는 없고, 녹은 얼음물만 입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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