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대학원. 당시 나는 2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영어 강의를 시작하게 된 것도 영어 교육 대학원을 가게 된 것도 사실 내 커리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둘 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중 가족이 미국에 갈 기회를 얻게 되면서 내 삶에도 또 한 번 큰 변화의 문이 열렸다.
처음 학원에서 일할 때만 해도 사실 진지하진 않았다. 다음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잠깐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일이 잘 맞았고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큰 기쁨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대학원까지 진학하면서 전문가의 길에 들어서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영어 교육이 오래도록 하게 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 미국. 언어도 좋아했지만 영어로 접했던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느낀 자유롭고 독립적인 분위기. 그 ‘기회의 땅’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가까이 온 것이었다. 지금은 20대 후반이 어리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지금의 30대 후반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안정적인 현 상황을 두고 가족을 따라가는 것이 맞는 선택인지에 대해 가까운 친구들조차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취업은 어려워 보였고 어학연수를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가족과 합법적으로 미국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학업’뿐이었다. 영어 전공도 아닌 내가 영어 교육으로 미국 석사를 준비하겠다고 하자 대부분이 무모하다고 말렸다.
하지만 그땐 그저 어떻게든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너무 강해 이성적인 판단이나 계산은 불가능했다. 한국 대학원은 첫 학기라 휴학이 불가능했다. 등록금을 내고 다녀볼지 입학 자체를 포기할지 결정해야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TOEFL 그것도 하필 처음 시행된 iBT 버전으로 봐야 했고 GRE(미국 대학원 지원 시 요구하는 시험으로 미국 학생들도 봐야 한다)도 응시해야 했는데 이 시험은 일본에 가서 쳐야 했다. 학업 계획서도 필요했고,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좋아, 일단 필요한 요건은 이거지? 그럼 지원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지? … 약 5개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준비를 하려면 한국 대학원을 포기할지 말지 그리고 학원 일을 병행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만약 대학원에 떨어지면? 시간도 잃고, 학위도 못 받고, 말 그대로 낭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는 걱정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1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만 몰두했고, 그 자체로 너무 들떴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공부들이었지만, 해외에서 일한 경험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그 무모함이 당시엔 나를 밀어붙였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도 포기하고 남은 5개월을 오직 미국 유학 준비에 몰두하기로.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학원, 식사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아부었다. GRE 단어 공부를 하다 멘탈이 나갈 땐 근처 스타벅스로 가 단어장을 펼쳐 들고 여기가 미국이다 상상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진짜 미국에 가서 앉아봐야지.” 하면서. 그마저 효과가 떨어질 때면 GRE 시험 주관사인 ETS를 원망하면서 고단한 수험생활을 보냈다. “어떻게 이런 시험을 만들었지?” “대체 끝이 없어 보이는 이 단어들을 학습해야 하는 이 이상한 시험의 목적이 뭐지?” “게다가 해외까지 가서 시험을 쳐야 한다고?” “이건 유학생들을 상대로 한 장사다.” 그렇게 ETS는 그 기간 나의 무언의 적이 되었다.
시험 날 공항으로 향하던 중 TOEFL 신청이 중복되어 취소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필 오늘…” 이런 전화를 받다니, 온 세상이 내게 “되겠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 감각이 살아난 나는 “가장 빠른 날짜로 다시 예약해야겠군”이라고 생각을 정리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해외까지 가서 보는 시험이라 보통은 두 번 신청을 한다. 하지만 GRE 시험은 누적 평균을 낸 다는 점 그리고 하루 만에 성적에 큰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1회만 신청한 터였다. 하지만 ETS 전화를 받고 나니 너무 무모했나 싶었다.
하지만 또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런 생각조차 할 시간이 아까웠다. 일단,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자. 자꾸만 까먹는 이 단어들을 어떻게든 시험 때까지 붙잡아 보자. 그렇게 기내에서도 단어장을 놓지 않았다. 나중에 같이 간 학원 지인이 말하길 단어장을 쥔 채 입을 벌리고 통로 쪽으로 머리를 떨군 채 잠든 게 가관이었다고 한다. 절박함 앞에 체면은 사치다. 일본까지 날아가 치르는 시험, 반드시 잘 봐야 했다.
GRE는 시험 후 바로 결과가 나왔다. TOEFL 보다 짧았던 준비 기간의 결과는 꽤 괜찮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TOEFL, 학업계획서구나. 그렇게 하나하나 필요서류를 준비하고 여러 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나의 목표는 미국에 가는 것이었기에 대학원 지원서 비용은 관대하게 썼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중 영어 교육으로 잘 알려진, 미국 집과 가까우며 학비도 합리적인 주립대에 진학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학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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