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면 심각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상황도 생각보다 가볍고 유쾌하게 넘길 수 있다.
석사 시절 친구 여럿과 겨울에 Yellowstone 국립공원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스마트폰 이전 시절이라 서점에서 산 지도와 프린트해간 지도에 우리의 여정을 맡기며 공원으로 향하던 중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가로등도 없고 깜깜한 산속에서 우리는 한참을 헤맸었다. 체인을 단 타이어가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하는 느낌,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은 어찌나 큰지 정말 간담이 서늘해 지는 시간이었다. 어디선가 곰이 튀어나와 우리를 덮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 때 운전대를 잡은 친구가 갑자기 실없는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인생 역대급 경험이라며 우리 신문에 날 수도 있는데 몰골이 괜찮냐는 둥, 곰이 진짜 나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 너넨 어떻게 나를 믿고 여기까지 여행을 왔냐 등 이 상황이 웃겨 죽겠다는 등 농담을 해 데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장단을 맞춰주자 실 없는 대화가 이어지면서 모두 깔깔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게 있다. 그때 정말 무섭고 걱정되는 상황이었는데 우리 중 누구도 화를 내거나 초조 불안이 극에 달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초조 불안이 많이 올라왔었지만 친구들과 웃는 통에 수그러들었다.)
그날 산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에 숙소에 굉장히 늦게 도착했다. 그날 저녁의 계획이 무산된 것은 물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여행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이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화를 냈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저녁에 아무것도 못 하고 어디도 못 가고 등등... 그런데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재밌다 보니 여행지 하나를 놓친 건 대수롭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완전 계획형 여행자였던 때라 내게는 꽤 큰 사고 전환이었다.
서사가 길었는데 갑자기 오래전 여행 에피소드를 소개하게 된 건 최근 재밌게 읽은 Lisa Feldman Barrett의 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중 일부 글이 와닿아서이다.
"Words, then, are tools for regulating human bodies. Other people's words have a direct effect on your brain activity and your bodily systems, and your words have that same effect on other people. Whether you intend that effect is irrelevant. It's how we are wired." p.90
Lesson No.5 Your Brain Secretly Works with Other Brains - Lisa Feldman Barrett-
똑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말은 기분 상하지 않고 어떤 말은 오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특히 이해관계가 분명한 일터에서 이 "말"의 파워는 더 커진다. 타인의 말이 단지 기분이 나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 활동과 신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뇌 과학자의 말에 오늘 나의 말을 떠올려 본다.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플러스가 되는 말을 더 많이 했었나?
#SevenandaHalfLessonsAbouttheBrain #LisaFeldmanBarre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