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 화가의 집으로 가는 길은 미술컬렉팅을 하는 지인의 소개로 보게 된 그림이다. "꺼지면 켜고 꺼지면 켜면된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가면 된다" 것이 주 메세지라는 부연 설명을 듣고 나니 왜 이 그림을 구입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그림 외에도 찾아보니 "미로"를 기반으로 한 화가님의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박성수_집으로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_33x23.5cm_2022
누군가 인생은 내 앞에 주어진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던 가. 살면서 어렵거나 난감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좌절하고 주저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이번엔 이런 문제구나 그렇게 풀어 나가면 된다는 뜻이겠지.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인생이 다양한 미로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한다면 앞이 깜깜하고 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을 때, 같은 자리를 뱅뱅 맴돌기만 하는 느낌이 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다시 불을 밝히고 묵묵히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림처럼 성냥이 있다면 그 불이 꺼지면 다시 켜고 꺼지면 다시 켜면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가다보면 언젠가는 막힌 것 없는 출구에 서서 환한 빛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겠지?
그림 전체를 볼 수 있는 관객의 입장으로서는 이렇게 여유로운 사고가 가능한데 막상 내 인생 앞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5개월 차. 어떤 달은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같이 돌돌 말린 미로를 지나며 걸어도 걸어도 제 자리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고 또 어떤 달은 여차저차해서 출구를 찾았다 싶었는데 또다시 경험해 보지 못한 루트의 미로를 지나야 할 때도 있었다. 루트가 새롭다 보니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이라는 데이터도 상세한 사전 계획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그날 그날의 압박을 잘 견디면서 어떻게든 다시 멘탈을 붙잡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주저앉고도 싶고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이번 미로는 진짜 최강이다. 웬만한 미로는 다 지나가 봤다고 생각했는데라고 극 상심하기도 했지만. 내 몸은 내 머리와 감정보다 더 성실하더라. 다음날 또 일찌감치 눈이 떠져서는 또 걷고 있더라. 아직 반년도 안 채웠지만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수고했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묵묵히 조금씩 지금처럼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