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7개월 차다. 분야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조직과 직책의 변화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 내가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매일 깨닫게 했다. 어떤 것들은 머리 속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체감하면서 완전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 어떤 배움은 이미 경험한 것이기도 했으나 새로운 환경에서 실행해보니 완전 다른 것이 되기도 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식견도 따라올 것이라는 착각은 자주 깨졌다. 새로운 도전은 이렇듯 좌절과 끊임없는 자기 검염을 수시로 들이밀었다.
패배감과 초조함이 오락가락 하는 날들 속에서 내가 했던 판단과 수고가 옳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날엔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 그때의 업무, 경험, 그리고 느꼈던 생각과 감정을 휘발되지 않게 잘 담아두고 싶었다. 글들을 잘 엮어 이번엔 브런치에 제대로 책을 발행해 봐야지라는 야심찬 포부와 함께. 하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실제로 글을 쓰는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과 느낌은 좋지 않은 것이든 좋은 것이든 찰나같이 떠나갔다. 급성 위장염으로 옴짝 달싹 못하고 침대에 갇혀서야 글쓰기에 대한 계획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뭐든 일단 쓰자. 그간 쓰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었었고 쓸 거리도 꽤 있었잖아. 한 자만 적자. 그러면 그 뒤는 알아서 단어들이 이어가줄거야." 막상 모티터 앞에 앉으니 생각과 다르게 머리가 멍~했다. 쓰려는 행위는 이제 시작되었는데 당최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그럴 땐 늘 책이 답 이었다. 행동하고자 할때 행동이 굼뜨기만 하고 마음을 달리먹자 해도 요지부동일 때 나를 가장 빨리 "환기" 시켜주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언제나 책 이었다.
그렇게 구입하게 된 책들
김겨울 작가가 100권의 책에서 수집한 문장들을 가지고 써내려간 "책의 말들"
좋아하는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 구입하게 된 "재수 작가의 "자기계발의 말들"
글쓰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보여주는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
책의 말들 첫 문장은 "책과 세계"에서 발췌한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였다. 위장에 탈이 나고 구입한 책 첫장의 문장이라니. 빵 터졌다.
꽤나 무게감 있는 문장 앞에 터진 웃음은 이상하게 마음을 가볍게 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의외로 내용보다는 작가의 꾸준한 책 사랑이었다.
다음은 재수 작가의 책. 의외로 밑줄 친 곳이 많았던 장들 중에서 모닝페이지 루틴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좋았다.미라클 모닝 만큼이나 많이 회자되어 들어보기는 했었는데 자세히는 몰랐었다. 설명에 따르면 기상하자마자 노트 세 쪽을 손 글씨로 가득 채우는 루틴을 말한다고 한다.(아티스트 웨이) 이때 몇 가지 중요한 룰이 있는데 자기검열 없이 생각나는 것을 거침없이 속도감 있게 쓰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지 말며, 처음 몇 주간은 쓴 것을 다시 읽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래. 이번 주말엔 눈 뜨면 일단 노트와 펜을 챙겨 근방 커피숍을 가는 거야. 가서 뭐든 쓰자." 그렇게 동네 까페를 찾았다. 좋아하는 따뜻한 라떼를 음미하며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는데 너무나 좋았다. 머리가 이렇게 상쾌한 게 얼마만이었나? 그날 두서 없이 자기 검열 없이 끄적이기 시작한 글은 막힘 없이 써졌다. 글을 쓰면서 그간 글쓰기가 얼마나 그리웠고 그럼에도 왜 정체기가 길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잘 쓰고 싶은 마음" 그 중에서 "잘" 에 발목이 잡혔던 것이다.
일이 아닌 것은 가볍게. 제발 가볍게. 그렇게 시작한 취미든 모임이든 결국엔 "잘"이 저변에 깔려있었던걸까? 모임에 나가면 어느새 그 모임을 이끌고 있고 운동을 하면 대회를 나거거나 원정을 가질 않나 그러다 보니 꽤 진지한 시점에 의욕을 상실하고 언제 그렇게 했나 싶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체력이 점점 달리는 요즘은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그 가볍게 시작하는 설렘의 끝이 무서워서.
어디서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잘" 이 아니라 "꾸준히 하는 것"이 아닐까? 볶아치즘 그만~
그냥 가볍게 오늘의 몫만 일단. 대신 꾸준히 하자.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낀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뤄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