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우키 Dec 26. 2023

한 번만 더 해 보자.

2023년 오랫동안 멘토로 모신 분께 처음으로 보은을 할 기회가 생겼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컨설팅을 의뢰하신 것. 워낙 깔끔하신 분이라 명절에 보내드리는 음료 기프티콘 하나도 안 받으시는 분이었기에 나름 열심히 도와드렸다. 그러다 직접 운영을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다. 조직생활에 맞는 성품이 아니라 거절의 의사를 여러 번 비췄다. 그러다 컨설팅한 아이템이 잘 정착할 때까지만 도움을 드리고 운영은 노련한 분을 모시는 중간 타협 지점을 찾게 되면서 다시 일을 그리고 조직 생활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다시 조직에 들어가는 일 만큼이나 새로운 사업의 오픈 멤버가 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업무 그 이상의 스킬 셋이 필요한 자리. 계획 수립 만큼이나 운영을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 예측 및 위기 대처 관리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였다.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역시나 일은 부딪혀 봐야 한다. 시작은 컨설팅과 사업적 soft landing 에 대한 지원이었으나 어느 새 내 업무는 여러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구인이 되지 않아서라는 너무도 명확한 현실과 새로운 일을 통해 이번에는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로 씩씩한 하루 하루를 보냈다. 


막상 운영은 시작도 안 했는데 준비 단계 부터 난항이 계속 되었다. 3개월이 넘어가도록 인재 영입이 되지 않아 수많은 콜드 콜을 해야 했으며, 계약서 같은 법적인 문서도 다루어야 했고, 수년 간 방치되었던 기존의IT 시스템도 업데이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내부에서 보기엔 나의 업무 능력이 증명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난떠는 사람으로 비춰졌을 터이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정신 줄을 잘 잡고 있었기에 울컥 울컥 해도 나름 위기를 잘 넘겼었다. 그러나 다시금 늦어지기 시작한 퇴근 시간과 꺼지지 않는 생각들로 불면증을 겪으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급성 위장염으로 차디찬 화장실 바닥에서 약까지 토하며 응급실을 가야 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2주가 넘어서야 겨우 건강에 차도가 보이나 싶었는데 첫 직원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오픈 떄 부터 너무 잘 잘해준 분 이었지만 모든게 새롭게 쌓아가야 하는 시스템에 두 손 두 발을 다 든 터였다. 본인 입장에서는 숫자와 같은 큰 실수가 계속 반복되는데 나아지지가 않고 내 입장에서는 그러니 보내 주는 게 맞지만 이성으로 수긍된다고 해서 현실이 쉽게 받아 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후임으로 괜찮은 지원자가 있었는데 본사 사정으로 영입이 어렵게 되면서 줄어든 잠 시간 만큼이나 내 신경도 날이 서기 시작했다. 위기는 늘 올 수 있지만 그에 대한 대응 계획이 있음에도 눈 앞에서 엎어지는 걸 보는 건 보통 인내심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다행이 지원 인력이 나왔지만 본업이 아닌 일을 하다보니 나날이 시들어가며 현타가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잘 해줘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설상가상 직원 중의 한 명은 자기 성향에 맞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대체 인력을 구해달라며 아우성 이었다. 뛰어난 인재이나 실무 경험이 없어 나름의 리스크를 가지고 채용한 직원이라 이에 대한 에측과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또한 직접 겪게 되니 창자가 꼬이는 것 같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물론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가장 많은 위기를 겪고 있었으며 감정적으로 날이 최고점에 선 채 한 해의 끝을 맞게 되었다. 공짜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밥값을 하는건데 볼멘소리 하지 말자 매일 다짐하며 출근하면서도 집에 오면 무력감, 어쩔땐 치욕스런 감정까지 들면서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나서야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최선의 최선을 다해도 어려움이 계속 밀려들다보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 나 열심히 일하지. 수년간 증명된 내 DNA이지. 그런데 열심히 일을 하는 게 중요한가? 나는 스마트한 운영을 하고 있나? 역시 나에게 조직 생활은 무리였나? 내가 이 회사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매출은 계속 늘고 있지만 숫자가 내 불안을 내 자책을 멈춰주지는 못했다. 아무렇게나 굴려도 오뚝오뚝 일어섰던 나는 이제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았는데... 다시 일어나 지네? 생각했는데... 반 년이 넘게 지속되는 고된 시간을 지내면서 씩씩하게 이겨내는 건 역시나 무리였구나 그렇게 나의 23년의 마지막 달은 패배감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간만의 휴가. 어떻게 Toss 이승건 대표의 알고리즘이 Youtube에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오지 않는 잠과 시름하던 중 스타트업 창업자가 오래가기 위해 가져야 하는 단 한 가지 이유 또는 끈기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당신은 자주 틀릴 것이고, 팀원들은 그것을 그 즉시, 바로 보게 될 것이다. 일을 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결국 자신이 이 일에 적절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팀원들은 지속적으로 당신을 실망시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들을 애정 해야만 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최소 3년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10~13년시간이 지나도 일이 잘 되어도  이 같은 문제들은 더 많아질 것이고 통증도 더 커질 것이다.10년의 시간. 이 같은 무게감을 견딜 수 없다면 지금 접는 게 나을 수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ARKSXogEE0


저런 브레인도 6년간 8번의 실패를 하고 저런 패배감을 느끼는데. 나도 한 번만 더해보자. 그래도 정말 정말 나는 도저히 그 무게감을 못 견디겠다면 빨리 내려오자.




매거진의 이전글 김환기 화백의 뉴욕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