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자퇴
그랬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아팠다. 어른이 되어 그때를 돌아보니 나는 그때 혼자서 끙끙 앓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마지막 추억이 제주도 수학여행이었다는 것은 이전에 한번 글로 남겼었다. 처음 비행기를 탔고 처음 제주도를 갔다. 아마 10월 정도였던 것 같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 봄이었으니까 수학여행까지는 약 6개월 정도가 흐른 셈이다. 나는 그 반년 동안 정말이지 시들어갔던 것 같다. 어딘가 만성적인 통증이 있다는 건 삶의 질을 무척이나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그게 마음의 문제든 신체적인 문제든 상관없이. 허리가 아프니까 앉아 있기가 힘들었고, 간혹 재채기라도 나오면 온몸을 긴장시켜야 했다. 식사량은 계속 줄어서 힘이 없었고 자주 졸렸다. 몸이 피곤하니까 공부고 뭐고 다 귀찮았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부딪치게 되는 그 문장.
“왜 중학교 자퇴했어?”
처음엔 3월이 지나면 그 질문이 사라질 줄 알았지만, 2학기가 되어도 나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질문의 주체는 친구들이거나 선배들이거나 선생님들이었다. 장소는 학교 복도에 있는 정수기 앞이거나 교무실일 수도 있고, 계단 한구석일 수도 있었다. 때론 교실이거나 주말에 다녔던 학원 휴게실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 내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극도로 긴장했었다. 이와 함께 바닥까지 내려앉는 느낌. 하지만 단언컨대, 그리고 맹세코, 단 한 번도 그걸 물어보는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한 적은 없다. 학교에 있을 때부터 오늘날까지도 말이다. 대신 나는 그저 나를 탓했던 것 같다.
사실 돌이켜보면 학교에 있던 총 9개월 동안 그 질문을 받은 횟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 길지 않았던 재학 기간 내내 그런 상황이 이어져 왔다는 것이 문제였지. 언제 이 질문이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 있는 매일매일을 늘 긴장하며 지냈다. 그게 어려웠다. 어떤 일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 하더라도 나는 늘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래저래 약해진 몸과, 뜻대로 되지 않는 공부와, 끝나지 않는 긴장감까지 나는 불과 몇 달 사이에 시들어갔다. 가을이 접어들면서부터는 집에서 휴학과 자퇴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힘이 더 실린 것은 물론 휴학이었다. 어차피 나이가 한 살 어렸으니 일 년 뒤에 복학해도 손해 볼 것이 없었고 오히려 몸을 추스르고 돌아오면 좋을 일이었다. 하지만 싫었다. 나의 패배를 인정하는 느낌이 들었달까. 그리고 중학교가 매끄럽지 않아 그동안 마음고생을 했는데 휴학이라니. 또다시 비범한(?) 기록을 내 이력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건 마치 오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복학을 한다면, “왜 중학교 자퇴했어?”에 이어, “왜 휴학하고 복학했어?” 까지 듣게 될 텐데 그 자신은 정말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학교에 있어보려고 버텼다.
그 시절 결국 제일 많이 고생한 분들은 부모님이었다. 생활하기도 빠듯한 때에 내 병간호까지 하셨어야 했으니. 당신들은 아마 그게 병간호였는지도 모르셨을 테지만. 평일에 기숙사에 있다가 주말에 집에 돌아가면 나는 그간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었다. 가족들이 마음 아파할까 봐 핵심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괜히 반찬투정을 하거나, 별일 아닌 것으로 화를 내거나, 내 하나뿐인 동생에게 소리를 지르는 방식으로 힘듦을 표현했다. 날이 쌀쌀해지면서부터는 바쁜 엄마 아빠를 매일같이 학교로 불러댔다. 엄마 아빠는 학원 수업을 하다가도 나를 병원이며 한의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과학고까지 오셨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지쳐갔다.
한편으론, 그렇게 막무가내로 미쳐 날뛰면서도 나 역시 내가 엄마 아빠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내 마음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었다. 내 가족을 힘들게 하고, 혹시나 곤란한 질문을 들을까 봐 주변인들을 경계하는 나를 더는 보기가 싫었다. 솔직하고 싶었지만 그건 이상하게 어려웠고,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마음도 몸도 완전히 고갈되었을 무렵 나는 자퇴를 하게 되었다. 두 번째 결정이라 신중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순식간에 일어났다. 모두 지쳐있어서 그냥 그렇게 되었다.
두 번째 자퇴였다. 첫 번째 자퇴 때는 엄마가 우는 모습을 못 봤는데 그때는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내가 엄마를 울렸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라도 끝을 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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