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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생, '또' 자퇴하다 #2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실 나도 그때 무서웠어.

by 됐거든

그해 봄만 해도 희망에 가득 찼고, 내가 원하면 세상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 같았는데 나는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또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채 일 년이 걸리지 않았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퇴라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일인데 나는 벌써 두 번째였고, 심지어 이 과학고 자퇴는 너무 쉽게 결정한 느낌조차 있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11월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시기에 거의 통학하다시피 했고 매일 기력이 없는 상태였다. 날이 밝았으니 학교에 가보겠다고 짐을 챙기고 있었거나, 아니면 아프고 힘들다고 울었거나 그랬을 것이다. 아빠가 매우 지친 표정으로 물어보셨다.


“휴학할래, 아니면 자퇴할래?”


“그냥 관둘래요.”


그때 내 대답을 듣고 아빠는 곧장 학교로 떠났고, 엄마는 시동을 거는 아빠를 붙잡아보려고 뒤따라 나갔지만 이미 차가 출발한 뒤였다고 했다. 훗날 내가 자퇴로 힘들어했을 때, 엄마는 그날 당신께서 조금만 일찍 나갔더라면, 그날 좀 더 이 부녀를 말렸더라면 하고 자책하셨다. 유별난 딸을 둔 탓에 매번 엄마가 고생이었다.


몇 시간 뒤 자퇴서에 도장이 찍혔고, 학교에서 내 소식을 들은 것인지 친구들이 문자며 전화로 연락을 해왔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또’ 저질렀다는 생각. 그리고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좀 더 버텼어야 했나, 자퇴를 두 번이나 해버렸네 등등. 한편으론, 너무 힘들었는데 벗어나고 싶다, 내가 버틸수록 내 가족도 너무 힘들어한다, 이렇게라도 끝이 나서 다행인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루 이틀 뒤에 학교에 짐을 가지러 갔었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작은 송별회를 해주었고 9개월 동안의 내 모습이 담긴 앨범을 선물 받았다. 1학년 1반 교실이었다. 기숙사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엄마가 짐을 가지러 오셨었다. 룸메이트 친구가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가 울자 우리 엄마도 같이 울었다. 그때 나는 차갑게 “엄마 울지 마!” 했었다. 그게 이성적인 태도이며 나는 건재하다는 표현 같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때 그냥 엄마와 같이 울었어야 했던 것 같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으니까. 사실 나도 그때 너무 두려웠다. 중고등학교를 두 번 관뒀다는 이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앞으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나 무서웠다. 더욱이 나는 한 번 겪어본 사람이 아니었던가.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곳. 학원이 딸린 나의 방으로. 폭풍 같던 그날, 내가 엄마의 눈물을 본 몇 안 되는 날이었던 그날도 엄마는 학원 수업을 하셨다. 며칠째 굶고, 평범하게 자라지 못하는 딸을 방에 눕혀두고서, 얇은 가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엄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의연하게 수업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재미있다. 벽 너머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나의 동네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중 3이 될 때,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게 마치 나의 훈장 같았는데 고작 일 년이 다 지나기도 전에 그들은 중학교 졸업을 앞두게 되고 나는 또다시 세상에서 튕겨 나온 아이가 된 것이다. 지금이야 학교 따위 별거 아니게 되었지만, 그때는 인생의 가장 저점을 밟은 느낌이었고, 인생에서 내리막길이라는 것이 언제든 갑자기 찾아올 수 있구나 생각했다. 더욱이 일 년 전과는 다르게 뚜렷한 이유 없이 그냥 쫓기듯 결정한 자퇴라 더 암울하게 느껴졌다. 2001년에는 그래도 세상 앞에 당당했는데 2002년에는 내 앞에서조차 내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랄까.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감정 과잉 상태였구나 싶지만, 실제 내가 느낀 감정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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