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있습니다!
- 교복을 입고 저질렀던(?) 일들 중 가장 짜릿한 경험은 무엇인가요?
- 10대 시절을 지금 되돌아봤을 때 고마운 사람이 있나요?
- 10대의 여러분을 가장 많이 울린 사람이나 생각은 무엇인가요? 여전히 그것들이 눈물짓게 하나요?
- 10대 시절 소망했던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 중 실현한 것 1가지를 찾아봅시다. 무조건 있습니다.
이번 주 글쓰기 주제는 나에게 조금 어려웠다. ‘교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기도 하고 싱그러웠다고 할 만한 10대의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3-4개의 질문을 쭉 훑어보다가 제일 마지막, ‘10대 시절 소망했던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 중, 실현한 것 1가지를 찾아봅시다’에 시선이 멈췄다. 마지막 질문까지도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짧은 문장.
‘무조건 있습니다.’
갑자기 도전하는 기분으로 이 네 번째 문장을 주제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올해부터는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기로 했으니까 이런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그리고 어쩌면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뭐 하나는 내가 해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질풍노도의 시기에 상상했던 삼십 대는 이러했다.
내 길을 확실히 정한 사람, 인생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이 있는 상태, 주말에 하나쯤 즐기는 취미가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너그러운 사람, 마음과 생활에 안정감이 있으며, 더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는 나이. 하지만 지금 나열한 많은 것들 중 ‘취미’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 나는 여전히 주변을 돌보지 못하는 것 같고, 항상 내가 있을 위치와 나의 미래를 고민하며 늘 흔들린다. 지금의 나는 그렇다. 그. 런. 데. 신기하게도 무조건 하나는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하나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큼지막하게. 돌이켜보니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민박집주인부터 홈쇼핑 쇼호스트까지 정말이지 많은 장래희망이 나를 지나갔었다. 시시각각 꿈이 바뀌던 시절이었다. 매년 새 학기가 되면 가족 관계와 장래희망 같은 것들을 써서 내곤 했는데 ‘장래희망’ 옆에 내가 제일 자주 써넣었던 단어는 의사였다. 언젠가부터 이게 직업이 되어 잊고 있었는데, 그랬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어린 시절 나의 꿈이었다.
대학 첫 전공은 이것이 아니었다. 수능 점수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고 집에서는 재수를 권했지만, 소속 없이 10대 대부분을 보낸 탓에 나는 적성이고 취업이고를 떠나서 그저 학생증을 받고 싶었다. 나에게 정말 맞지 않는 학과에 덜컥 원서를 쓰고 입학했다.
어떻게든 적응해서 다녀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화학이나 생물학이 있어 공부는 할 만해서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좋은 성적은 받아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행복하지 않다’는 감정을 그때 처음 느꼈다. 그리고 ‘적성’이라는 단어가 왜 있는지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래도 성과라고 하면 의외의 영역에서 나의 흥미를 발견한 것을 꼽아야 할까. 나는 의대를 가고 싶어 하긴 했어도 생물학은 싫어했는데 대학에서 배웠던 분자생물학이나 미생물학은 꽤 재미있었다. 그쪽으로 나가고 싶었다. 관련 공부를 할 수 있으면서 진로를 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전공을 찾기로 했고, 휴학을 하고 다시 수능을 쳤으며 약대에 진학했다.
내 적성을 알고서 결정한 덕에 이번에는 전공이 나에게 잘 맞았다. 여전히 미시의 세계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학부 수준의 얕은 지식이었지만) 화학도 나에게는 꽤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약학 대학원을 갈까 했었다. 하지만 나는 실험이 정말 안 맞는 사람이었다. 잘 해낼 자신이 없었고 그곳에서의 삶이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늘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약대 실험실에선 모두 신약개발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게 개발돼서 시장에 나온들 너무 비싸거나 보험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인가. 실험을 잘해서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도 있어야겠지만 그걸 진짜 쓸 수 있게 만드는 사람도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학부를 졸업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다들 취직을 하거나 그게 아니면 약대 대학원에 갈 때 나는 문과 계통으로 옮겨갔다. 내 가족을 생각하면 졸업하고 바로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가족을 못 본 척하고, 또 입학을 했다. 다행히 약사 면허 덕분에 생활비와 학비를 자급자족할 수 있어 집에 기대지는 않아도 됐었지만, 하여튼 불효였고 사치였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접한 사회과학은 재미있었다. 제도며, 법률, 경제 같은, 이제껏 모르던 세계를 보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 분야에서 내가 꿈꿨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려면 엄청난 천재여야 가능한 것이었다. 아쉽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론보다 실제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법률이나 경제 이론 같은 것들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지금 당장 내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이건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저 ‘지금, 여기, 이 사람’에 집중하는 유형인 것이다. 진로 변경이 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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