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아동도서에 대한 이야기 9
저는 앞서 적은 글들을 통하여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는 영어 아동도서의 제목과 서지정보에서 만날 수 있는 내용들을 계속 이야기해 왔습니다. 오늘 다룰 내용은 글이나 영상으로는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뜬금없이 어떤 상황을 하나 적어보겠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어떤 문학 작품을 선물용으로 찾고 있는 중에 장난기 많은 친한 동내 서점 사장님이 "가죽 줄까? 천 줄까?"라는 질문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가는 장면이 있다고 상상하겠습니다. 혹시 이 사장님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리셨습니까? 물론 실제 현실에서 "가죽 커버로 드릴까요? 천 커버로 드릴까요?"이라고 물어봤을 것이고 장소가 영미 국가의 작은 서점이라서 이 표현은 "Leatherbound, or Clothbound?" 쯤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벌어질 수 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듯싶어서 아쉽습니다. 현재 동네 서점들이 점점 사라지고 다양한 재질의 책들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최근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세트' 같은 책들이 나와서 기쁩니다.
오늘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책 커버의 표면 재질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책을 만날 때 책의 커버가 주는 첫인상은 해당 책에 대한 평가의 시작점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미 고전 아동문학의 경우 내용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오랜 기간 여러 출판사들이 출판하다 보니 책의 커버가 주는 느낌이야말로 책들 간의 큰 차이점입니다. 특히 그 책을 잡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커버의 촉감은 우리가 전자책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적 감성입니다. 이때 이런 감성을 크게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커버의 재질입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두꺼운 종이 하드커버와 다른 재질로는 가죽 커버(leatherbound), 천 커버(clothbound)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커버의 재질은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책 커버 이미지로는 쉽게 알 수 없는 책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들은 이 속성을 실제 제목에 함께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어 아동도서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영어 그림책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영어 그림책에서는 책의 커버 재질의 다양성을 확인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영어 그림책들의 커버 재질은 역시 일반 종이가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이 아직 부족해서인지 최근 트렌드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죽이 커버로 사용된 그림책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천이 커버로 되어 있는 그림책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책으로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작가의 'The Fox and the Star'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에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여우와 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가 천 재질인 그림책도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영어 그림책 서가에서 천으로 된 책등을 찾았다면 십중팔구는 아래 사진의 왼쪽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책일 것입니다. 이런 책들은 책등과 책 커버를 강하게 어어주거나 장식적 효과를 주기 위해서 '버크럼'(buckram)이라고 불리는 직물을 일부 사용합니다. 이 버크럼이 책 커버의 전체에 사용되어야 비로소 책은 천 커버(clothbound)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왼쪽은 에이미 노브스키 글,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의 'ClOTH LULLABY'입니다. 국내에서는 '거미 엄마, 마망: 루이스 부르주아'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있습니다.
북커버의 재질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책들은 고전의 반열에 든 아동문학 도서들입니다. 다양한 커버 재질의 책들은 전시 및 수집용인 컬렉터 에디션 형태로 출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가죽 커버든 천 커버든 일단 보여지는 부분은 확실히 아름다운 책들이 많습니다. 아래 사진의 책들은 그림 형제(Brother Grimm) 글, 아서 래컴(Arthur Rackham) 그림의 'Grimm's Fairy Tales'입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형제 동화집'입니다. 국내에서는 완역본으로 아서 래컴 작가님의 삽화가 있다면 유사한 번역서일 듯싶습니다. 사진 왼쪽의 천 커버의 책은 미국의 도버(Dover Publications) 출판사가 일러스트레이션 골든 에이지 시대의 삽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모아 시리즈로 출판한 'Calla Editions' 중 하나입니다. 사진 오른쪽의 가죽커버의 책은 스털링(Sterling Publishing) 출판사가 미국의 반스앤노블(Barnes & Noble) 서점을 위하여 출판한 책으로 'Barnes & Noble Collectible Editions' 중 하나입니다.
영어 그림책과 달리 영미 고전문학의 도서들은 가죽 커버로 된 책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죽 커버의 고전문학의 도서들은 반스앤노블의 책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Canterbury Classics' 출판사가 출판한 'Leather-Bound Classics' 시리즈로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책들은 모두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옴니버스 형태의 가죽커버 책들입니다. 사진의 왼쪽은 반스앤노블의 책이고 오른쪽은 캔터베리 클래식의 책입니다.
책 커버의 재질로 천이나 가죽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고무 재질의 커버도 있습니다. 반스앤노블 서점이 독점 판매하거나 자체 제작한 수집용 책들의 커버는 대개 가죽이였습니다. 그래서 해당 시리즈 책들은 반스앤노블 서점이 제공하는 서지정보의 'Edition description' 항목에 'Bonded Leather'라고 적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에 'Flexibound'라는 별난 커버 형태로 책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이 형태의 신간들은 반스앤노블 서점이 제공하는 서지정보에 현재 'Edition description' 정보는 아예 없습니다. 반면에 이 신간들은 다른 온라인 서점들에서 'Flexi Edition', 'Flexibound Editions'라는 표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제 기억에 반스앤노블의 'Flexibound'라고 불리는 책들이 처음 나왔을 때 서점 댓글에 혹평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개는 저처럼 온라인에서 책이 가죽커버인 줄 알고 구매한 구매자들의 원성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역시 기존의 책들과 확실하게 다르게 'Flexi Edition'인 책들의 북커버는 유연하고(flexible) 말랑말랑한 고무 느낌이 났습니다. 아래 사진은 반스앤노블 서점의 'Flexibound' 책 중에 가장 잘 나가는 책인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Pride and Prejudice'입니다. 해당 재질로 나온 시꺼먼 책 커버의 '프랑켄슈타인'이나 '주홍글씨'와 다르게 제인 오스틴 작가님의 '오만과 편견'이 'Flexibound'의 불만을 최근에 잠재운 듯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특이한 재질의 북커버를 지닌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다만 이 커버의 재질을 하나의 분류로 나눌 수 있는 건지는 의문입니다. 아래 사진의 책은 'Thomas Nelson Publishers' 출판사에서 만든 특별판인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The Wonderland Collection'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20 여권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가운데 가장 이상한 책입니다. 우리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일반적으로 본 형태의 삽화가 전혀 없습니다. 무엇보다 더 이상한 점은 책 커버가 투명 PVC 재질입니다. 하드커버의 영어 그림책에서 볼 수 있는 더스트 커버에 레이저로 종이들을 잘라내고 보호 차원에서 투명 PVC 재질의 커버를 또 추가한 형태입니다. 이런 형태에 특별한 이름이 없어서 인지 온라인 서점의 책 커버 이미지나 제목으로는 이런 사항을 절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책은 그저 풍문으로 듣고 유일하게 '아마존' 서점의 도서 상세페이지에서나 확인 가능합니다.
영미 아동문학의 고전들의 내용만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를 활용하면 전자책(e-Book)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자책이 기존의 출판시장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전자책이 독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전자책은 종이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며 심지어 이를 저항해야 한다는 의견조차 있습니다. 저는 종이책 예찬론자입니다. 물론 저도 제가 필요한 서적들을 전자책으로 구매할 때가 있습니다. 주된 이유는 미국의 전문서적의 Kindle 판이나 e-text 판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간혹 절판된 서적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는 책보다는 킨들 같은 전자책 리더기가 편하기까지 합니다. 나름대로 전자책의 장점을 이해하지만 저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만은 전자책에 그 자리를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믿습니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청소년이 보는 책들마저 종이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을 독해하고 이해하는 데 책의 커버가 주는 영향은 물론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물을 받는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 이쁜 상자와 포장지를 일부러 사용합니다. 저는 책에 대한 즐거움 중 하나가 다양한 책 커버로 감싼 책들을 보고 만져보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이나 TV 등에 빼앗긴 어린아이들에게 책이라는 존재의 무게감과 촉감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매사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이런 특별판이라든가 컬럭터 에디션의 책들은 도서관이나 대여점 등에서 만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비싸고 심지어 구입이 번거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물리적 책들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선사한다는 이유 외에도 아름다운 영어책들이 자녀들의 영어 교육을 위한 넛지(nudge)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책들이 영어 독해의 이정표가 되거나 목표가 될 수 있길 바라곤 합니다. 책이 이쁘면 언젠가는 그 작은 손이 한번 더 가지 않을까라는 흑심(黑心)이 숨어있습니다. 이런 숨은 욕심이 정말 실현되는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