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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없는 두더지, 털 없는 영장류

by 윤해


2024.04.17


생명의 진화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신비롭고 합목적적이며 결과적으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무자비함의 결정판이다.


털이란 무엇일까? 일단 어감상 무언 가를 털어낸다는 기분이 든다. 우주가 내어 놓은 지구상의 생명은 낮에는 먹이 사냥과 생존을 위해 살아 움직이라는 운명과 밤에는 낮 동안 움직이느라 피곤한 정신과 육체를 회복하고 짝짓기를 통해 번식하라는 숙명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났다.


태어나서 살다 보면 지구 환경이 안온하게 우리를 감싸는 간빙기도 있지만 급격하게 더워지고 추워지는 빙하기와 열대기가 교차한다. 지각에 살면서 빙하기의 생명은 자기를 보호하는 피부에 털을 잔뜩 심어 추위를 이겨내고 생존하다가 어느 순간 열대기가 찾아오면 추위를 막아주는 두꺼운 피부와 털은 체온조절에 장애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열대기와 빙하기가 서서히 찾아오면 진화는 적응이라는 기전을 발휘해 지구환경 속에서 생존이 가능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던 급격한 기후변화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의 멸종을 가져왔고 그러한 대멸종 기간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화를 뛰어넘는 비상한 생존전략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대멸종에 버금가는 지구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직면한 생명은 살 수 있는 공간으로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이동한다. 즉 서식지의 이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물특유의 행동이며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대멸종이라는 지구환경의 재앙에 맞닥뜨리면 이러한 노력은 한순간 도로에 그치고 대부분의 생명은 그야말로 깡그리 멸종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머리 좋은 생명은 조금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단순히 지각사이의 서식지를 이동하는 횡적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각을 파고들어 땅속이나 동굴 속으로 이동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종적이동을 하는 그야말로 종횡무진 생존을 위해 분투노력한 것이다.


지하나 동굴에서 그야말로 혈거 하던 지구의 생명이 열대기가 물러가고 소빙하기나 간빙기가 도래하면 이윽고 지상으로 나오는데 그들 생명은 이미 대를 이은 진화로 인해 털이 없고 피부가 얇은 생명으로 탈바꿈되어 있는 것이다. 이 털 없는 생명체는 지상에 도래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털 있는 생명과 생사를 건 경쟁을 해야 했고 늘 핸디캡이 있는 생명은 핸디캡이 없는 생명보다 진화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력을 하였고 그 노력으로 인해 핸디캡을 가진 종이 살아남아 진화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상의 핸디캡을 오히려 전화위복 하여 생존의 도구로서 갈고닦아 궁극적으로 지구 먹이 사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종이 바로 털 없는 영장류 우리 인류이다.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생존전략이 사회를 만들어 협업하고 계급을 만들어 효율적인 유기체로서 집단화에 성공한 우리 인류는 강력한 턱과 이빨, 폭발적 주력, 엄청난 힘과 발톱을 앞세운 맹수와의 생존경쟁에서 사회화를 무기로 집단으로 대항하여 하나하나 먹이사슬의 상위 경쟁자를 각개 격파하고 드디어 털 있는 맹수 위에 우뚝 선 털 없는 영장류가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한 편의 대하드라마가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이다.


지각 위에서 다른 맹수와 정면승부를 건 우리 인류와 달리 아직도 땅속에서 진사회성을 유지하며 집단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벌거숭이 두더지를 보면 우리 인류의 사촌이자 조상 같은 느낌이 든다. 땅속에서 확실히 적응한 벌거숭이 두더지는 지구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같이 땅속으로 들어갔지만 다시 지각 위로 나와 진화상의 분투노력을 하고 있는 우리 인류에게 이 좋은 땅속을 두고 뭐 하려고 나갔냐고 웅변하는 우리가 진화상 경로에서 벗어놓고 나온 옷 같은 존재는 아닌지 유심히 관찰해 보면 길 잃은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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