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by 윤해



2024.03.06

다층화되고 다변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서로 의견이 갈려 옥신각신 하고 서로가 옳다고 싸우는 사이 씩 웃으며 어부지리를 보는 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다. 비록 개별적인 존재로 분화를 거듭하고 탈탈 털려 아 이제 혼자 살아야 하나 하며 장탄식을 하고 모두가 마음의 문을 닫고 그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나름 시크하고 세련된 차도남 차도녀로 포장하면서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장래를 왜곡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외면적으로 선진국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는 중이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 속에서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는 우리 모두는 미래라는 애드벌룬에 갇힌 체 어디에 발을 디디고 지접 해야 할지 모르는 방랑자가 되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대로 성공의 대가로 미리 지불된 생명에너지가 고갈되어 쓰지도 못하는 물적 재화를 버겁게 지고 이것을 어떻게 해야지 밤낮으로 고민하며 잠도 못 자는 신세가 되고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한 대로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하면서 자신의 실패를 우리나라가 걸어온 과거의 모순적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성공한 계층의 조상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꿰어 그들 자신도 모르는 족보까지 기어이 파악하여 왕조시대 사대부들이 혼사를 앞두고 입으로 줄줄 꿰며 회자되는 보학까지도 완성하는 지경까지 와 있다.

체와 용은 이렇게 한 몸이면서도 다르다.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 수많은 부품들이 서로 결합하여 완성차를 만들면 그 부품들이 결합된 모습, 즉 완성차는 자동차 산업의 체가 된다. 체라고 하는 겉이 멀쩡하다고 그 차가 차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부품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엔진을 돌리고 바퀴를 돌리는 용의 단계에 접어들면 비로소 그 차가 명차인지 그저 그런 차인지 판가름 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수십만 킬로를 주행해도 견디는 내구성이 담보될 때 그 차는 진정한 명차로 등극한다.

즉 체의 단계가 거시적이라면 용의 단계는 미시적이다. 이 체와 용의 두 가지는 한 몸으로 묶여 있지 분리될 수가 없는 관계다. 체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용을 부술 수는 없고, 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체를 부정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한국사회가 걸어온 현대사 논쟁의 출발은 체와 용의 혼재된 시각에 기인한다. 누구는 체라고 하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죽을힘을 다해 매진했고 , 누구는 체라는 틀이 미진해도 콩 한쪽이라도 서로 나누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성장과 분배라는 상이한 의견들이 충돌하는 한복판에 우리들은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시킨 영웅들을 부정해서는 안되고 그 성장의 과실을 오롯이 자기만의 빨대를 꽂고 빨아먹는 현실의 계층과 조직 개인을 말려야 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면 큰일 난다고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고. 염려를 앞세운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저주에 찬 계급투쟁의 선동, 그리고 과거의 영웅을 낱낱이 부정하는 행동을 하는 자는 내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성장의 과실을 몽땅 가지겠다는 또 다른 탐욕의 연장일 뿐이다.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는 탐관오리의 출현을 지금 우리가 반드시 끊어야 진정한 선진국 국민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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