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懇切)한 철부지, 절실(切實)한 사람(四覽)

by 윤해


2024.03.05


태양계를 사는 우리는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밤과 낮이라는 하루를 살고 공전을 통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반복되고 별의 흐름에 따라 24 절기가 흘러가는 자연리듬에 따라 농사를 지으며 살던 민족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공간을 찾아 정착한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철을 모르는 철부지(節不知)에서 봄에 밭 갈고 씨앗 뿌리고 여름에 땀 흘려 작물의 성장을 도우고 가을에 부지런히 곡식을 수확하며 겨울에 편히 쉬는 사철을 볼 수 있는 사람(四覽)이 되어 한반도에 정착한 자연리듬에 따라 살던 농경민족이었다.


농경민족에게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며 봄 여름 가을을 결산하여 시험에 드는 겨룸의 계절이었다. 즉 봄 여름 가을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제 때 제 일을 한 사람(四覽)에게는 온돌방 아랫목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안락감을 선사하고, 봄에 게으름 피우고 여름에 잠자고 가을에 놀러 다닌 철부지(節不知)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삭풍이 부는 벌판이거나 혹여 운이 좋으면 남의 집 행랑채에 싸늘하게 식은 구들장에 제 한 몸 눕히기가 어렵다.


이렇듯 겨룸의 계절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四覽)과 철부지(節不知)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하루살이에게도 하루 안에 사철이 있듯이 이 춘하추동이라는 것은 어느 시간 어느 장소 누군가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흘러가는 자연의 도도한 리듬이다.


이 리듬을 리드미컬하게 타는 생명은 한 생을 원도 한도 없는 여한이 없이 살게 되고 춘하추동의 자연 리듬을 뒤죽박죽 타는 생명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모진 운명과 숙명으로 점철된 한 많은 한 생일 것이다.


사람(四覽)과 철부지(節不知)가 처지는 다르겠지만 태양계를 사는 생명체로써 겨룸의 계절 겨울이 달가울 수는 없다. 온돌방 아랫목에 등을 눕히는 사람(四覽)도 삭풍이 부는 들판에서 온몸으로 겨울을 나는 철부지(節不知)도 빨리 겨룸의 계절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은 오십 보 백보이다.


다만 사람(四覽)의 절실(切實)함과 철부지(節不知)의 간절(懇切)함이 다를 뿐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四覽)의 마음속에는 빨리 봄이 되어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여름에 성장시켜 가을에 오곡백과 과실을 수확하겠다는 마음이 절실(切實)한 반면에 봄을 기다리는 철부지(節不知)의 마음에는 봄이 되어 춘삼월 호시절이 되면 삼월이와 손잡고 꽃구경 다니고 싶은 춘심이라는 간절(懇切)한 마음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즉 실사구시를 하지 못해 절실(切實)한 사람(四覽)과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구가하고픈 춘심으로 가득 찬 철부지(節不知)의 간절(懇切)함이 똑같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과 철부지의 차이이다.


삼월이가 저 멀리 손짓하는 아지랑이 피는 둑방에서 피어나는 봄꽃들의 낮의 향연만큼이나 해가 어둑어둑 떨어지면 물레방아 한편에서 삼월이를 기다리는 춘심 가득한 밤꽃들의 향기도 절실(切實)한 사람(四覽)에게서나 간절(懇切)한 철부지(節不知) 모두 절실(切實)하고 간절(懇切)하게 꽃피는 봄을 절박(切迫)하게 기다리기에는 매 한 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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