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4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붙이면 도로 남이 되고 법이라는 글자에 점하나 밖으로 돌리면 밥이 되듯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자갈 같은 점하나로 돌이 되고 암석이 되어 대륙을 구성하여 우리가 사는 지구환경이 되는 것이다.
늘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한 것이 인류가 걸어온 길이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을 만들며 면이 모여 입체적 차원을 구성한다. 즉 우리가 사는 시공간도 먼지와도 같은 한점 티끌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미약한 시작을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유추해 본다.
이러한 지구 환경하에서 진화를 거듭한 우리 인류가 가장 잘하는 것이 착각이다. 주변 환경을 자신의 인지범위 안에 집어넣고 생사를 도모할 수밖에 없는 운명하에 놓인 우리 인류에게 착각은 대안 없고 물러설 수 없는 최종병기와도 같고 널리 동조자를 모아 공동체 안의 이 착각을 넓고 깊숙이 심어 공동체의 모럴 즉 규범이나 도덕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의 덩어리가 어쩌면 우리 인류가 지나온 과거라고 해도 크게 무방하지 않다.
이러한 인류가 숙명처럼 걸어온 착각의 역사에서 공동체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늘 다반사로 일어나는 분쟁의 모습이 정통주류와 비주류의 다툼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단골멘트가 사이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사이비란 말이 종교계나 학계 같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자주 사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슷하면서 다르다는 사이비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이비와 정통의 차이는 99%는 같다는 점이다. 어떤 종교 어떤 학설도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사이비는 이 불완전함에 주목하여 공동체가 힘들게 합의하고 구축한 정통에 도전장을 내밀고 정통과 99% 궤를 같이하다가 마지막 1%를 남기고 마침표 한 점을 찍는 순간 결론을 비틀어 공동체가 긴가 민가 하는 틈에 순식간의 점 하나의 힘으로 공동체를 혼란케 한다.
사이비가 우리 공동체에게는 은밀한 곳에서 몸을 숨긴 달밤의 스나이퍼라면 사이비에서 점하나 찍은 사이버는 백주 대낮에 노골적으로 인류가 만든 세상과 공동체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상이 존재함을 떠들썩하게 선전포고 하고 인류의 착각을 아예 구조화하여 통체로 현실세상을 접수하고 있는 정규군이다.
사이비가 점 하나를 찍어 사이버가 되어가면서 현실은 가상현실로 재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장자의 호접지몽이 그대로 실현될 날도 머지않았다.
서포 김만중의 걸작 사씨남정기의 배경이 된 장희빈과 인현왕후 그리고 인원왕후라는 숙종과 숙종의 여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 서오릉과 주변 릉에서 품어 나오는 음기가 양지바른 암반을 파고드는 소나무를 제치고 음택의 극상림 서어나무에게 숲의 주도권을 넘겨주어 서오릉이 온통 서어나무 숲이 되었듯이 정통과 사이비가 은은히 쟁패하던 현실세계의 모습도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점하나를 더하면서 현실이 가상이 되고 가상이 모여 가상현실을 만드는 사이버 세상을 백주대낮에 거침없이 만들면서 인간이 착각하는 동물임을 제대로 깨우치고 착각에 기반한 사이버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밤낮이 뒤바뀌고 음양이 교대되는 세상의 변천 앞에 놓인 우리들의 앞날에는 어떤 점하나 가 우리 인류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지 더욱더 궁금해진다.
아침을 먹고난 후 저녁을 먹기 전에 우리는 점심(點心)을 먹는다. 잠자라는 숙명을 지키기 위해 저녁을 먹는 것 처럼 움직이라는 운명의 한가운 데에서 먹는 점심(點心)은 글자 그대로 마음의 점을 찍는 숭고한 의식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먹는 점심(點心)이라는 마음에 찍는 점 하나 하나가 모여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내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절감하면서 오늘은 어떤 점심(點心)을 먹을까 아니 찍을까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