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6
하늘천 따지 가물현에 누루황 주홍사의 천자문 첫 번째 사자성어부터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고 우주만물의 진리가 숨어 있는 동양의 우주관과 문명은 그저 경이롭다.
하늘을 따지니 가마솥에 누룽지라 하기 싫은 공부보다 가마솥에서 노릇노릇한 누룽지나 먹는 게 최고라는 천지현황에 정면 도전장을 내민 그 시대 악동의 해학에 자꾸 마음이 가고 악동의 눈으로 보니 가마솥 뚜껑 같은 시커먼 하늘 아래 따져보니 센 불도 아니고 약불도 아닌 불조절의 어려움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불 작난(作難)으로 누러스레한 누룽지를 만드는 것이 천지현황의 원래 뜻이라 우기는 학동들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서당 훈장이 아무리 하늘천 따지 가물현에 누루황이라고 가르쳐도 해학과 지혜로 가득 찬 우리들의 학동들은 하늘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로 따라 한다.
한자에는 검다는 의미가 검을 흑과 가물현이 함께 쓰인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함께 써놓고 보니 검을 흑은 왠지 고정된 느낌이고 가물현은 검은 것은 알겠는데 어찌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하며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며 마치 시커먼 가마솥 뚜껑에 기름을 발라 어딘가에 어둠 속을 뚫고 들어온 빛을 받아 반질반질하게 검다는 느낌이 든다.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는 말과 같이 그야말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가물가물한 검은빛이 주홍사가 흑암 같은 하늘을 보고 따지고 따져 내린 결론이 가물현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하늘 아니 우주에서 내려오는 가물가물한 빛이 색이 있으면서 비어있고 비어 있으면서 색이 있는 수수께끼 같은 빛에서 지구 대기를 통과하며 반사되고 회절 되며 통과하여 삼원색이 탄생하고 일곱 색깔 무지개가 되고 지구가 길러낸 산하와 만나 지구의 누렇고 푸른 땅을 만들고 수많은 생명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채로운 색깔로 우리의 초록별 지구를 장식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천지현황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닮아 하루도 쉬지 않고 가물가물한 하늘의 가물현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자연의 수많은 색깔을 내는 매직쇼를 매일매일 한시도 멈추지 않고 시연한다.
다만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이룬 문명에 발목이 잡힌 세상의 인간은 그것을 알 도리가 없어 머리에 먹물이 들고 몸은 흰옷을 입으며 하늘은 안 보고 땅에서 따지며 불문곡직 시시비비를 반복하다가 결국 흑백논리에 빠져 진영을 가르고 하늘이 가물가물한 현의 예술임을 망각하고
가마솥에 누룽지를 새카맣게 태워 숯검정으로 우리들의 소중한 세상이라는 가마솥을 태우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세상의 이치다.
세상이라는 가마솥 안에서 하얀 쌀밥을 짓고 그 하얀 쌀밥보다 더 맛있는 노릇노릇한 누룽지를 만들어 박박 긁어먹고 그래도 미련이 남으면 몇 톨 없는 누룽지에 물을 부어 또 가마솥을 데우면 디저트 숭늉까지 완성되는 가마솥 같은 세상의 진리 앞에 겸손해지고 누가 함부로 위험한 불작난을 해서 우리 가마솥을 태워 우리의 소중한 먹거리를 숯덩이로 만들지 못하도록 노력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구수한 누룽지 향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