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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소고(登山小考)

by 윤해



2024.02.07

운무와 싸락눈 그리고 여명인지 석양인지도 모를 햇빛이 설악의 정상 대청봉을 비추고 소청대피소의 눈 덮인 지붕 그리고 소담스러운 적설과 함께 환히 밝힌 대피소 주변의 도열한 가로등만이 자연과 세상을 구별하는 듯하다.

자연과 더불어 세상을 사는 인간은 그 어떤 순간도 자연과 유리될 수 없고 자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다. 다만 세상에 취하여 살다 보면 보이는 것이 다라고 착각하는 뇌정보 기반의 문명에 질식하여 자연은 그저 배경이 되고 피안의 풍경정도로 여겨지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공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쩔 수없이 공간을 닮아간다. 그에 반해 세상을 사는 우리는 인간이 만든 온갖 경계선, 즉 예를 들면 행정경계선 나아가 국경선을 긋고 인간을 나누고 제한하고 규정지으며 그것을 정체성이라 이름 지으며 일반화를 하는 것이 세상을 사는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이 문명을 일으켜서 역사라고 하는 시간의 흐름으로 생각이 같은 집단끼리 이합집산을 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200개국이 넘는 나라가 존재한다. 그러나 자연이 만든 초록별 지구에 사는 사람을 자연이라는 관점에서 분류하면 꽤 단순해진다. 먼저 산에서 사는 산족, 들에서 사는 들족, 강에서 사는 강족, 바다에서 사는 바다족 등 대략 사람이 살 수 있는 서식지에 따라 자연을 닮은 품성과 기질이 정해지는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우상향으로 발전만 한 것이 아니고 흥망성쇠를 반복하고 있고 그 흥망성쇠의 단초가 되는 가장 큰 요인이 자연재해이며 그중에서도 대홍수를 통한 문명 재탄생에 대한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그중에서도 태평양에 존재했던 전설의 MU대륙에서 꽃 피웠던 문명이 대홍수로 인해 바다에 잠기고 그 문명의 후예가 히말라야 산에서 마고문명을 일으키고 물이 빠지고 산에서 내려와 홍산문명을 만들어 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하였다는 우리 조상의 기원에 관한 갑론을박도 무성하지만 분명한 것은 백의민족을 강조한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제사장의 후예이며 어쨌든 산을 기반으로 하여 문명을 일으키고 산이 좋아 산을 따라 이주한 산족이 아닐까? 막연히 상상해 본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는 어디 가나 산을 피하기 어려운 나라다. 대도시도 대부분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많고 하다 못해 자기가 사는 동네 어디라도 뒷동산 정도는 정겹게 자리 잡고 있고 1시간 정도만 걸어가도 이름 있는 명산이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으니 우리나라야 말로 산에서 태어나 산으로 돌아가는 산족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산을 오르는 등산은 너무나 친숙한 운동이요 취미가 된 게 어제오늘이 아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등산복이 외출복이 되는 익숙한 문명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난 70년간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경제성장을 통한 선진국 진입 못지않게 국토녹화사업을 통해 전 국토를 민둥산에서 녹음이 우거진 명산대천으로 탈바꿈시킨 우리 민족의 저력으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산에 올라 우리가 두고 온 자연의 숨소리를 느끼며 산족으로서 등산소고 (登山小考)에 잠길 수 있는 행복을 잠시라도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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