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by 윤해



2023.11.24

아내, 안해 태양계에 살고 있는 지구인으로서 우리는 하루도 해가 뜨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운명이 이끄는 대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가 뜨면 몸을 움직여 분주히 세상 속을 헤매다가 해가 지면 숙명이 이끄는 대로 집으로 들어와 안해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생존경쟁 과정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햇살에 봄눈 녹듯이 사라진다.

운명이 이끄는 낮 동안 뜨있는 해님만큼이나 숙명이 이끄는 밤에 함께 하는 집안의 해님 안해의 존재는 날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나이가 들면 운명보다는 숙명의 지배를 받고 비중도 커진다. 젊은 날 해가 뜨면 집을 나서 깜깜한 밤이 되어도 무슨 공사가 그리도 다망하신지 집안의 해, 안해가 눈을 부릅뜨고 떠 있는 지도 모르고 자정이 넘어 기어들어와 쿨쿨 자다가 해 뜨면 툴툴 털고 일어나 생존경쟁의 장으로 나아갔던 모습이 우리의 젊은 날의 초상이기가 쉽다.

집안에 뜨있는 안해의 존재를 무시하고 살다 보면 그 안해는 아내가 되어 집을 떠나고 안해가 떠난 집안은 해가 진 후의 적막강산 그야말로 캄캄한 밤이 되는 것이다.

운명은 짧아지고 숙명은 길어지듯 낮의 활동은 점점 줄어지고 밤에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인생 후반전에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안해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자연스러운 단계로 접어든다.

부부는 무촌이다 처음에 이 부부간 촌수를 듣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아닌가 짧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살아보니 이 무촌의 무시무시함을 절감한다. 우리는 살면서 숫자로서 관계를 매긴다. 어쩌면 우선순위를 나름 정하기 위해 관계에 숫자를 대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등장하는 숫자 0도 아닌 철학적 무의 개념은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결국 부부일심동체로 해석되어야 무촌의 부부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마음도 하나 몸은 같은 이 무시무시한 말을 하루하루 실천하면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아끼고 사랑하겠느냐 라는 주례의 성혼선서를 위한 질문을 통과의례쯤으로 치부하고 용감하게 '예'라고 대답하고 힘찬 웨딩마치를 하고 난 직후부터 신혼의 달콤함과는 별개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이 바로 이 대답 때문인지는 그때는 몰랐다.

처음에는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과 만나 애를 낳고 키우고 독립시키고 난 다음 부부가 같이 늙어가는 해로를 하는 단계에 접어들 무렵 서로를 바라보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는 배우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온다. 세월의 힘이며 무촌의 힘이고 부부일심동체가 완성된 것이다.

물론 거울에 비친 나의 또 다른 모습이 흡족하고 만족스럽기는커녕 어색하고 당혹스러울 때도 많다. 그래서 괜히 역정도 내어보고 투정도 해보지만 부부는 이제 서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정과 한의 일심동체로 화석같이 굳어지며 백년해로를 향해 날아가는 우주선이자 소두무족의 쏜 화살과 같다.

겁을 상실한 부부들은 황혼이혼도 하고 별거도 하고 졸혼도 하고 산다고들 하지만 편의로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은 해 떨어진 서산의 적막강산일 뿐이다.

집에 들어가면 벗어놓은 옷같이 자기의 모습 그대로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한 안해와 마주친다. 그리고 그 안해가 있으므로 집안이 환하게 빛나고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며 태양계를 살고 있는 지구인의 마음으로 안해를 바라본다면 부부 백년해로라는 우주선의 태양전지의 핵심인 안해전지를 끝까지 충전하여 한 생을 충만히 살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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