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삼간 태우지 않고 이불을 삶아 빈대와 공존하는지혜

by 윤해



2023.11.25

먹고사는 것이 삶이라고 한다면 삶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먹고사는 지를 주목해서 보면 되지 않을까?

인생계라는 거시계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분명한 우리 인간이 생명계라고 하는 미시계 관점에서 우리를 들여다보면 인간을 먹이로 하는 수많은 생명이 득실득실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없고 인간이 삶을 마감하고 우리의 육신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눈에 보이던 안 보이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개입하고 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없다.

생명계 먹이사슬의 특성은 잡아먹는 생명은 잡혀먹는 생명이 잘 인지할 수 없게 디자인되어 있다. 거시계의 눈으로 보는 먹이사슬은 대부분 큰 놈이 작은놈을 잡아먹고 힘이 센 놈이 힘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나 이 범위를 생명계로 넓혀보면 작은 생명이 큰 생명을 서서히 잡아먹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 생명이 작으면 작을수록 생명계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에 오르는 기현상이 생명계의 섭리이다.

인간을 잡아먹는 생명계의 존재는 대부분 인간의 감각기관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이지만 그중에 빈대나 모기같이 우리 눈에 보일 정도로 큰 개체도 있다. 흡혈곤충인 이들도 바이러스나 세균들처럼 되도록이면 인간의 눈을 피해 잽싸게 피를 빨고 도망가는 신출귀몰한 생존전략을 구사하면서 인간과 같은 숙주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가려움을 동반한 빨간 부종이라는 숙주의 사이렌으로 인해 이들의 완전범죄는 번번이 발각된다.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에 등장하는 지구는 화학살충제로 인해 먹이사슬이 깨어진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지만 , 반대급부로 오랜 기간 우리의 피를 빨아온 빈대도 함께 종적을 감추었다.

무슨 일이 생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모르나 한동안 종적이 묘연했던 빈대의 귀환이 시끄럽다. 그대로 놔두면 여간 성가신 존재가 빈대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 말처럼 사과씨만큼 작지만 모기의 10배에 달하는 흡혈량만큼 안면몰수하는 빈대의 몰염치에 적개심이 들지만 이제는 굳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세상은 아닌 것 같다.

가벼운 침구 소독이나 살충제 정도로도 빈대의 귀환에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성장했다. 오히려 이번 빈대의 출현은 생명계의 빈대와 숙주의 관계를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인생계에서 암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숙주를 파괴하는 세상의 빈대무리에 대한 경각심도 함께 고조되기를 바랄 뿐이다.

삶은 본질은 삶는 데 있다. 우리 사회에 거머리처럼 암약하는 빈대무리와 공존하는 방법은 우리 사회라고 하는 초가삼간을 태우기보다는 공동체의 가마솥에 우리 마음의 옷과 이불을 넣고 푹 삶아서 우리 사회에 다시는 빈대 무리가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삶아서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삶의 지혜 아니겠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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