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7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적고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라고 읽는다.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이 인생이라면 인생은 참으로 장구하고도 긴 호흡이다. 그 인연의 희비쌍곡선을 타고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면서 세상 속을 사는 우리는 업과 덕이 교차하는 와중에서 이리저리 줄타기를 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누구나 인생에서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생을 표현한다.
누구는 생명줄을 잇는 효, 부모와의 인연에 집중하여 한 생에 예술을 하고 누구는 부모를 떠나 살면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친구를 만나기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 불원천리 달려가는 우정이라는 예술을 하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정신적 교감을 중요시하여 인연의 폭을 확장하여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생각으로 인연을 꾸미고 가꾸는 예술에 여념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선택이고 집중이며 한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무늬, 즉 인문학이다. 인문이라면 될 일을 왜 배울 학을 붙여 인문학이라 했을까? 저마다 좋아하는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며 살고 있지만 일생동안 배우고 또 배우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배움의 연속이며 배움을 통해 예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인생이라는 인연을 맺는 과정이다. 불가원 불가근 인연에 따라 사는 인생은 너무 멀어도 얼어 죽고 너무 가까워도 타 죽는 적절한 거리에서 예술을 해야 악연이 아닌 선한 인연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계룡산, 마흔 초반 불혹하지 못하고 혹하여 자연과 세상의 관계정립이 모호했을 때, 알 수 없는 'Q ' 의문이 물밀듯이 밀려왔을 때 인연에 떠밀려 잠시 머물렀던 그곳을 이십 년 만에 다시 밟았다.
724년 창건된 천년도량이자 갑사와 함께 계룡산을 양분하는 동방이학의 고려충신 정몽주를 제향 하는 학모양 바위와 함께 하는 동학사 가는 길은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석회암 용천수 계곡 때문인지 회색빛 개울이 옆을 흐르고 개울을 따라 1.2킬로미터를 올라가다 보면 거의 다 와서 갑사로 가는 고즈넉한 산길이 갈라진다. 이정표를 보니 4.6킬로미터 산길을 가면 이상보의 수필에서 읽었던 갑사로 가는 길의 산길이 금방이라도 눈으로 뒤덮여 튀어나올 것 같은 착시가 느껴진다.
동학사 대웅전 앞 뜰에 올라서니 나풀거리듯 떠있는 새털구름이 대웅전 기왓장 위로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파란 하늘 위에서 춤을 추고 분주한 동학사 비구승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는 마치 파란 하늘에 새털구름으로 만든 하얀 박사고깔에 감추어진 조지훈의 승무를 보는 기시감을 느끼며 비구승들의 두 볼에 흐르는 빛이 만추의 양광을 닮아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웠다는 자연과 인간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의 감성으로 몰입되는 것이 아닌가?
불혹의 나이에 인생의 의문 question 'Q'를 찾아 서성거렸던 동학사를 이순의 나이에 어떤 인연으로 다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불혹에는 혼자였는데 이순의 나는 어젯밤 예의로서 술을 마시는 예술을 하고 죽마고우들과 함께 동학사 대웅전 앞에서 크고 웅장한 미래를 수저를 놓을 때까지 함께 하자고 만추의 단풍과 동학사의 학바위 아래에서 다짐하며 기념사진까지 찍고 내려오는 길에 또 예의를 잊어버리지 못해 술을 한잔 하면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지 인생이 길고 예술은 짧은 지 끝없는 갑론을박을 하다가 옆자리 예술을 하는 손님들의 눈총을 받고서야 아쉬움을 남기며 불원천리 달려온 친구의 열차시간에 쫓겨 자리를 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