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은 자연의 독서고 읽는 것은 세상의 독서다

by 윤해



2023.12.02

가장 무서운 인간은 책 한 권 달랑 읽고 추호의 의문도 가지지 않고 직진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주저하고 사색하고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것이 후성유전학적 존재로 태어난 여백을 가진 우리가 사람인 이유이기도 하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적 인간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창작한 대립되는 인간 유형을 보고 우리는 공감하기도 하고 연민하기도 한다. 공감과 연민 더 나아가 혐오까지 덧붙이면 인간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의문에 봉착하게 되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한쪽 턱을 괴며 생각의자에 앉아 골똘한 사색에 빠지는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라 우기며 그 조각상이 불후의 명작이 된 것의 이유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세상 속의 인간이 자연 속의 사람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은 마치 우리가 자연의 정글과 사바나에서 빠져나와 흥건한 강유역에 정착하여 농업혁명을 통해 잉여재화를 만들어 문명을 건설하여 세상을 만든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되돌리기 기능으로 역순으로 테이프를 감아 우리가 빠져나왔던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이라는 텍스트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지난한 과정의 독서다.

문명이 만든 세상은 우리가 가진 오감 중에 시각기능에 편중된 글로 그린 세상이다. 물고기는 시각기능을 대표하는 생명이다. 그 물고기를 살펴보면 직진성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고기 낚는 방법의 대부분이 오로지 나아가는 것만을 능사로 삼는 물고기의 직진성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는다. 이처럼 직진성이 강한 시각기능에 의존한 문명이 만든 세상은 끝없는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내었고 우리는 세상을 알기 위해 문자로 만든 책을 읽는 독서를 통해 세상 속의 인간으로 부분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세상이 주는 온갖 시련과 쾌락에 취해서 살다 보면 하루하루 허겁지겁 주어진 인생의 문제를 풀기에도 한 생은 벅차다. 뒤는 물론 옆도 돌아보지 못하는 시각문명 속의 물고기가 되어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헤엄치던 우리가 드디어 뭍에 상륙하여 육지 생물로서 지체를 바꾸고 장기를 바꾸며 마침내 세포마저 변화시키는 지구생명의 도정을 거쳐온 경험은 문명이 만든 세상 속의 우리가 자연을 읽는 사람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세상의 독서는 눈으로 읽을 수 있지만 자연의 독서는 오감을 작동시켜야 읽을 수 있다. 일출과 일몰의 장엄함, 밤하늘에 흩뿌려 놓은 은하수의 모습은 눈으로 보지만 온몸의 초감각으로 느껴야 알 수 있는 경험이다.

인생 전반전은 세상이 주는 문제를 풀기 위해 세상이 만든 문명이라는 글로 만든 책을 읽는 독서를 했다고 하면 인생 후반전에는 여기서 빠져나와 자연으로 걸어 들어가 자연과 인간 사이에 끼어있던 책이라는 세상의 텍스트를 걷어치우고 자연과 내가 직거래하면서 자연의 언어를 익히고 배워 세상 속의 인간에서 자연 안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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