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7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스스로 말미암을 유와 더불어 자유의지를 가지고 지구를 살아간다.
문명을 일으켜 세상을 만든 인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야생동물의 가축화이다. 가축화는 문명을 폭발시킨 농업혁명의 정수다. 야생벼와 야생밀의 재배기술에 성공하여 정착에 성공한 우리 인류가 사냥을 하는 대신에 대형포유류를 길들여서 가축화하고자 쏟은 노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그런 노력 속에서도 대부분의 야생종은 길들이지 못하고 개를 비롯한 소와 말 돼지 염소 양 같은 대형 포유류와 닭 오리와 같은 몇몇 가금류를 가축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인류의 문명은 변곡점을 맞이한 것이다.
가축화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종자를 개량하는 일이다. 자연의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을 길들여 세상의 속박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며 46억 년 지구생명에 가해진 문명의 침공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러한 변곡점을 지나 문명의 특이점을 넘어서고서야 우리 인류는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구의 독보적 위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면 가축화가 농업혁명의 감추어진 히든카드로서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가축은 우리에게 단백질의 지속적 공급원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소와 말과 같은 대형 포유류는 농업혁명을 촉발시킨 쟁기의 발명과 더불어 노동력을 배가시킨 신형엔진과 같은 존재로 평시에는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고 전시에는 전투력을 강화시킨 인류 문명사에 핵심적인 존재였다.
이와 함께 가축으로부터 옮겨온 헤아릴 수 없는 미생물 박테리아와 접촉한 인수감염의 혜택으로 우리 인류는 면역이라는 미시계의 보검도 함께 장착하게 되었다.
대항해시대 신대륙에 상륙해 아즈텍제국을 멸망시킨 코르테즈에게 자극받은 피사로가 1532년 63명의 기병과 200명의 보병을 거느리고 잉카제국을 정복하여 세계사의 물줄기를 동양에서 서양으로 돌려놓은 사건의 주범은 피사로의 철갑기병도 아니고 잉카황제의 무능도 아닌 빙하기에 베링터널을 건너와 횡축보다 종축이 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면서 라마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대형가축이 없어 인수감염을 통해 면역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신대륙 잉카제국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구대륙 스페인병사들의 천연두 바이러스였으며 이 천연두 바이러스가 잉카제국 멸망의 스모킹 건이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진 잉카제국을 비롯한 신대륙의 재화가 물밀듯이 유럽에 흘러들어 가 벼락부자가 된 서양에 의한 서세동점의 결과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농업혁명이 단순히 식량의 증대로 그친 것이 아니듯이 신대륙은 재화만 강탈당한 것이 아니다. 인류가 농업혁명을 통해 야생동물을 길들여 가축화하는 데 성공한 노하우를 같은 인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그대로 적용시켜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노동력을 착취한 슬픈 역사가 하나의 거대한 실험장이 되어 지금도 남미의 아픈 유산으로 남아 있다.
인디오들의 아픔은 그대로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노예사냥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붙잡혀 노예선을 탄 흑인들은 삼각무역의 재화로서 멸종되어 가던 인디오를 대체하면서 신대륙의 비극은 반복되었던 것이다.
자연은 자유하되 방종하지 않는 금도가 있으나 세상은 속박하여 생명의 영혼을 말살시키려는 질긴 가축화의 이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정반합이 있듯이 생명의 역사도 자연을 닮은 자유의지로 살아본 경험이 유구하므로 일시적으로는 속박받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멸종을 피하기 위한 개별생명의 선택으로 더 늦기 전에 생명 간의 타협점이 완성되리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