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9
우주의 시간 지구의 시간 인간의 시간, 지구에 생명으로 온 인간이 공간을 살며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사이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단어가 사이 간이요 이것이 우리 생명의 한계인지도 모르며 이 말이 함의하는 바가 진리로 다가가는 겸손한 출발인지도 모를 일이다.
대체로 지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지구에는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지구를 살아가는 생명에게 멸종이라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늘 어깨에 이고 사는 숙명과도 같은 숙제다.
생과사가 순간에 달려 있듯이 해당계 세포가 지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미토콘드리아라는 호기성 세포를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이 세포차원의 폭발을 하였고 개별세포가 사멸하더라도 유성생식을 통해 대를 이어 생존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지구 생명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처절하다 못해 처연할 지경이다.
미시계인 세포차원의 대멸종은 개별생명의 죽음과 함께 생명의 역사에서 무한 반복을 거듭하고 있으며 생명으로서 숙명과 같은 명령일 뿐이다. 다만 지구라는 거시계의 급격한 환경변화로 야기되는 대멸종은 종이 한꺼번에 그야말로 깡그리 사라지는 예를 들면 기관단총 탄막 안에 놓인 돌격하는 병사의 처지인 것이다.
대멸종은 엄밀하게 보면 지구의 시간인 것이다. 지구에 기생하고 있는 개별생명이 지구를 바라보고 살듯이 지구도 우주의 일원으로서 우주를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다. 지구를 바라보고 사는 개별생명 입장에서는 대멸종이 재앙으로 다가오겠지만 우주의 일원인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대멸종은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지구 자정의 시간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미 6번째 대멸종, 아니 지구 자정의 시간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어쩌면 개별생명이 좌지우지할 일이 못된다. 지구의 시간에 프로그래밍된 지구의 시간과 순서에 의해 차곡차곡 지구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대멸종은 지구 자정의 시간이라는 감각 없이는 끊임없는 억측과 호도만이 난무할 가능성이 많다.
지구에 사는 생명은 한시도 쉬지 않고 지구와 호흡을 맞추며 지구와 공진화하고 있다. 지구 자체를 생명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쓰고 버리는 이용과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순간 우리와 공진화하고 호흡하는 우리의 지구는 신음하며 아파한다.
인간과 지구의 관계는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와 같다. 비록 지구라는 숙주에 기생하고 있지만 숙주의 건강을 해칠 정도가 되면 지구라는 숙주는 대멸종이라는 카드를 통해 기생충을 박멸하는 구충제를 먹고 인간과 영원히 손절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의 원시대양에서 발원한 생명이 뭍에 상륙하여 지각 위에서 문명을 일으켜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기세등등하게 지구를 깔아 발아래 놓은 듯 보이지만 우주 안의 지구는 태양계를 돌면서 영화 '기생충'의 대사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처럼 지구 자정의 시간 계획표 대로 차근차근 구충제를 먹었는지 아니면 기력회복을 위해 파란 비아그라를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간빙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파란 낙엽을 보여주며 지구의 시간이 왔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