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0
무심코 쓰는 말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엉겁결에 하는 대답에 진심이 담긴 것처럼
1980년 대한민국의 봄은 1979년 10.26 대통령 시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인한 절대권력의 공백 속에서도 헌법에 의한 헌정질서는 위태롭지만 순조롭게 진행되고 19년 절대권력이 사라지고 난 후의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으며 다가올 80년대를 희망으로 도배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게도 청춘의 봄으로 설레게 만들 봄이었다.
하지만 1979년 그 해가 다 가기 전 보안사령관이 일으킨 12.12 군사 쿠데타로 인해 한 순간 역사의 물줄기는 민주화의 희망에서 더 강화된 절대권력의 횡포로 바뀌게 되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봄은 질식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있었다.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는 역사 앞에 놓인 인간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던지는 질문과 같다. 12.12의 긴박한 사태에 처한 대한민국의 헌정라인에 있던 위정자들과 헌정라인을 엎으려는 쿠데타 세력 간의 힘겨루기는 어쩌면 19년 절대권력이 남긴 유산으로 해석해야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절대권력은 견제받지 않은 관계로 표면적인 헌정라인 외에도 비선조직이란 사조직을 가져야 발 뻗고 잘 수 있는 모양이다.
12.12는 절대권력이 19년간 구축한 헌정라인과 하나회라고 하는 군부 비선조직의 충돌이라고 보는 편이 팩트에 다가서는 첫걸음이다.
절대권력자가 사라진 다음의 헌정라인은 앙꼬 없는 찐빵이요 불 꺼진 등대나 다름없다. 절대권력자가 남기고 간 유산인 비선조직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게임인 것이다.
하나마나한 게임임을 직감한 헌정라인의 약삭빠른 자들은 머리를 숙여 살아남았고 우직한 참군인들은 원칙을 세우다 동료 군인의 손에 죽어나가고 장군이 이등병이 되어 쫓겨나고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전직 보안사령관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목봉체조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허수아비로 변한 헌정라인을 접수한 군부 비선조직이 쿠데타를 통해 군부실세로 바뀌고 군부실세가 헌정실세로 탈바꿈되었던 춘삼월 호시절에 처절하고도 비참하게 맨몸으로 저항했던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숨겨진 영웅들이 비겁했던 헌정라인의 허깨비들이 막지 못했던 쿠데타를 맨몸으로 막았던 잔인했던 봄이 왜 대한민국의 봄이 아니고 서울의 봄으로 부르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로부터 4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름조차 모호한 그날의 봄을 가지고 윤색과 덧칠을 하며 그때 이름 없이 스러져간 히든 히어로의 희생을 팔아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며 현실세계의 최대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세태를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처량하기까지 하다.
대한민국의 근 현대사는 과거나 지금이나 깔끔할 수가 없다. 전 세계 4대 강국의 치열한 힘의 균형이 맞닥트리고 있는 곳이 우리 한반도이다. 피아의 구분도 공과의 구분도 어느 한순간 돌변하고 뒤집히는 곳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는 팩트를 깔끔하게 구분하여 주겠다고 나서는 그 자가 바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접근하는 최대이익 추구자이다. 공동체를 피아로 갈라치고 국시를 파괴하고 헌정을 문란케 하는 자 대한민국의 숨겨진 영웅들이 온몸으로 저항했던 대한민국의 봄을 서울의 봄으로 호도하는 자 팩트가 아닌 바람을 넣어 공동체에 바람과 거품을 끼우고 감성에 호소해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런 자가 바로 현대판 매국노의 모습 아닐까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봄을 온몸으로 겪어온 우리 세대도 긴가 민가 전모를 몰라 방황하기 십상인데 그때 그 시절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들이 호도되고 윤색된 픽션의 세계를 그대로 믿고 세상사를 판단한다면 잔인했던 서울의 봄 아니 대한민국의 봄은 언제든 얼굴을 성형하여 재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나의 기우였으면 좋겠다.